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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이 생각한 젊음

Relay Essay 제2566번째

만 14세 미만은 형사상 미성년자이다. 이는 비비탄총을 들고 포X몬과 유X왕카드를 강탈하는 무장강도짓을 해도 형법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몸이 약해서 유X왕카드를 빼앗는 쪽보다는 빼앗기는 쪽이었기 때문에 만 14세가 넘어서 무장강도 행위가 금지된다는 건 희소식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더 늘어났다. 기숙사 고등학교에 들어갔기 때문에 생활에서 부모님의 잔소리가 많이 줄었다. 집에 들어오지 않고 학교에 있으니 부모님은 내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고, 그만큼 내 행동반경에 자유가 생겼다. 저녁시간에 몰래 외출을 해서 삼겹살을 먹고 들어와도 집에 있는 부모님은 알 도리가 없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19세에서 20세가 되었을 때였다. 나는 담배는 안 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술집도 갈 수 있고, 새벽까지 PC방이나 노래방에서 놀 수 있으며, 운전면허도 딸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라는 울타리는 날 지켜주기도 했지만 가둬두기도 했고, 그 울타리에서 벗어나니 시간적 여유가 훨씬 많이 생겼다. 덕분에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이때 처음 해봤다.

 

때문에 나는 나이 먹는 일이 싫지 않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전반적으로 더 행복해졌다. 내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유가 더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중학생 때보다 고등학생 때가 행복하고, 고등학생 때보다 대학생인 지금이 더 행복하다. 그 때문인지 나는 주민등록증을 만들 수 있을 때가 되자마자 동사무소에서 민증을 만들었고, 투표권 역시 지금까지 빠짐없이 행사했다. 내게 해금되는 것들을 최대한 빨리 누리고 싶어서였다.

 

23살인 나는 지금 집도 없고 차도 없고 돈도 없다. 하지만 과거 경험에서 미루어보면 23살인 내가 지금 할 수 없는 것들도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해금되지 않을까. 나도 영화 주인공처럼 여자친구랑 드라이브도 가고 싶고, 부모님한테 비싼 밥도 사드리고 해외여행도 보내드리고 싶고, 아파트까진 아니어도 햇살 잘 들어오는 오피스텔에서 살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나이를 먹으면 언젠가는 이런 불편함에서 벗어나 자유가 생길 것이다. 치과의사 면허를 따고 직장을 얻고 월급을 받는 미래의 어느 날이 되면, 언젠가 집도 생기고 차도 생기지 않을까.

 

나는 빨리 나이를 먹고 학교를 졸업하고 치과의사 면허를 따고 싶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이런저런 불편함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배속 기능이 있다면 1.5배속 정도는 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나이먹기 싫다는 말이 잘 이해가지 않는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은 나이먹는 것을 싫어한다. 주위 나이든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세월이 야속하다, 젊은 날이 그립다 같은 말을 한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온다고 했다. 사람들이 왜 나이를 먹는 것을 싫어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나이 먹는 게 좋지만 두렵기도 하다. 모두가 싫다고 하면 분명 이유는 있을 텐데, 그 이유를 내가 잘 몰라서 두렵다. 나는 나이먹는 게 기다려지는데 남들은 싫다고 하는 것을 보면, 내가 모르는 정말 끔찍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나는 남들이 말하는 좋은 때를 그저 의미없이 허비하고 있는 걸까?

 

사람은 무언가가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 목마를 때 비로소 물의 소중함을 깨닫는 건 사람의 본성이다. 나도 지금은 젊음을 누리고 있어서, 젊음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젊음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서야 나는 젊음의 소중함을 깨닫고, 그때가 되어서야 나이가 들기 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23살인 지금 나는 이미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다. 신체적으로도 빈혈과 불면증을 빼면 큰 문제는 없고, 무언가에 도전하거나 새로운 경험을 얻기에도 좋은 나이이다. 나는 23살이기 때문에 어떤 것들은 할 수 없다. 자가용을 타거나, 내 집에서 사는 것은 아직 할 수 없다. 금전적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없다. 하지만 반대로 23살이기 때문에 어떤 것들을 할 수 있기도 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어울리는 것, 이루고 싶은 꿈을 꾸는 것, 다양한 세계를 탐험하는 것, 이런 것들은 23살인 지금이 가장 적기이다.

 

23살인 지금,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값지고 의미있을까? 객관식 문제에서 옳은 답을 고를 때는 나머지 틀린 보기를 지워 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의미 ‘없는’ 삶에 대한 답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너무 긴 백수 생활, SNS 하루종일 들여다보기 등등... 그렇다면 이런 것들의 반대편인, 적당히 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적당히 휴식도 취하는 게 의미있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어떤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휴식을 취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적당히’의 기준도 잘 모르겠다. 결국 이 문제의 정답을 알아내는 방법은 많이 경험해보는 것밖에 없다. 운이 좋다면 좋은 경험을 통해 5지선다 문제에서 맞는 보기를 찾아낼 수 있지만, 나쁜 경험을 통해 틀린 보기를 찾아내는 것도 가치있는 일이다.

 

사람은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 봐야 한다는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나이 먹는 게 좋아서, 빨리 치과의사가 되고 어른이 되어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싶어서, 내 20대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의 뜻을 조금씩 알 것 같다. 내가 지금 하는 여러 경험들, 그 경험들을 통해 맞는 보기든 틀린 보기든 알아내는 것, 그리고 그 경험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앞으로의 내 삶을 의미있게 만들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하면 의미있게 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더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22살이었을 때 누군가 나를 보고 ‘너는 딱 22살 대학생 같아’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1년이 지난 2023년, 내 목표는 스물셋답게 사는 것이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불편함,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는 불편함은 어쩌면 스물셋다운 것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이런 불편함은 스물셋이라면 응당 당연히 겪는, 스물셋다운 불편함일지도 모른다. 이런 불편함을 가지면서도 내 23살을 아름답고 의미있게 꾸며가는 것은 결국 나에게 달렸다.

 

10년 전에도 하루는 24시간이다. 10년 뒤에도 하루는 24시간이다. 나중에 치과의사가 되어 돈을 벌고 가정을 꾸렸을 때의 나, 그때의 나의 하루와 지금 나의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이다. 미래와 현재 모두 똑같이 가치있는 시간이다. 그러니 돈을 벌고 어느 정도 여유로워질 미래를 기대하면서도, 현재의 23살 역시 아름답게, 어떻게 하면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면서 꾸며가야겠다. 스물셋답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