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수원 인계동에서 개원한 나는 간판을 올리기 전에 주변 원장님들께 인사를 하러 다녔다. 그중에서 옆 건물 치과원장님 몇 분이 가장 반겨주셨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점심식사를 같이하게 되어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설립자이신 박흥식 원장님께 한가족진료소가 시작된 배경부터 설립취지 및 그동안의 과정을 꾸준히 들어온 나로서는 수원시 임원을 하는 동안에 진료봉사에 동참하게 되었고 세월의 격변을 거치며 한가족진료소가 문을 닫기까지의 과정을 가슴 아프게 지켜보며 안타까워 할 수밖에 없었다. 보험틀니가 시작되면서 무료틀니 봉사가 어렵게 되었고 취약계층 청소년에게 치료해주는 사업도 대상자선정에 난관에 부딪히며 잠정적인 운영중단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에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거치며 어느새 잊혀진 공간으로 남겨졌다.
경기도치과의사회 회관 건물 2층에 자리한 한가족진료소는 6년 동안 방치되어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공간을 새로운 컨셉으로 한가족센터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봉사와 교육을 함께 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그려보았다.
하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필요해 엄두도 못 내고 있을 때 용기 내어 우리 수원시 회원분들에게 공개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더니 무려 1400만원이나 되는 기부금이 모아지는 감동의 순간을 함께했다. 오래된 체어 2대는 손을 봐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고, 나머지 공간에 세미나 할 수 있는 시청각 장비를 세팅하여 재개소를 위한 인테리어까지 모두 마친 시점에 어느덧 나는 수원시치과의사회 회장이 되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최근에 나에게 가장 많이 와 닿는 내용이지 않을 수 없다. 2024년 1월부터 리모델링된 한가족센터에서 나 혼자 치과진료봉사를 시작했다. 대상은 근처에 있는 꿈을키우는집이라는 보육원 아이들이다. 그곳은 나랑은 참 인연이 깊은 곳이다. 20여 년 동안 건담프라모델이라는 취미를 가진 나는 온라인동호회를 운영하며 일 년에 한번 씩 큰 행사를 치러왔다. 그 때마다 십시일반 자선모금을 했었고 그 성금으로 취약계층을 도운지 오래다. 사랑의열매, 사랑의도시락도 지원해보고 해비타트를 통해 독립운동가후손 주거지원도 해보았다.
다른 보육원에 성금을 전달한 적도 있지만 아이들과 교감의 부재가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수원에서 기부할 곳을 찾던 중 수원 장안동에 위치한 꿈을키우는집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모은 성금을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조립식 모형제품과 학용품으로 환원하여 동호회 운영진들과 함께 방문을 하여 하루종일 아이들과 만드는 행사를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고가의 취미로 인식될 수 있는 프라모델 조립을 기초부터 배우며 즐기는 법까지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십년이 넘도록 꾸준하게 아이들과 친해지게 되었고 어느새 거기서는 ‘건담아저씨’로 통하게 돼 오픈하우스때 응원차 가면 아이들이 자기가 만든 로봇 모형을 자랑스럽게 가져와서 보여주곤 한다. 그런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구강위생을 관리해주며 점검하고 치료할 수 있는 키다리 아저씨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원장님과 선생님들에게 의견을 내었는데 아주 흔쾌히 좋아하셔서 시작된 일이 되었다. 인테리어 리모델링은 했지만 진료를 바로 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다. 오래된 치과 유니트체어가 두 대가 있고, 소독기조차도 없는 어려운 환경이었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혼자서 아이들 구강검진이라도 하면서 예방적인 스케일링을 해주자고 마음 먹었고, 수요일 진료 마치고 우리병원에서 기구나 재료들을 왕진가방에 싸들고 가서 저녁에 한 시간정도 세네명을 보기 시작했다. 내 뜻을 같이하는 수원시 임원들이 하나 둘 동참하기 시작했고, 수원시 회원들 중에서도 같이 봉사를 하고 싶다는 연락이 와서 현재는 8명의 한가족센터 봉사단을 구성할 수 있었다.
수원시치과의사회와 협력관계에 있던 치과 관련 업체들이 이 소식을 듣고, 소독기, UV소독기, 초음파세척기 등등을 기부해주기 시작했고, 다양한 업체에서 재료도 지원해주었다.
치과의사 몇 명만 모여서 하던 일이 인근 수원여대 치위생과 봉사동아리 ‘해담이’ 학생들까지 참여하여 많은 인원이 함께하는 큰 행사가 돼 버렸다. 장안구보건소에서까지 협약식을 통해 아낌없는 성원을 보내주시는 게 참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다.
반년동안 13회에 걸쳐서 50여명의 아이들에게 구강검진 및 스케일링, 구강위생 잇솔질 교육, 전문가 불소도포, 구강위생과 관련된 그림그리기 등등 이런 뜻 깊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을 해주신 모든 분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기억에 남는 아이가 한 명 있다. 입천장이 개구리 배처럼 불룩하게 부어있는데도 아프다고 티내지 않던 잘생긴 고등학교 남학생. 당일 날 겨우 응급으로 배농을 시켜주고 이후에 우리 치과에 데려와서 커다란 낭종이 있는 치아 5개를 살려보려고 신경치료 열심히 하고 아주대 치과병원 구강외과 교수님께 의뢰해서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는 하나의 치아도 손상 없이 잘 지내고 있는 아이가 있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학생의 앞니를 모두 살려내어 너무나 보람된 시간이었다. 자주 봐서 그런지 그 아이가 친근하게 말 걸어 줄 때가 참 좋다.
작년 수원시치과의사회 송년의 밤에 아이들이 그동안 그린 그림을 전시하여 회원들에게 보여드렸다. 그동안 이런 소식을 알지 못하셨던 회원들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내년에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소식을 많이 들었다. 너무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어 내심 뭉클한 순간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기 전에 또 한 번 아이들을 불러다가 청소도 해주고 불소도 발라주고 잇솔질법도 알려주고 그림도 같이 그리면서 다시 한 번 따뜻한 봄을 준비하는 날을 손꼽아 기대해 본다.
* 한가족센터 봉사단 : 민봉기, 한윤범, 임준우, 최현성, 신승우, 심도희, 장석훈, 우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