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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스펙트럼

얼마 전, 존경하는 선생님의 권유로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을 만났다. 치과의사로서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며 선물해주신 책이기에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나라 할지라도 책표지를 펼칠 수 밖에 없었다. 타인의 고통. 타인을 만나는 직업이기에 꼭 읽어봐야 한다 하셨던 말씀이 상당히 강렬하게 다가왔다. 책 표지부터 어둡고 침침한게 내 얕은 사고로 이해하기 어렵겠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왠지 모를 의무감이 들었다.


‘타인의 고통’의 저자인 수전 손택은 사진으로 보는 끔찍한 전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아니, “끔찍한 사진”으로 보는 전쟁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올바를 것이다. 우리는 사진에 공감하는 것인가, 그 사실에 공감하는 것인가, 혹은 그저 사진을 즐기고 있을 뿐인가에 대개 계속 고민해보게 한다. 수전 손택은 공감의 진실성에 대해 수백 번을 되뇌어 본 듯 하다. 


사진은 뇌리에 강렬하게 남는다. 움직이는 영상보다도 강렬한 이유는, 프레임 밖의 모든 맥락을 상상으로 채워야하기 때문이다. 그 자체만으로도 자극적인 사진인데, 사진 자체에 자극을 더한다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더 쉬운 일도 없을 것이다. “카메라가 발명된 1839년 이래로, 사진은 죽음을 길동무로 삼아왔다”라는 문장이 그 모습을 아주 날카롭게 꼬집고 있다.


수전 손택은 글을 마무리해가면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얘기한다. 인간들이 가진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사진을 보고자하는 욕구에 대해 고민하며 말이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안전한 곳에 있다고 느끼는 한, 사람들은 무관심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매일같이 뉴스를 보며 보는 끔찍한 사진들에 나는 진짜 그 사람들을 이해했는가? 내 일이 아니기에 그 사진의 무게를 감히 헤아리지 못하진 않았을까.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마음속에 설명하기 어려운 엉켜버린 실타래가 있었는데, 이 책이 그 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나는 그들에게 “공감”은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관심”이 있었는가? 솔직히 쉽사리 대답하기 어렵다. 그들이 처한 환경과, 그들이 가진 불편함을 진짜 이해하려고 했다 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내 마음에 강렬하게 남은 문장이 있다. “타인의 고통에 눈을 돌리는 것이라면, 더이상 ‘우리’라는 말을 당연시해서는 안된다.” 내가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던 많은 사람들이 스쳐간다. 나에게 진짜 힘이 됐던 사람은 말한마디 없어도 같은 상황에 처해본 사람들이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주변인이 힘들 때 위로해주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나는 이때까지 “우리”라는 단어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나 되새겨 본다. 


선생님께서 왜 나에게 이렇게 어렵고 어두운 책을 추천해주셨는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환자들에게 진정성있는 관심을 줘야 한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그러기란 쉽지 않다. 적어도 공감과 관심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며 경계해야 할 일이라는 것만큼은 명확하다. 선생님께서 이 책을 통해 내게 전하고자 하셨던 더 큰 메시지가 있을 것 같은데 아직 어린 나로서는 이정도 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아마도 10년, 20년 뒤에 이 책을 또 읽어본다면 선생님의 메시지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거라 믿을 수 밖에 없겠지. 그 때가 기대될 뿐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