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의신보는 대한민국 치과계 역사의 ‘산증인’이다. 본지는 창간호를 시작으로 지령 3000호에 이르기까지 불굴의 생명력을 이어오며 치과계 발자취를 빠짐없이 기록했다. 지령 3000호 특집호를 맞아 본지가 장장 57년 2개월간 채워온 치과계 여백을 돌아봤다.<편집자 주>
본지는 1966년 12월 15일 ‘칫과월보’라는 이름으로 창간, 치과계 언론의 역사를 열었다. 창간호를 살펴보면, 새 출발에 대한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을 엿볼 수 있다. 지령 1호 2면에 실린 당시 최진환 공보이사의 기고에 따르면 해방 직후에도 치협의 기관지는 존재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폐간했고, 이후에도 여러 번 창간 시도가 있었으나 단 몇 호를 내놓고 폐간되는 등 애환의 점철이었다고 한다.
최 공보이사는 “이 회보가 깊은 뿌리를 내리도록 다 같이 힘을 모으는 곳에 살길이 열릴 것이다”라고 당시 기고에 썼다.<사진1>
제호처럼 본지는 창간호를 시작으로 한동안 매달 한 번 발행되는 월간지로 명맥을 이어왔다. 1967년 1월 15일자로 발행된 지령 2호에서는 1면 제호를 ‘齒科月報’로 변경했다.
1970년대 중반은 본지가 변혁을 위한 주춧돌을 놓은 시기다. 우선 광고지면, 제호, 운영체계 등에서 큰 변화
가 이어졌다. 1975년 1월15일자(제91호)부터 1면에 전면광고가 게재되기 시작했다. 같은 해 9월 1일자(제98호)부터는 월간지로 생명력을 이어온 지난 10년을 뒤로하고 격주간지로 발행되기 시작한다. 현재의 ‘齒醫新報’라는 제호를 품은 것도 이때다.<사진2>
# 매주 발간, 가로쓰기 등 혁신 지속
1983년 6월 5일자(제280호)부터는 월 3회 발행으로 증간하고, 1984년 12월 8일자(제333호)부터는 비로소 월 4회 발간을 시작해 주간지 시대를 열면서 오늘날 치의신보의 면모를 갖춘다.
본지의 혁신은 지면에 국한하지 않는다. 1994년 5월에는 자체 광고수주로 제작비와 운영비를 충당하는 완전 독립채산제로 전환하는 등 경제적 자립시스템도 갖춘다.
1997년 7월 19일자(제915호)부터는 제호를 한글 ‘치의신보’로 변경하고, 보건의료계 기관지 중 최초로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한다.<사진3>
2003년 7월 7일자(제1187호)부터는 치과계 언론 최초로 주 2회 발간을 시작, 1면 기획기사 강화 등을 통해 명실상부한 의료계 정책·속보지로서 전기를 마련했다. 또 2005년 10월 24일자(제1400호)부터는 표지 1면을 업체 광고면에서 기사면으로 전격 교체하는 변혁을 이룬다.<사진4>
지령 2000호에도 특집호가 실렸다. 2012년 1월 9일자로 발행된 특집호에서는 여러 기사 콘텐츠와 더불어 독자가 참여하는 사진 응모 이벤트가 펼쳐졌고, 수상작이 1면을 장식했다.<사진5>
# 종이 신문 넘어선 변화와 혁신
치의신보에 내재된 ‘변화와 혁신의 DNA’는 급기야 종이 신문을 깨고 나온다. 2013년 11월 18일에는 치의신보 인터넷판이 역사적인 첫선을 보였다. 현재 치의신보 인터넷판은 연 방문자 400만 명이 넘는 치과계 대표 인터넷 신문으로 자리매김했다.<사진6>
또 2020년 9월 28일에는 뉴미디어 시대에 발맞춰 ‘치의신보TV’를 공식 개국해 정책 이슈부터 임상·학술 아카데미, 경영 비즈니스 등 다채로운 콘텐츠를 전달하고 있다.<사진7>
특히 2023년 11월 27일자(제2987호)부터는 지면을 그대로 디지털로 재현한 ‘디지털 치의신보’를 카카오톡을 통해 전국 3만여 치과의사 회원에게 배포함으로써 공보 기능 강화와 예산 절감에 기여하고 있다.<사진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