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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시대

임철중 칼럼

이승만의 토지개혁은 김일성의 ‘폭풍작전’으로부터 대한민국을 구해낸 신의 한 수다. 공산 독재냐 자유 민주냐 개념조차 생소한 국민에게, 최소한 꼭 지켜야 할 ‘내 것’을 쥐여 준 것이다. 일찍이 레닌은, “농민은 땅에 대한 집착으로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다. 적당히 이용하고 버려라”하지 않았던가? 충청도는 다른 곡창지대와 달리 지주·소작농관계보다 자작농이 더 많았다. 소작농은 당장 눈앞의 마름 눈에 들어야지, 뼈 빠지게 일하는 건 한양에 계신 지주의 배나 불리는 일이다.

흉년이 들면 지주는 곳간을 풀어 소작농의 생계를 도와준다. 일종의 농기구(農器具) 관리다. 직업이라는 개념에서 ‘도덕적 해이’가 기생하기에 딱 좋은 상황이다.

자작농은 다르다. 쌀 한 톨 한 톨이 내 재산이니 피땀을 쏟는다. 가뭄이 심하면 기우제를 지낸다. “검은 구름이 몰리는 걸 보닝께 오늘 니얄 한 줄금 허것는 디?”

“예끼, 이 사람아.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누가 안 디야?”
 

6·25 전쟁 중에 가장 혁혁한 전과를 올린 명장은 임부택 소장이다(1919-2001). 
장군의 7연대는 개전 첫날부터 춘천·홍천 지구에서 북괴군 2개 사단을 괴멸시키며 유일하게 3일을 버텨, 국군은 전열 재정비의 시간을 벌었다. 다음 해 4월 6사단 부사단장으로, 양평 용문산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을 무찔렀다(사살 2만, 포로 3,500). 

7연대 병력이 전과는 물론 생존율도 비상하게 높은 이유를 기자가 묻자, 장군의 대답은 짤막하였다. “7연대는 청주에서 뽑은 병력들 아닙니까?” 일견 온순하고  무사태평한 슬로우모션이지만, 참고 참다가 아니다 싶으면 분연히 일어서는 결기, 무표정하고 속을 드러내지는 않아도 두 마음을 품지 않는 우직함, 아첨하고 비위 맞출 줄은 몰라도 배신 없는 한결같음, 이런 품성이 군(軍)조직으로서 강한 전투력을 만든다는 것이다. 프러시아에서 히틀러의 Wehrmacht까지 독일군의 핵심이었던 융커들의 인성(人性)과 같은 맥락이다. 인성 형성은 민족 사회 문명사 등 매우 장기적인 주제지만,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영역이다. 가르쳐서 배우는 지식과는 달리 인성은 따라하면서 익히므로, 온갖 지식으로 오염(?)되기 전에라야 인격형성에 스며든다. 그래서 내 인성은 충청에서 자랐다는 한 정치인의 고백이 가슴에 와 닿는다.

MZ 치과대학생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치과의사의 3대 성공 열쇠를 임상실력과 개원 입지와 개인 인성으로 꼽지 않는가? 
 

쿠팡 드라마 ‘소년시대’가 히트를 쳤다. ‘미생’에서 조용한 언더플레이어(Underplay; Over action과 대칭)로 내공을 증명한 임시완이, 전설의 주먹 왕(王) 아산 백호로 잘못 알려져 왕따 병태로부터 부여 짱으로, 다시 찌질이로 추락했다가 또 한 번 진짜 사나이로 재탄생하는, 만화다운 반전의 쌍곡선이다. 그러나 인기의 진짜 비결이 또 하나 있으니, 주변만 뱅뱅 맴돌던 ‘충청도 사투리’가 일약 스타로 등극했다는 것이다. 충청도 사투리는 주인을 따라가는지 톡 쏘는 맛이 없고 밋밋하다.

싸움을 해도 멱살 잡고 한 시간이다. “시방 뭐 하자는 겨? 그러다 사람 치것다!”

정작 십 분도 못가 맥은 풀리고 주먹은 불발탄으로 끝난다. 그렇지만 ‘대간 혀, 날망, 건건이’처럼 다른 지방에 비해 고유 낱말은 많지 않아도, 들으면 금세 알아채는 이유가, 바로 충청도 말 특유의 가락과 고저장단에 있다. 걷기운동에서 보폭을 5cm만 늘리면 건강과 수명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충청도 말은 흔히 10%쯤 쳐진다.


그야말로, “아부지, 돌 굴러 가유우--.”다. 그 틈새를 느릿느릿한 3단화음 애드리브로 메꾸어, 느림의 미학과 마음의 건강 비결로 맺어진다. 충청도 사투리의 백미는 직선적인 표현을 피하여 에둘러 돌려 말하는 눙치기 화법, 바로 ‘곁말’에 있다.

회식 자리에서 고기를 굽는데 눈치만 보며 아무도 젓가락이 먼저 나가지 않는다.
충청도 신입사원이 덥썩 집어 들면서, “다들 탄거를 좋아하시는 개벼유” 한다.
밉지가 않다. 앞서 얘기한 기우제도 검은 구름에 비가 온다고 했다가, 안 오면 공연히 앞장서 입방정을 떤 탓으로 타박 받지 말라고,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라면서 은근슬쩍 눙쳐두는 것이다. 
 

거짓과 욕설과 막말이 뒤범벅된 정치권 발 험상궂은 악담이, 온 국민을 갈라치면서 분노조절장애와 인성 저질화를 조장하고 있다. 그중에도 대변인(代辯人)인지 대변(大便)인인지 모를 인간 중에는, 이 닦을 때 치약·칫솔을 쓸지 걸레·하이타이를 써야할지 답이 안 나오는 더러운 주둥이가 널렸다. 국민화합의 첫걸음으로, 정치인들이 드라마 소년시대를 한 번 보고, 충청도 사투리 흉내내기 연습을 권한다.

얘기를 조금만 늦추어 한 번 더 생각한 다음에 말하고, 내용을 조금만 완곡하게 눙쳐서 픽하고 웃고 나면 꼭 쥔 주먹이 절로 풀리는, 소년시대의 대화로 가자.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