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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먹튀?’ 프레임에 한숨짓는 ‘폐업 예정의’

매스컴 오르내린 ‘먹튀치과’ 사태로 환자 불신 증폭
정상 폐업 불구 맘카페까지 가세 피해 보상 등 요구
환자 정리, 협력병원, 폐업 공지 등 각별히 신경써야

 

“개원도 쉽지 않았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엔 폐업도 만만찮네요.”


서울 강남 일대 저수가 치과의 연이은 폐업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먹튀치과’ 사태가 치과계에 남긴 상흔은 크고도 깊었다.

 

최근에는 치과에 대한 환자의 불신이 커질 대로 커진 나머지 정상적인 폐업 절차를 밟고 있는 치과도 환자들로부터 ‘먹튀’ 오해를 사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어 ‘폐업 예정의’들의 한숨이 짙어지고 있다. 이에 폐업 절차에 있어 좀 더 꼼꼼하고 세심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출혈경쟁·경영난에 양도 쉽지 않아
폐업 과정에서 최근 뜻하지 않은 ‘먹튀’ 프레임으로 홍역을 치른 A 원장은 폐업의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수년 전부터 저수가를 위시한 개원가의 출혈경쟁, 끝이 보이지 않는 경영난과 누적되는 적자는 서울에서 개원 10년 차인 그의 목을 죄었다. 우선 치과 양도·양수를 알아봤으나, 요즘 같은 개원 환경에 선뜻 인수하겠다는 연락은 없었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권리금도 대폭 깎는 등 안간힘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그는 결국 온전한 ‘폐업’을 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신환은 받지 않았다. 구환들에겐 폐업 사실을 전하는 등 대수롭잖게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단골 환자 네댓 명이 A 원장을 무더기로 찾아왔다. ‘먹튀치과’가 요즘 기승인데 공식적인 폐업 공지가 아직 올라와 있지 않으니, A 원장도 ‘그 부류’ 아니냐는 것.

 

A 원장은 임대료·인건비 등 월 10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감수하고도 반년 정도 여유를 두고 구환들의 진료를 마무리 지을 심사였기에 아직 폐업 공지를 할 이유가 없었다. 의료법상 폐업 공지 기한도 최소 14일 전까지였기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미 매스컴을 오르내린 먹튀치과 사태가 촉발한 환자들의 불신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였다.


또 다른 치과에서 남은 임플란트 진료를 하겠다며 환불을 요구한 한 환자는 대뜸 인근 30만 원대 임플란트 홍보물을 내밀며 그 차액만큼의 보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황당했지만, ‘먹튀’라는 오명이 붙을라 걱정된 A 원장은 일정 금액을 전달하고, 설득 끝에 환자를 돌려보낼 수 있었다.


A 원장은 “부푼 꿈을 안고 펼쳤던 개원의의 말로가 결국 이런 것이었나 싶어 씁쓸하다”며 “머잖아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해방을 기다리며 진료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원 20년을 넘긴 베테랑 개원의인 경북의 B 원장도 폐업 과정에서 적잖은 고충을 겪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지속되던 건강상의 문제와 경영난 등 여러 불안 요소가 겹치자, 결국 폐업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신환은 받지 않고 1년여 전부터 길게 여유를 둔 채 기존 환자 관리에 집중했다. 그간 병원은 적자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대부분 진료를 마무리하고, A/S 등 주기적 관리가 필요한 경우 협력병원을 소개해 주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협력병원이 모든 환자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웠다. 교통비, 정신적 피해 등 추가 보상을 요구하는 환자도 있고, 여의치 않을 경우 지역 맘카페를 통한 ‘먹튀’ 프레임 씌우기에 나서기도 했다. 결국 여러 곳의 협력병원을 연결해준 후에야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다.


B 원장은 “기존 환자들의 사후 처리 문제가 제일 어려웠다. 요즘 자칫 잘못하면 먹튀로 오해사기 십상인데 다행히 동료 선·후배 치과의사 도움으로 잘 처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 폐업 3개월 전부터 ‘페이드아웃’
최근 치과의원 폐업은 가파른 우상향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367곳이 폐업해 5년 새 최고치를 기록, 2020년(279곳)보다 31.5%나 늘었다. 이에 폐업 치과에 대한 환자들의 오해와 불신은 더욱 빈발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치과 폐업 시 환자 사후 처리를 가장 중차대한 문제로 꼽았다. 특히 교정·임플란트 환자의 경우 진료비 정산·반환, 협력병원 섭외, 폐업 공지 등에 각별히 신경 써 ‘먹튀치과’로 오해받지 말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치과 폐업 전문 컨설팅을 하고 있는 노현석 덴리스타트 대표는 “환자 정리를 하는 데 길게는 몇 년이 가는 경우도 있다. 힘들고 거칠 수 있지만 환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진료 마무리가 잘 된다면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며 “폐업 이후에도 봉직의로 근무할 수 있음을 고려해 ‘먹튀’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게 젠틀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기춘 원장(일산뉴욕탑치과의원)은 “폐업 전 임플란트나 교정은 1년, 보철은 6개월, 일반 진료는 3개월 정도 데드라인을 정해 페이드아웃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그 이후는 매출 욕심을 내면 안 되고 불필요한 분쟁을 남기지 않는 방향으로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병국 원장(죽파치과의원)은 “폐업을 앞두고 환자들에게 적절한 협력병원을 찾아줄 책임이 있다”며 “시작보다 끝, 개업보다 폐업이 더 중요한 만큼,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