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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이 되어 돌아온 교정 환자

스펙트럼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잘 해둬라. 나중에 커서 당신이 말 한 번 걸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미인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

 

어느 외국 서적에서 보았던 글귀이다. 매우 점잖고 긍정적인 문체의 책이었다. 진취적이고 밝은 내용이 담긴 책이었다. 그런 책 속에 있던 재미있는 문장이어서 더 기억에 남은 것 같다. 영화 배우, 모델 같은 여자들에게도 어린 시절은 있었을 테고, 그 시절에 조금 잘 해줬던 사람을 기억하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인 것 같다.

 

흰 머리가 수북한 지금, 내가 우리 직원들한테나 말을 걸지, 감히 어떤 여자에게 가서 말을 걸겠는가. 미인에게는 말을 걸 일이 없기도 하다. 그런데 어린 시절에 나에게 교정 치료를 받은 여자 아이가 미인이 되어 치과에 찾아온 일이 있었다. 일반 진료 환자의 이름은 기억 못 하는 경우가 있지만, 교정 환자의 이름과 얼굴은 매치를 잘 하는 편이다. 이름을 보고, 얼굴을 보았는데 매치가 안 되었다. 이름과 얼굴을 한참 번갈아 본 후에야 내가 교정치료를 해 준 여자 환자였던 것이 인지되었다. 

 

아이였을 때 돌출입을 주소로 내원한 여자 환자였는데 대학원생이 되어서 이전 개원한 나를 찾아왔다. 반가움과 보람, 기쁨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감정이 한데 어우러져 느껴졌다. 정신만 좀 있었으면, 평어로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었는데, 참하고 성숙한 미인으로 자란 환자를 보니 반사적으로 존대하여 대화를 잘 시작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유지장치를 착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교정 결과는 매우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미인으로 자라는데 교정치료가 한 몫 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Fixed retainer를 정리해주고, 교정 치료 결과를 잘 유지하는데 필요한 구강 자세를 알려주었다. 과정 가운데 아이 시절의 교정 전후 사진을 함께 보게 되었다.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모니터를 찍으며 “아하하하~”, 거리감 없는 환자의 웃음소리가 반가웠다. 어린 아이 시절에 만난 교정의 선생님은 그런 존재였다.

 

치과의사가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잘 해둘 수 있는 직업인 줄 미처 몰랐다. 그 여자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해외로 이주하기 전 마지막 구강 검진을 받으러 오기도 하고, 아들을 데리고 치과에 와 치료를 받기도 한다. 이제는 다 큰 어른이면서 나를 대할 때는 어린 아이 때에 나를 대하던 것처럼 표정 짓고 말하곤 한다. 흰 머리가 수북해진 나를 보면서 젊었던 나를 생각하는 지 스스럼없이 나를 대한다.

 

문득, 딸 가진 아빠들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해본다. 딸이 힘들고 괴로울 때 그 아빠들이 느낄 감정을 가늠해본다. 세상에 어떤 딸이건 그런 감정을 느끼는 아빠를 한명씩 가지고 있을 터, 나는 여자에게 그다지 후한 사람이 아닌데, 지금이라도 세상에 나온 딸들에게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내도 세상에 나온 딸 중에 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미인이 되어 돌아온 교정 환자, 다음에 볼 때는 좀 더 편하게 말을 건네어 보고 싶다. 어린 아이 시절에 알던 교정의 선생님 앞에서 거리감 없이 웃는 모습이 반가웠으니 말이다. 나처럼 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잘 해줘서 잘 되신 분이 하나 떠오른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의 돌출입을 교정해주신 위대한 치과의사 선생님, 얼마나 좋으실까. 그 분은 김연아 선수를 “연아야~”라고 부르실까?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