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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년간의 아름다운 동행을 마치며

시론

지금으로부터 약 29년 전, 공중보건의 임기를 마치고 Non-Kim 티오(TO)로 모교 치과병원 소아치과에서 3년간의 수련을 마치고 향후 진로를 고민하던 1996년 1월에, 분당에서 예치과병원을 신규로 오픈하는 타교 출신의 원장님을 정말 아주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취업근무 조건은 소아환자만을 보면서 고정급으로 첫 6개월, 매출에 연동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으로 이후 6개월을 지내본 후에 서로 맞는다고 생각하면 병원에 지분을 투자할 수 있는 조건이었습니다. 지도교수님께 상의를 드려보아도 어차피 투자금액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몇 년 전인 1992년에 역삼동에 첫 예치과가 생긴 이후에 매우 열심히 활동하는 원장님들이어서(그 원장님들과 학교 동기) 배우면 배웠지 손해 볼 것은 없다고 결론이 나서 근무를 시작했고, 외국 학회 참석 및 외국 치과의사들과의 교류 등 기존의 치과들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앞서 나가는 콘셉트 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치과의사가 될 때에 꿈꾸었던 ‘동네 아저씨 같은 치과의사’ 개념에는 맞지 않는 것 같아 약 반년 후에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원장님은 이유를 알고 싶어하셨고, 말씀드리자 밖으로 보이는 ‘겉만 보아서는 안 된다, 마음 속은 같은 개념이다’라고 하시면서 함께 그런 치과를 만들어가자고 제안하셨습니다. 그 첫 걸음으로 장애아를 위한 무료봉사진료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무려 10년 동안 토요일 오후 진료를 마친 시간에 3시간을 남아서 봉사를 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10년 후 그만둔 이유는 봉사가 필요 없는 부유한 분들이 무료라는 이유로 자꾸 찾아와서였습니다).

 

처음 진료를 시작했던 1996년 3월에는 직원포함 6인으로 시작했는데, 점점 규모가 커져가서 전체 식구가 40여명이 될 정도가 되었을 때는 주위에서 친구들이 “너희 병원은 고용창출을 위한 곳이니? 지출을 어떻게 감당하니”라고 걱정을 해줄 정도로 비용이 하늘을 찌를 듯하여 재정적으로는 실속이 없는 병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식구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만들어간 진료들, 여러 가지 행사들, 추억들을 되돌아보면 역시 다시 태어나도 그렇게 했을 것 같습니다.

 

‘환자도 고객이다’라는 예 네트워크의 철학을,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실천하느라 노력했었고, 회사나 종합병원에서나 행해지던 워크숍이라는 것을 처음 도입해서 직원들과 하나가 되어서 프로젝트를 완성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미소가 저절로 머금어집니다. 환자와 의료진과의 입장을 서로 이해해보려 역할극, 주제발표에 이은 뜨거운 토론의 열기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당시의 열정적이고 순수했던 때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합니다. 해마다 재미있는 추억들을 만들어주었던 엠티, 야유회, 체육대회, 송년회... 당시의 장면은 사진으로 남아있어 함께 하지 못했던 젊은 직원들과 함께 보면서 박장대소를 지금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일들만 있었겠습니까..., 매우 추웠던 구정연휴에 모두들 잘 쉬고 출근했는데 이상하게 병원전체가 냉동실처럼 춥다 싶었는데, 체어가 작동을 하지 않아 알아보니 화재 시 독가스를 배출시키기 위해서 응급으로 열리게 되어있는 대형유리창이 추위에 오작동 되어 연휴 내내 열려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병원이 시베리아 벌판처럼 꽁꽁 얼어붙어 버렸고, 녹을 때까지 아무런 진료를 못하다가 얼었던 물이 녹으면서 얼어 균열이 생긴 수관 부위에서 이번엔 분수쇼가 이루어져 물이 솟구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대처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반대로 히터 과열로 밤사이에 화재가 발생해서(정말 다행하게도 인명피해는 없이 방 하나만 태우고 진화) 온 병원에 시커먼 검댕으로 뒤덮여 결국 인테리어를 새로 할 수밖에 없어 건물 다른 층에 임시진료실을 하루 만에 만들어서 진료했던 일도 있었으며, 직원들의 숫자가 많다보니 서로의 파벌싸움으로 일부 직원들이 단체로 퇴사를 했던 일, 그 것 뿐이랴, 크고 작은 환자들의 컴플레인들... 그 중에는 결국 소비자보호원이나 의료배상보험의 손해사정인의 도움을 받았어야 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일들과 함께 지내온 날들이 어느덧 29년째, 그런데 올해는 새로운 출발의 선상에 서게 되었습니다. 세 사람의 동업 파트너 원장들이 의기투합해서 새로운 각자의 병원을 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 결코 금전적인 문제 등으로 다투어서 분리하기로 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온 것을 바탕으로 서로의 색깔에 맞는 고유의 치과를 운영해보기로 한 것입니다.

 

이제 곧 ‘분당예치과병원’은 29년간의 역사를 뒤로하고 폐업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11월에 새로운 3개의 치과의원이 역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결코 짧지 않은, 그리고 아마도 우리나라 치과 역사상 가장 긴 동업과, 그 기간 동안 돈 배분 등에 관하여 다툼이 한 번도 없었던 치과병원으로 기록될 지도 모를 이 시점에서 아쉬움과 뿌듯함이 함께 있습니다. 지금도 후배님들께서 동업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르고, 혼자 운영하는 병원을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저는 혼자 하는 치과는 이제 시작하는 시점이므로 조언해줄 것이 없지만, 적어도 공동개원만큼은 아주 많은 보따리가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공동개원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언제든지 연락주시면 제가 공부한 것, 경험한 것, 예상하는 것, 무엇이든지 나누어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짧지 않은 기간동안 함께 동행해주신 파트너 원장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사의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파트너 원장님들,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