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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니환자

시론

삼국유사의 고장 내 고향 군위가 2023년 7월 1일 대구광역시로 편입되었다. 전국의 시군구 중 소멸도시지수 1위, 평균연령과 노령인구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들 중에 하나라는 불편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군위가 대구시민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필자가 공중보건치과의사를 시작으로 3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경제적으로나 교육적인 이유로 이농인구는 증가하고 유입인구가 감소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로인해 자연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연령 증가로 인해 노령인구의 비율이 높아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전체가 부유해지면서 평균수명이 높아진 영향도 있지만 여기 군위에서는 일흔 세로는 경로당에서조차 심부름하는 나이라며 우스갯소리를 한다. 육자 달고는 두말할 것도 없고 어딜 가도 일흔은 명함을 내밀기 어려울 정도다. 우리 어릴 적 (대략 두 세대 전)만 하더라도 회갑연 한다고 동네가 떠들썩할 정도로 장수했다며 모두가 꽹과리 치고 장구 치며 푸짐한 음식을 나눠주며 축하해주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즈음에 와서는 회갑생일 축하를 해도 별로 내키지 않을 것 같다. 훗날 칠순잔치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팔순쯤 되면 축하를 받으려나... 그때는 나이 먹기가 더 싫어질 수도... 나라가 잘 살게 된 결과지만 여하튼 장수시대로 돌입했다. 거기에 따른 노인복지정책은 위정자에게 맡기고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매일 임한다.

 

대구시민이 된 첫날 군위 역사상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인구가 운집해서 축하공연을 만끽하며 영원한 화합과 발전을 기원했다. 모든 일이 군위 운명에 따라 잘 흘러가리라 믿는다. 통합된 대구시의 지도 모양도 남북으로 길쭉하게 특이한 양상을 띠고 있다. 대구 주변에는 인접한 시군이 많은데 어떻게 군위가 대구로 편입되었는지의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님비현상과도 관련이 있다. 주변 도시들은 대구공항과 전투비행장의 통합이전을 아무도 원하지 않았다. 전투기의 소음피해로 군 공항은 싫고 민항공항은 좋다는 지역 이기심의 결과이며 소멸도시인 군위는 소음피해를 감수하면서도 고육지책으로 공항 이전을 수용한 유일한 도시이다. 그 결과 군위의 단독유치가 결정이 났는데 뒤늦게 군위와 인접한 의성군이 공동유치를 신청하면서 군위-의성 공동유치가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고 여러 가지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군위만 대구로 편입되면서 대구공항 이전사업이 활기차게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군위는 대구와 가까운 거리지만 팔공산을 경계로 도시와 농촌의 구분이 확연하다. 도시근교에 살면서 완벽한 농촌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에서 겪을 수 없는 오일장의 시장문화, 계절별 농업에 따른 일손 부족으로 농번기와 농한기에 따라 환자 내원수도 급격한 차이를 보인다. 퇴근 후에 조금만 걸어 나가면 농업현장을 바로 목격하고 체험할 수 있으며 항상 자연과 더불어 강바람과 흙 내음을 맡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개원 초부터 지금까지 틀니환자를 치료하면서 많은 환자들이 세상을 떠나셨다. 연로하신 환자들이 찾아와 그때 그 원장임을 확인하고서 너무나 반가워한다. 그리고 그때 그 직원(사실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근무했다.)이 여전히 수부에 앉아 안내하고 도우는 모습에 놀라시면서 손을 꼭 잡는다. 덕담을 주고받을 때가 행복하다. 단골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 옆집 누구누구가 먼저 떠나셨다는 얘기를 들을 때 안타깝다. 그래도 오래오래 사셔서 백수하시기를 기원한다. 이러한 고령 환자가 많은 이유로 고정적인 단골환자 중에 틀니환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치과임플란트가 보험이 된다 해도 상실치가 많은 경우는 적용 케이스가 제한적이다. 지속적으로 관리 받는 환자도 있지만 10년, 20년이 지나서 다시 찾는 환자도 많이 계신다. 어떤 연유든 다시 찾아주시는 환자분께 고맙기도 하고 언제 또다시 뵐지 기약할 수 없다. 언제나 다음을 기약하며 마음이 편하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예전에는 치과가 주로 이층에 있었다. 환자들이 이층까지 올라오면서 숨이 차는지 얼굴빛의 변화 등을 문진과 시진을 통해 참고가 되기도 했다. 요즘에는 다수의 환자가 노인이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 계단을 올라와 치과치료를 받기가 힘이 든다. 그런 이유로 군위는 아직 엘리베이터가 있는 개인 건물이 거의 없는 관계로 모든 치과가 일층에 있다. 필자의 의원도 이층에 있었으나 환자들이 오고 싶어도 치과치료보다 이층 올라오는 게 더 힘들다는 하소연을 많이 들은 터라 몇 년 전에 일층으로 이사를 감행했는데 한결같이 출입하기가 훨씬 편하다고 하신다.

 

오늘도 장날 아침 현관문을 들어오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힘차게 들어오시는 분, 힘겹게 들어오시는 분, 들어오시는 분의 모습에 따라 마음의 무게도 달라진다. 나가실 때 만큼은 힘차게 나가시고 다음 오실 땐 더 힘차게 들어오시길 빌며 오늘도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한다.

 

 

출입문

 

구순(九旬) 할머니

또 와서 미안하단다

오래 살아 폐 끼친다고

틀니 잘 쓰고 있다고

“백수(白壽) 끄떡 없습니다”

많이 살았다며 농담 말란다

그래도 싫지 않은 눈치다

 

목소리에 힘이 느껴진다

할머니도 웃고 나도 웃고

두 손 꼬옥 잡는다

출입문을 나선다

뒷모습이 쓸쓸하지 않다

 

다시 문 쪽으로 눈길이 간다

오늘 할머니 힘이 넘쳐난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