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한민국 사회는 끊임없이 분열해 왔습니다. 사회주의자와 자유주의자, 남자와 여자, 부자와 빈자, 그리고 지역에 따라 나이에 따라, 반일파, 친일파, 친미파, 친중파. 이번에는 의사 대 대한민국 국민 전부입니다. 최근의 다툼은 이전처럼 총칼을 들고 하지 않지만 어느 쪽이 여론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느냐 하는 전쟁입니다. 일단 수적으로 게임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공격이 계속되고 있고 공성을 하려는 의사들의 필사적이지만 미약한 반격이 종종 있을 뿐입니다. 분열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면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는 것이 가장 좋지만, 타협이 성공하지 못하였을 때는 파업, 시위, 심지어 폭력이 동원되어 상대방을 공격합니다. 지금 상황은 대한민국 의료를 걸고 벌어지는 작은 전쟁입니다.
이러한 갈등이 생겼을 때 선과 악이 분명하다면, 영웅이 나타나 나쁜 놈들을 무찔러줄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종류의 갈등은 선과 선, 또는 악과 악의 대결입니다.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지듯이 악당들도 다 나름의 상처가 있고, 그로 인해 악역이 될 수밖에 없었던 명분이 있습니다. 악당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정의’입니다.
지금 정치권은 대다수의 여론을 앞세워 의사를 악역으로 몰아세우고 명분을 깔아 뭉개고, 국민건강을 위해 특권을 포기하고(어떤 특권을 누려왔는지도 의문이지만) 희생할 것을 종용합니다. 대다수의 여론의 지지란 즉 공리주의와 통합니다. 대한민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다수결에 따르는 공리주의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개개인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벌고 더 행복하기 위한 자유주의적 이중성을 보입니다. 하버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와 강의에 따르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공리주의라 하였는데 이를 결정할 다수의 시민은 그에 걸 맞는 정의와 공동선, 즉 시민의식, 희생정신이 갖추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선하고 정의롭고 공동선을 위해 언제든 희생할 자세를 갖추고 있을까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다수결에 따른 결정은 민주주의 최대 맹점인 우민주의에 빠질 위험이 높습니다. 다수의 만족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켰지만 그 다수마저도 결국 불행해져 버리는, 황금알을 낳은 거위의 배를 가르는 모습이 지금 눈앞에 있습니다. 거위의 발버둥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두 번째로는 재화의 가치와 그 보상 측면입니다. 하지만 자유시장에서 시장에 존중받지 못하는, 그리고 적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미덕과 고귀한 재화가 존재할까요? 자유시장의 모든 재화, 이때 재화란 부동산이나 자동차 같은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각종 편의와 예술, 그리고 의료 서비스 등을 포함하는 폭 넓은 의미입니다. 재화의 가격이 떨어지면 품질 또한 떨어지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사치품을 제외하곤 사회에 귀중한 인력일수록, 영향이 클수록 그리고 사람의 삶과 직결되어 있을수록 그 재화의 가격은 높습니다. 높은 가격을 유지해주고 대가를 지불했을 때 수준에 맞는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의료 인력이 늘어나면 경쟁에 의해 의료 인력의 가격은 떨어질 것이고 우수한 인력들은 타 직군으로 발길을 돌릴 것입니다. 대신 그 자리를 비교적 덜 우수한 인력이 채워 나가겠죠.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데 필수적인 타 직군을 비하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는 제가 암에 걸렸을 때 심장 수술을 받아야할 때, 저의 아이가 태어날 때만큼은 최고 수준의 의료진에게 치료를 받고 싶습니다. 저는 부자가 아니라서 외국에 나가 치료를 받을 여력이 없습니다. 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성이지만 그것은 의사의 능력이 갖추어져 있을 때 빛을 발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에 따르면 자유란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뜻이며, 자율적이라는 적은 천성이나 사회의 관습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자신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여기지만 사회적 인간은 이전에 겪었던 경험이 무의식 중에 축적되며 자신도 모르게 경험을 바탕으로 선택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 있어 저희가 고민해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왜 대다수의 국민은 세계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누리고도 의사를 공격하는 편에 서서 날을 세우는 것일까요? 물론 모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의료를 건드리며 자신들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먹이로 삼아 왔음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환자들이 병원에서 겪었던 불친절과 상처가 그 원동력이 되지는 않았을까 고민해 봅니다.
의료는 레몬이나 중고차 시장처럼 한쪽이 정보를 독점하고 구매자는 이를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많은 의료정보가 공개가 되고 있다 하더라도 아직은 몸의 고통을 치료하기 위해 마음의 불안함을 억누르고 잘 알지 못하는 의료인에게 나의 몸을 맡겨야 합니다. 저도 저의 가족이 아팠을 때 병원 침대에 누워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경직된 시스템과 불친절한 의료인, 미숙한 저년차 전공의들의 계속된 실수와 얼굴보기 정말 힘든 고자세인 교수의 진료를 경험하면서도 가족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분노로 치를 떨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국민들이 과연 의료인을 늘리는 게 보건의료에 도움이 된다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정치권을 지지하는 것일까요? 노력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는 한국 사회에서 단지 고소득인 것이 부러워서? 끌어내리기 좋아하는 국민의 불 같은 민족성 때문에? 순수한 아이들에게 이 문제를 물어봤을 때 아이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최대한 이성적 판단을 하려 애쓸 테지만, 자아가 갖추어진 그리고 성장하며 의료 시스템을 경험한 성인의 경우, 자신의 경험과 감정에 의해 이성적 판단을 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의사가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우선 정답을 내려야 합니다.
외부에서 봤을 때 정치권과 의사 측 모두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상대방의 기력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지루하지만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먼저 포기하는 쪽, 먼저 명분을 잃는 쪽이 패배자가 되는 것이고 한번 진 전쟁은 다시는 이기기 어렵습니다. 2년이 된 저희 상가에 많은 점포들이 폐업을 하거나 다른 업종으로 변경을 하였습니다. 외부에서 볼 때는 폐업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의료 시장이 아직 충분히 블루오션으로 보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의사가 다수가 되면 고용에 있어 인건비가 줄어들 것이고, 자본 세력이 들어온다면 싼 인력을 이용해 마음껏 시장을 확장해 갈 것입니다. 의료 민영화를 위한 전 단계 작업이라면 그것은 지나친 저의 망상일까요?
아직 우리 목에 칼이 들어오진 않았지만, 다음 타깃은 저희가 될 지도 모릅니다. 강 건너 불구경을 하다 대책 없는 오늘 보건복지부 장관과 정치인들이 짜고 치는 말장난 청문회에 정신이 번쩍 들어 짧게 적어보았습니다. 현대인은 모두 먹고 살기 힘들고 그래서 모두 지쳐 있고, 물어뜯을 고기를 던져 주기만 바라는 늑대들 같이 날이 서있습니다. 잔인하고 무서운 사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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