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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믿지 않는 환자들…치과의사만 속앓이

전문지식 들먹이며 항의, 고성·욕설 난무 다반사
진료 거부 금지법 되레 치의 위축시켜 보완 절실


“진료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환자가 계속 항의하고 있어요. 의료진으로서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믿질 않습니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치의학 관련 정보들을 가져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데 치과의사로서 참 답답할 따름입니다.”

서울에 개원한 김○○ 원장은 최근 60대 환자와 생겨난 임플란트 시술 관련 불화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작은 임플란트 식립 직후 환자가 상부 보철물의 거칠기와 크기, 인접면과의 접점, 시멘트 처리 과정 등을 문제 삼으면서부터였다.

진료와 처치 및 수술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김 원장은 환자가 느낄 불편함을 고려해 의료진으로서 할 수 있는 조치를 했다. 추가 진료비를 받지 않고 세 차례 보철물을 재제작해주는가 하면 점심시간을 활용해 2시간가량 상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문제는 환자가 각종 치의학 논문을 프린트해 밑줄까지 그어가며 김 원장의 의견을 반박하고 나서면서부터다.

김 원장은 “며칠 전에도 환자가 본인의 케이스와는 전혀 무관한 국내외 보철 관련 논문들을 프린트해와 내 앞에 들이밀었다. 정말 황당할 지경”이라며 “케이스에 맞는 수술 방향을 아무리 설명해줘도 나를 사기꾼 취급하면서 욕하고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물건을 부수기도 했다. 그 바람에 다른 환자들이 진료받지 못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했다.

해당 환자와의 마찰로 경찰이 병원을 찾은 것만 세 차례. 경찰이 올 때마다 진료를 기다리던 다른 환자들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으며 문제를 일으킨 환자는 조용히 사라졌다가 며칠 뒤 다시 나타나 고성을 지르기를 반복했다.

현재 김 원장은 해당 환자가 병원 내에서 소란을 피워도, 다른 환자들에게 자신의 험담을 늘어놓아도 직원들에게 대응하지 말라고 일러둔 뒤 증거를 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환자에게 전원을 제안했더니 오히려 진료 거부를 하는 것이냐며 신고하겠다고 협박까지 한다. 달래 돌려보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 어쩔 도리가 없다”며 “보호받을 수 있는 법을 찾아봤지만, 복지부 유권 해석이 전부”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 안전한 진료환경 위한 제도 개선 시급
실제로 김 원장과 같은 환자와의 분쟁 사례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임플란트 치료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의료진을 흉기로 위협해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는 일도 벌어지는 등 환자와의 마찰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현행 의료법 제15조(진료거부 금지 등) 제1항에서는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법에서는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고 있고, 대신 보건복지부의 유권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

복지부는 유권 해석을 통해 ‘환자 또는 보호자 등이 해당 의료인에 대하여 모욕죄, 명예훼손죄, 폭행죄, 업무방해죄에 해당될 수 있는 상황을 형성하여 의료인이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행할 수 없도록 하는 경우’를 포함, 9가지의 사례를 안내하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유권 해석 역시 제한적인 범위에 그치고 있으며 이 같은 한계가 의료인을 위축시켜 정당한 사유에도 진료 거부를 할 수 없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법률 전문가 역시 “복지부에서 사례를 안내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관계에 따라 해석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개선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또 최근 대중들이 의학 전문지식을 잘못 이해·활용하는 점도 우려를 낳고 있다. 의학 관련 전문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어 학술적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장점과 달리 이를 오독해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 ‘기 싸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카카오톡이나 의학 정보 공유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비의료인들이 자신들의 구강 사진을 올리며 서로 진단을 내려주는 경우도 다반사며, 비급여 수가를 비교해 이를 그대로 치과의사에게 따지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어 대국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겪고 있는 분쟁 탓에 일주일가량 병원 문을 닫았다는 김 원장은 끝으로 “얼마 전 남양주에서 벌어진 환자의 흉기 난동 사건을 보고 나도 덜컥 겁이 났다. 치과의사가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가 조금 더 확대돼야 할 것 같다. 그를 통해 진료 환경이 안전하게 마련돼야 국민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