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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夏至)가 지나고 무더운 7월이 시작되자마자 종강을 맞이한 본과생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질세라 해외로 하나 둘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다. 마치 역마살이 끼인 것을 해소하려는 듯, 혹은 이때가 아니면 앞으로 여행은 자기 인생에 없는 것처럼 우르르 출국장에 오르곤 하는데 이번 방학에는 나 역시 그 대열에 동참했다. 목적지는 미국! 태평양을 건너 살면서 처음으로 밟을 머나먼 이국의 땅에 설렜고 얇디얇은 지갑사정을 고려해 어떻게든 경비를 아껴보고자 게으른 내가 표를 4개월 전에 예매하고 숙박은 현지에 사는 친구집에서 뻔뻔히 신세를 지기로 하였다. 출국 하루 전 여유롭게(?) 짐을 싸며 현지 날씨는 선선하다는 친구 말을 믿고 긴팔에 외투 위주로 짐을 챙긴 뒤 대한항공 부럽지 않은 세련된 저가항공 비행기를 타며 끈적한 한국과는 다를 이상적인 미국의 날씨를 기대하며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러나 웬걸 나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도 마찬가지로 너무너무 더웠다. 습도가 낮아 건조하다 뿐이지 정수리를 내리쬐는 태양은 너무나 강렬했고 한낮에는 돌아다니기 버거울 정도였다. 이상적인 날씨를 기대하며 두께감 있는 옷을 가져온 내가 배신감에 친구를 흘겨보자 돌아온 답변은 저녁에는 선선하다는 얼척없는 답변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런 날씨에도 현지 사람들은 조깅을 하거나 오픈카 뚜껑을 열고 다닌다는 점이였는데 이게 미국에 대머리가 많은 이유인걸까 하는 망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간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짧은 관광을 마친 뒤에는 사막에 위치한 라스베이거스로 넘어갔는데 살인적인 더위라는 말의 참뜻을 이곳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도착 당시 현지 기온은 폭염특보가 발효된 47도였는데 지역 전체가 거대한 찜질방에 다름 아니었다. 숨 쉴 때마다 마치 미세한 모래가 폐에 들어오는 것 같고 어쩌다 바람이 불 땐 눈이 따가워서 제발 바람이 안 불었으면 하고 기도했다. 어떻게 이런 기후인 곳에 도시를 지을 생각을 한 건지 대단하면서도 당최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낮에는 도저히 관광을 할 수 없었고 해가 완전히 떨어진 밤에도 열대야에 쉽사리 돌아다니기 힘들었다. 더위와 추위를 둘 다 많이 타는 바람에 사계절을 빙자했지만 사실 여름과 겨울밖에 없는 한국의 날씨를 저주했던 나이지만, 동경했던 아메리카에서 진짜 더위를 맛보고 나니 애국심인지 향수병인지 모를 오묘한 무언가가 솟구쳤다.


귀국 후에는 7-8월의 한국 날씨가 생각보다 그리 무덥지만은 않았다. 47도의 폭염을 겪어본 경험 덕분일까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 술을 쓰지 않고 달다고 허장성세를 부리는 것마냥 이 정도 더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친구들에게 우쭐댔다. 물론 등에는 땀줄기가 송골송골 맺히면서.

 

여행 전후 우리나라 날씨는 한결같이 무더웠지만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가 뒤바뀐 것처럼 결국 모든 것은 상대적이고 마음먹기에 따라 다름을 체감했다. 쉬운 길을 가다보면 조그마한 언덕이나 돌부리에도 걸려 넘어질 것이고, 어렵고 고된 길을 걸을수록 굳은살이 박혀 웬만한 장애물에도 쉬이 지치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는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역시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본과 공부와 실습이 고생스럽겠지만 이 역시 라스베이거스의 맹렬한 더위마냥 나를 단련시켜줄 것이라 믿고 성실히 임해야겠다는 옹골찬 다짐을 하였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