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밴드에 작은형이 회현면민의 날 행사에서 엄마가 상품을 타셔서 기분이 최고로 좋았는데 연달아 두 번째 행운이 찾아와서 엄청나게 행복해하신다는 얘길 전해 듣고 퇴근길에 기쁜 마음으로 안부 전화를 드렸다. 엄마는 별안간 며칠 전 꿈 얘길 해주셨다. 곳간에서 돼지들이 꿀꿀거리길래 가보니 똥을 잔뜩 싸놨더란다. 그런데 곳간에 똥을 잔뜩 싸질러 놓은 돼지들 때문에 기분이 언짢아 있는데 다른 돼지들을 아버지가 안아서 그곳에 또 넣는 걸 보고 왜 똥이 그득한 곳에 또 넣냐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시다가 꿈에서 깨셨다고 하셨다. 그렇게 엄마의 행운은 예지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의 첫 번째 행운은 10월 5일 회현면민의 날에 찾아왔다. 강당에서 체육대회가 열렸는데, 부락마다 주민들이 나와서 장기자랑도 하고 상품도 받았다. 다들 아시겠지만, 추첨할 때 우리의 가슴은 분비된 아드레날린 탓에 콩닥콩닥 두근거리고 볼은 발그레해진다. 그리고 한 번쯤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본 경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 저 1등 상품을 제게 주옵소서.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랬다.
엄마는 김치냉장고도 주고 큰 TV도 주고 자전거는 또 얼마나 많이 주는지 모른다고 대회의 규모를 대략 말해주셨다. 강당의 맨 끄트머리에 앉아 계셨던 엄마는, 곁에 서 있던 여자아이 하나가 ‘우리 엄마도 저런 자전거 하나 받으면 잘 타고 다니실 텐데……’ 하고 울먹이는 말을 들었다고 하셨다. 옆에서 그 소리를 같이 듣던 한 아저씨가 “여기 여자아이 하나가 우리 엄마도 저런 자전거 하나 받으면 잘 타고 다니실 텐데” 하면서 운다고, 면민들에게 애 엄마에게 자전거 하나 주면 어떠냐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저기에서 그래 자전거 아이 엄마한테 선물로 주라고 추임새를 넣어서 결국 그 여자아이 엄마가 자전거를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회현면은 아직도 사람 살 만한 곳이다. 도심에서라면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 소리다. 우리 지연이ㆍ지성이도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면 적극적으로 엄마 아빠에게 경품을 주라고 어필해줬으면 좋겠다.
엄마는 무슨 상품을 받았냐 하면 무거운 짐을 손쉽게 실어 나를 수 있는 핸드 카트를 받았다고 하셨다. 기쁜 마음에 옥산에서 건강원을 운영하는 사위에게 전화를 걸어서 중학교 교문 앞으로 차를 몰고 오라고 하셨다. 한달음에 달려온 사위에게 선물하니 좋아하는 모습에 엄마는 더 즐겁다고 하셨다. 큰누나네가 용이하게 쓸 수 있는 경품이라고 하셨다.
엄마는 이어서 두 번째 행운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성렬이 형네 엄마가 위뜸 부녀회장과 전화 통화를 한참 하길래 무슨 쪼간인지 물어보셨다. 통화 내용은 방채마을 앞으로 노인용 보행기가 세 대 배정됐다는 얘기였다. 엄마는 김완례 권사님이 앞집 혜자네가 쓰던 낡은 거 쓰니까 김완례 권사를 하나 주면 어떠냐고 부녀회장에게 전화하셨다. 김완례 권사님 주자는 엄마의 말을 듣던 막내아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서둘러 말했다.
“엄마도 하나 필요하잖아요. 큰누나가 지난번에 이장 아저씨에게 하나 나오면 엄마 허리 많이 굽어서 아프시니까 좀 먼저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엄마는 ― 돌아가신 외할머니처럼, 집안 내력이신지, 아니면 허리 한 번 펼 새도 없이 밭에서 논에서 일하느라 그렇게 되신 것인지, ― 나 같으면 허리 아파서 더 못하겠다고 호미며 쇠스랑을 내던지고 쉬엄쉬엄 살았을 날들을 인내하며 살아오셨으리라. 어느 날은 허리가 굽으셔서 갈비뼈가 자꾸만 골반에 닿아 불편하고 접힌 부분에 피부가 서로 맞닿아서 아프다며 내보이셨다. 그래서 어머니의 허리 통증이 낫게 해달라는 기도와 장인어른, 장모님의 건강을 비는 기도는 늘 내 주일예배의 기도 제목이 되었다.
엄마의 두 번째 행운의 여신은 마을회관으로 찾아왔다. 그날은 마을회관에 적립된 회비로 한 달에 한 번 외식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돌아오는 차에는 마을 이장님과 부녀회장 그리고 엄마와 종화네 내외분이 타고 계셨다. 노인용 보행기가 화제로 떠오르자, 종화네가 제비를 뽑아서 나눠 갖자고 먼저 제안했다. 그래서 그날 밤 방채마을 회관에 노인용 보행기 3대 추첨을 위해 8분이 모이셨다. 추첨방식은 1, 2, 3등을 적은 종이를 뽑으면 보행기에 당첨되는 거였다. 당시 엄마는 마을회관에 놓여 있는 소파에 걸터앉아 계셨고, 바닥에 앉아 있던 분들이 6장을 먼저 하나씩 가져가고 두 장이 남았다. 남은 두 장 중에 그중 하나를 김완례 권사님이 집어가고 나머지 한 장을 엄마께 발로 밀어주셨다고 한다. 근데 그게 바로 3등이 적힌 쪽지였다. 그렇게 3등에 당첨돼서 마지막 보행기의 주인이 되셨다.
“미숙이네는 집에 보행기 있다면서 또 타가네.”라는 성길이형 엄마의 무례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도 보행기 받을 자격이 있어.”라고 당차게 얘기하시는 분이 우리 엄마셨다.
아버지가 생전에 “나는 니 엄마만 좋은 일 시킨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진료하다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아버지는 왜 엄마에게 그 말씀을 하셨던 걸까? 가장으로서 생색을 내고 싶었던 걸까?
그러다 마음속에 떠오른 생각은 아버지는 생전에 엄마에 대한 고마움, 미안함, 애틋한 마음들을 그렇게 에둘러 어머니를 위로하며 위트 있게 말씀하셨던 거 같다. 은행에 다니던 작은 형이 은행 다니기 힘들다는 푸념에 아버지는 “이가 물어도 꼼짝 말고 다니라.” 하셨던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위트 있는 분이셨다.
엄마의 굽은 허리만큼이나 굽은 그 허리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안타깝다. 굽은 허리에는 엄마로서 살아온 인생의 희로애락이, 먼저 아버지를 여의시고 사랑하는 작은 누나를 마음에 묻으셔야 했던, 그 허허로움과 외로움과 더 잘해주지 못한 상실감이 그곳에 온전히 담겨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어느 날 퇴근길에 안부 전화한 막내아들에게 “내가 지연이 지성이 어릴 때부터 너네 치과에 다녔는데, 내가 평생 그 고마움을 어찌 다 갚는다니.”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셨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몇 번을 다시 태어나야 부모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고마움을 다 갚을 수 있을지. 일평생 그 작은 체구로 자식들을 위해 감당하셨을 노고와 은혜를 어찌 말로 다 담아낼 수 있을까.
오늘도 머리를 조아리며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라는 말밖에 드릴 말이 없다.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