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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방법을 안다는 것

황충주 칼럼

나이가 들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 ‘빨리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던 어린 시절에는 더디게만 가던 시간이 40세 때는 40km, 50세 때는 50km, 60세 때는 60km 속도로 때로는 정신없이, 갑자기 들이닥쳐 대응할 여유도 없지만, 이후에는 점점 느리게 간다.

 

우리는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이미 나이를 먹고, 인식하지 못하지만 신체 여기저기 늙어가는 징조가 나타나고 변화하면서 오늘을 살아간다. 모두 똑같진 않겠지만 40세가 지나면서부터 먼저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해 돋보기안경을 끼게 되고, 잇몸이 나빠지고 치아가 빠지면서 임플란트 같은 보철물을 하게 되고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희어지고 허리가 아프거나 무릎이 시려 오며 나도 모르게 움직일 때마다 불편한 소리를 낸다.

 

몸의 장기 곳곳에서 병이 생겨 병원에 다니는 시간이 늘어나고 먹는 약이 늘어나면 혹시 큰 병이 걸린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걱정하게 된다. 너무나 당연한데도 어느 순간 자신이 나이 먹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마음과 몸이 같은 속도로 늙지 않는다는 사실에 새삼 충격을 받고 두려워한다. 이런 두려움은 인간의 가치를 기능으로 판단하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병폐에서 비롯된다. 젊은 세대는 노인을 부양해야 할 부담으로 여겨 거부감을 느끼거나 골칫거리로 여긴다. 세대 간 편견을 해결하고 갈등을 줄이기 위해 소통이 중요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상생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젊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커지면서 나이 든다는 것은 더욱 부정적이고 불쾌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빌헬름 슈미트는 노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 나이 드는 자신의 모습을 근거로 나이 많은 이들 곁을 지키며 함께 삶을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다. 날로 노쇠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고 같은 맥락에서 노인들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며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보라고 말한다.

 

매년 10월 2일은 노인 문제에 대해 국민의 관심을 높이기 위하여 제정한 노인의 날이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공경 의식을 높이고 경로효친 사상을 앙양하고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온 노인분들의 노고를 감사하기 위해서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올해 100세 된 분은 2623명으로 10년 전과 비교하면 그 숫자가 곱절 이상 늘었다고 하는데 할머니들이 2073명으로, 남성보다 서너 곱 많다.

 

노인병 담당 의사들은 노년을 숫자 나이로 보기보다는 실제 기능 정도가 어떤지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질환의 수, 먹는 약의 종류가 해가 지날수록 늘어나고 스스로 걷기, 씻기 등 일상생활의 수행이 어려워지면 노쇠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노화 때문에 나타나는 치아 손상은 일반적으로 뚜렷한 소화기관의 노화 현상의 하나로 간주한다. 노인들은 침이 안 나오거나 뇌간 연하 중추 기능이 약해지면서 입속의 음식을 삼키기가 쉽지 않고 소화기 계통의 운동성, 분비 능력, 흡수 능력이 저하된다. 나이가 든 야생동물은 치아가 온전치 못해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하기 때문에 영양부족으로 죽는다.

 

2020년 발표된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약 83.5세이며 건강 수명은 73.1년가량으로 시대가 흐를수록 노화가 늦어지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의학 발달의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2년 뒤인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를 직면하게 되는 상황에서 노년의학회가 노년의 건강관리를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것처럼 치과계에서는 대한노년치의학회가 구성되어 구강 노쇠의 예방과 대책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탈무드에 의하면 처음에는 인간에게 노화의 흔적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누가 아버지인지 누가 아들인지 구별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신에게 나이가 들면 용모를 구별할 수 있게 만들어 달라고 간청했다. 왜냐면 한 세대와 다른 세대를 구별하기 힘들어지면서 누가 경험, 지식, 지혜가 더 많은지를 젊은 세대나 어린아이들이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을 늙게 만든 건 지혜의 표상을 드러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고대에는 백발을 한 노인들이 마치 오늘날의 검색엔진 애플리케이션이 되어 공동체의 화합을 도모하고 나아갈 방향을 정했다. 노령의 사회 구성원들은 후손들이 건강하고 올바른 사회를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분명히 한세대에서 다른 사회로 전해지는 것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되어온 지혜의 결실이었다. 연장자는 ‘끊어진 세대 간의 끈’을 다시 이을 힘을 가진 스승의 역할을 했다.

 

헨리 나우웬은 ‘설혹 길고 긴 인류 역사 가운데 노인들이 맡은 몫이 지극히 작을지라도, 기품 있고 조심스럽게 그 몫을 감당하는 것이 인간으로서 우리가 이루어야 할 가장 큰 소명’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요새 사람들은 연장자에게 지혜를 구하기보다는 인터넷의 검색엔진이나 챗 GPT에 조언을 구한다. 왜냐면 나이 든 사람의 말은 잔소리로 여기거나 해결책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생각이나 말이 꼰대 같을 수는 있지만, 대접만 받길 원하기보다는 배려하는 자세로 세대 간의 관계를 이어가야 한다. 내가 존중받고 싶으면 남을 더욱 배려하는 자세 또한 연장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스위스의 철학자 헨리 프레데릭 아미엘은 “늙어가는 방법을 안다는 것은 지혜의 걸작으로, 위대한 삶의 예술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장에 속한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에는 ‘노시니어존’이라는 단어 밑에 ‘60세 이상 어르신 출입제한’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고 바로 옆에는 ‘안내견 환영’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젠 노년층을 대놓고 제한하고 배제하려는 움직임을 넘어 혐오의 시대라고 공분하였다. 해당 카페는 한적한 주택가에, 딱히 앉을 곳도 마땅찮은 한 칸짜리 커피숍인데 언제부터 어르신들이 장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여자 사장님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하여 도저히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어 입구에 이렇게 써 놓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럴 수 있겠다는 반전이 일어났다.

 

시니어로 산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의 무게가 더해지고 연장자로서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어도 철이 들지 않았다거나 어른 같지 않다는 말을 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때에 말을 거두고 진심을 나눌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어떤 말을 하기보단 하지 않는 적절한 시점을 나이가 들수록 잘 알아야 한다.

 

에너지 총량 법칙에 따른다면, 내게서 빠져나간 에너지가 어딘가에 존재하고 나를 살아가게 했던 그 에너지들은 다른 생명체의 생성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하늘이 내게 준 소중한 선물이고 남은 날 중에 가장 젊은 날이기 때문에 가장 멋지고 더 희망찬 내일을 만들어야 한다. 인생 초반에 뿌린 씨앗을 쓸모없는 쭉정이가 아닌 잘 익은 열매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줘 좋은 세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당신의 건강이 우리의 행복이니 오늘도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잘 유지하고 인생 후반전을 시시하게 살지 않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아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도움을 주고 새로운 일에 즐겁게 도전해 보는 건 어떨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