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오랫동안 잠실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나무 친구들을 소개해볼까한다.
올해 여름의 뜨거운 무더위도 조금씩 잦아들고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이 시기 폭염을 꿋꿋이 버텨내고 꽃을 피워내는 나무가 있었으니 바로 배롱나무다.
배롱나무는 중국남부 원산지로 3~7m 크기의 소교목으로 미끈한 베이지색 수피는 고급스럽고 도도해 보이기까지 하다. 살짝 나무를 만져보자. 그리고 문질러 보자. 그러면 살짝살짝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배롱나무는 ‘간지럼나무’ 또는 ‘부끄럼나무’로 불리기도 하였다.
배롱나무의 원래 이름은 ‘백일홍나무’였다. 레이스 모양의 붉은 꽃들이 백일 동안 피고진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나 우리말의 연음현상으로 ‘백일홍-배기롱-배롱’으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꽃은 7~10월 사이에 흰색, 분홍색, 홍색, 옅은 보라색 등으로 원추꽃차례로 가지에 길에 뻗어 피며 푸른 잎과 베이지색 나무줄기 사이에 화려하게 핀다. 비록 곤충을 끌 정도의 향기를 뿜지는 않지만 이 아름다운 자태만으로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배롱나무는 여름에는 강하지만 얇은 수피 때문에 겨울에 털옷을 입혀주어야 한다. 그래서 겨울이 되기 전에 아파트나 공원 곳곳에서 나무에 옷을 입혀주기 바쁘다. 손이 많이 가는 나무다. 그래서 더 도도해 보이는 것 같다.
배롱나무는 세 가지 특징이 있는데 첫째는 아까 말했던 대로 나무줄기를 건드리면 잎이 움직인다하여 ‘간지럼나무’로 불리고, 둘째는 늦은 봄부터 꽃이 피는 것이 느긋한 양반 같다 하여 ‘양반나무’로도 불린다. 셋째 꽃이 피고 지기를 백일 동안 한다 하여 ‘백일홍’ 또는 ‘목백일홍’ 이라는 별명도 있다(풀의 일종인 백일홍꽃과는 다르다) 일본에서는 나무수피가 미끄러워 원숭이가 나무에 올라갔다 미끄러진다고 하여 ‘원숭이 미끄럼나무’라고도 불린다.
배롱나무는 무욕과 청렴의 상징으로 서원이나 사찰에서 많이 심었는데 이는 끊임없이 피고 지는 배롱나무꽃처럼 학문을 닦고 정진하며 투명한 나무껍질에서 보듯 겉과 속이 모두 투명하게 보여 청렴하며 붉은 꽃은 단심처럼 마음의 뜻을 쉽게 접지 말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은 고려시대 최 자의 ‘보한집(補閑集)’에 나오며 조선 세조때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도 백일홍은 홍철쭉과 함께 6품으로 나와 있다.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배롱나무는 부산 양정동 배롱나무(천연기념물 제 168호)로 수령 800년된 나무로 동래 정 씨 시조묘 옆에 심겨있다. 집단으로는 창녕사리배롱나무군(경상남도 기념물 제149호)으로 영상 신 씨 문중에 임진왜란(1592년) 때 영산과 창녕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신 초 장군이 정주 주변에 심은 나무들로 현재 35그루가 남아있다.
성삼문의 ‘백일홍’에 관한 시다.
“작석일화쇠 昨夕一花衰
금조일화개 今朝一花開
상간일백일 相看一百日
대이호함배 對爾好銜杯”
“어제 저녁 꽃 한송이 지고
오늘 아침 꽃 한송이 피어
서로 일백 일을 바라보니
너를 대하여 좋게 한 잔 하리라.”
가을이 되기 전에 공원에 심겨진 배롱나무 한번 천천히 쓰다듬으며 꽃향기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