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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과 아쉬움, 그리고 고마움

시론

20년 전까지 개원했을 당시 친했던 타 대학 출신 선배님으로부터 ‘밥 한번 먹자.’는 전화를 받고, 오랜만에 선배님 치과를 방문하였다. 예전의 자리에서 이전한 건물에서 치과진료실 규모와 인력이 엄청나게 늘어나 있었고, 바쁘게 진료실은 돌아가고 있었다. 조금 기다렸더니 그 선배님은 반갑게 필자를 맞이하면서 다른 진료실에서 진료하고 있던 아들(치과의사)을 소개해 주었다. 글러브를 황급히 벗고, 필자가 내민 손을 잡은 선배님의 아들은 늠름하고 자랑스러워 보였다. 일순간 필자의 속마음은 ‘부러운 마음’, 그 자체였다고 고백한다. 선배님과 저녁 식사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필자의 아들도 조금 더 노력(?)해서 ‘치전원’에 입학시켰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이미 지나간 일이니 부질없는 상상으로 끝날 일이다.

 

못된 정치인들이 ‘우매한 국민’을 ‘개, 돼지’로 표현한다고 한다. 또 생각이 부족한(?) 사람을 ‘닭xxx’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태어난 해와 연결된 간지(干支) 중 12지(支)에는 ‘닭’과 ‘개’, ‘돼지’가 연결되어 나타나니, 왜 이 세 종류의 ‘띠’의 동물들이 욕먹는데 사용되는지 의문이 들곤 한다. 금년 8월 말에는 ‘개띠’ 교수들의 정년퇴임식이 있었고, 이들에 비해 생일이 늦은 ‘개띠’ 교수들과 일부의 생일이 빠른 ‘돼지띠’ 교수들의 정년이 내년 2월에 도래한다. 바야흐로 ‘개, 돼지 띠’들의 정년퇴임식인 것이다. 필자도 그 유명한 ‘58년 개띠’에 속하는데, 생일이 늦은 편이라 후반부에 정년을 맞이할 예정이다. 우리 치과계에서 그동안 ‘58년 개띠’로 살았던 기억이 많이 행복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고백하면서, 우리 동갑내기들에게 수고 많았다는 격려의 말을 해 주고 싶다.

 

필자의 출생년도가 ‘베이비붐’ 세대에 속하여 동년배 인구도 많았고, 경쟁도 심한 탓에 가난한 서민 가정에서 ‘치과대학’이라는 곳에 입학하는 것부터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학 당시의 현역(고3 재학생) 비율이 40% 정도였고, 컴퓨터 추첨 배정으로 ‘고등학교’를 배정받았던 필자 동기들의 경우, 선배들을 찾는 ‘족보 찾기’가 힘들었던 세대였다고 기억한다. 그래도 행복했던 기억은, 한 해 선배 격인 ‘닭띠’가 주축으로 구성된 선배님들이 우리 ‘개띠’들과 ‘닭띠’들의 혼합 집단을 따뜻하게 품어주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1년 후 ‘개띠’들이 ‘돼지띠’들과 혼합되어 입학하면서 이들이 필자가 속했던 학년에게 깍듯이 대하면서 바야흐로 ‘닭, 개, 돼지’띠들이 3개 학년에 걸쳐 서로 어울려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해 선배님들인 ‘닭띠’ 선배님들 동기 중 닭띠가 아닌, 연배가 높은 분들도 많이 계셨다. 이 분들이 특별히 ‘공부’를 멀리하신 것은 아닌데, 시험 성적에 신경 쓰는 것보다는 서로간의 유대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일(?)에 열심인 탓에, 일부는 타 학년에 비해 시험 보는 횟수가 잦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에 비해 우리 동기들은 입학성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교수님들의 많은 기대를 받았던 것 같다. 한 해 후배들 역시 우수한 후배들인데도 필자의 동기들과 비교된 탓에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받지 못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닭띠’ 선배님들과 ‘돼지띠’ 후배들 중 필자의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일정 비율의 ‘우수한’ 학생과 ‘평범한’ 학생이 있기 마련인데, 교수님들과 상급 선배님들의 ‘선입견’으로 인해, 아예 입학년도로 차별화한 것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덕분에 별로 열심히 공부도 하지 않고 지내던 필자는 동기들에게 묻혀서(?) 졸업을 하면서 평생을 과분한(?) 평가를 받는 듯해서, 정년을 앞둔 시점에서는 선후배님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죄송할 뿐이다.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았을 때의 기대감은 누구보다 못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커 가면서 ‘우리 아이들이 의치대에 갈 수 있는 ‘상위 0.5%’의 범위에 들 수 있을까? 힘든 학업 과정과 수련과정을 거쳐서 제대로 구실을 할 수 있는 의사나 치과의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고민과 함께, 현재의 필자 본인을 객관적 시점으로 보며, ‘나도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 길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겹치면서, 아이들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게 해 준 것 같다. 다행히(?) 아이들은 0.5%의 범위에 들지도 않았고, 자신의 능력에 맞는 전공과 직업을 선택한 듯하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의 선배님 아들을 보는 순간 부러웠던 것은 사실이고, 글러브를 벗으면서 내민 손에 고였던 땀을 느끼면서 앞으로의 ‘장도(壯途)’를 격려할 뿐이었다.

 

필자 스스로의 ‘자기 합리화’이겠지만,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었던 것은, 똑똑한 동기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무던한 성실함’을 지닌 DNA와, 필자와는 달리 사람들을 가까이 오게 만드는, ‘호감을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아내의 DNA를 들 수 있고, 아이가 수능을 앞둔 고3 때도 휴가는 다녀와야 한다고 필자가 주장하여, 뜨거운 만리포 바다 백사장을 필자와 걸었던, 청소년 시절 부모와 함께했던 작은 추억들이 전부일 것이다. 최근, 이런저런 아비의 ‘불찰’을 조금이라도 만회(?)해볼 목적으로, 여름의 끝자락에 일본 오사카 학회에 아들과 아내를 동행하고 다녀왔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옆자리에서 더위에 지쳤는지 잠든 아들 얼굴을 보며, ‘3박 4일 동안 묵는 숙소를 조금 더 좋은 곳으로 해줄 걸 그랬나 보다.’라는 아주 사소한 아쉬움이 들었고, 매사에 조금씩 부족한 아비의 잘못 하나를 추가한 것 같아 보이는 것이다. 그래도 아들과 딸이 어렸을 때 보여주었던 귀여운 재롱들을 기억해 보면서, 그 당시 평생의 효도를 다 받은 것으로 하자고 아내와 약속했던 것이 문득 생각나면서, 치과의사의 아들, 딸로 잘 자라준 것에 고마울 뿐이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