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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날의 행복

Relay Essay 제2583번째

2012년 봄, 임상에 처음 나와 근무를 시작했다. 1월과 2월에는 이른바 취업 바람이 불어, 대학 동기 중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취업을 마친 상태였기에 꽤 늦은 취업이었다. 사회생활이라고는 아르바이트도 길게 해본 적이 없었고, 치과 업무를 경험한 것은 오직 임상 실습 때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사회생활이었기에 모든 일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인데도 임상에 적용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한 사람의 몫을 다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왜 그렇게 원장님과 선배들 앞에만 서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지 스스로도 답답하기만 했다. 처음이니 누구에게나 어려웠겠으나 동기들보다 늦은 취업이었기에 조급한 마음이 앞섰고 그래서인지 적응하는 것이 유독 나에게만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그런 1년 차 시절 적응기에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처음 스케일링을 할 때였다. 물론 학교 실습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번 실습도 했고, 입사 후에도 여러 번 트레이닝을 받았던 진료이기에 말이 처음이지 실제로 처음 해보는 진료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어려운지……. 앉은 자세도 자연스럽지 않았고 미러를 이용한 리트렉션이며, 스케일러를 이용하는 손동작 등 뭐 하나 서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스케일링을 하는 나도 편안하지 않았는데 받고 계신 환자분은 얼마나 편안하지 않았겠는가. 너무 죄송하지만, 사실 스케일링을 할 당시에는 잘하지 못하는 스케일링을 해야 하는 불편한 마음에 환자분의 편안함은 신경도 쓰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환자분은 한마디 말씀 없이 묵묵히 스케일링을 받으셨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첫 스케일링 진료를 마무리하고 다음 환자분의 진료를 준비하는데 실장님께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스케일링을 받으신 환자분께서 스케일링 받는 동안 입술 당기는 것부터 물 튀는 것까지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으나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면 초보인 내가 혹시 너무 당황하거나 상처를 받을까 염려되어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실장님께 말씀하셨다는 이야기였다. 그러시며 혼내지는 마시고 잘 이야기해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고 했다. 그동안 스케일링을 많이 받아보셨기에 내가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아시고 해주신 배려였다. 혼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 당시에는 잘 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그리고 불편함을 참고 스케일링을 받으셨을 환자분에 대한 죄송한 마음에 눈물이 많이 났다.

 

1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그 일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나도 환자가 되어보는 일이 종종 있지만 불편함을 참고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또 어떤 부분이 불편했는지 피드백을 해주셨던 것도 애정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감사한 일은 피드백을 간접적으로 해주셨던 세심한 배려이다. 아마 직접 말씀해 주셨다면 환자분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대참사가 일어나 말씀하신 환자분을 민망하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다.

 

10년 이상을 임상에서 일하며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정말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 할 정도로 힘든 일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계속 임상에 있는 이유는 감사하게도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1년 차 시절을 함께한 입사 동기들은 지금은 그때처럼 매일 만날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그 존재만으로도 나에게 힘이 되고 좋은 에너지를 준다. 지금 함께 일하는 동료 선후배들도 함께 일하면 재미있고 즐거운 일들이 많다.

 

특히 어려운 일을 만날 때 늘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준다. 그런데 임상에서 일하며 누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임상에 있기에 만날 수 있는 환자분들과의 좋은 인연인 것 같다. 임상에서 일을 하다 보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노력해도 그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우연히 일어난 일들과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로 나를 힘들게 하는 환자들을 많이 만났다.

 

어떤 때는 ‘왜 우리 병원에는 그런 사람들만 올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어떤 때는 그런 일들이 나를 좀먹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만큼 밝고 좋은 기운을 주는 환자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코로나19의 유행이 한창 심하던 2021년 3월 코로나로 인한 휴진으로 어렵게 예약을 변경하던 중 들었던 “아이고 선생님, 그 많은 환자들 예약 변경하느라 선생님이 고생하시겠네요. 저는 괜찮아요.” 한 마디로 피로를 잊게 해주시는 분들, 유독 지치고 힘든 날 “저는 여기 와서 선생님들이랑 웃고 수다 떠는 게 힐링이에요.” 하며 나에게도 힐링을 선물하시는 분들, 그런 분들을 만나면 다양한 일들 때문에 불만과 투정으로 가득해 경직되어 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이 든다. 힘든 일 만큼 좋은 일도 많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곤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다시금 ‘나도 좋은 인연이 되어야지.’ 하면서 말이다. 지금까지 감사하게도 좋은 환자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임상에 있다면 이런 인연들이 나를 더욱 성장하게 하고 계속 임상에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