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Denis)는 중학교 때 많이 읽은 미국만화 주인공이다. 취학 전인 5, 6세의 아이인데, 엉뚱한 고집으로 계속 사고를 저질러서 어른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맥주를 마셔도 어린이용 루트비어가 아니라 알코올이 들어간 라거 비어를 달라고 떼쓰고, 말문도 더디 터져 1 2 3 숫자 셀 때, 7까지는 잘 나가다가 곧장 11로 튄다.
Seven과 eleven은 운(韻: rhyme)도 잘 어울리기에, ‘7-11’이 편의점 이름에까지 쓰이게 된 것은, 데니스 만화 덕분인지도 모른다. 하도 사고를 저지르니까 부모나 이웃은 그에게 별난 별명을 붙여준다. ‘Denis the Menace; 겁나는 데니스’라고.
요즘 2기를 맞아 천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는 트럼프 미국대통령을 보면, 데니스가 아니라 도널드가 한술 더 뜨는 악동 같다. 그가 쓰는 형용사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Beautiful과 Terrible 단 두 개뿐이요, 연설을 하면 CBS(Cheat-Bluff-Swear)방송의 초등학교 저학년 버전(Version)이다. 그러기에 대학교수를 비롯한 많은 엘리트가, “거짓말과 협박과 욕설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니, 4년만 피해있자”라면서 해외로 탈출한다고 한다. 허황된 통계숫자를 인용하고 약속을 계속 뒤집으면 그건 거짓말이요, 난데없는 관세폭탄은 협박이며, 상대국을 향해 “Trade Cheaters!, Dirty 15!”이라고 부르는 것은 막가자는 욕설이 아니고 뭔가?
창(唱)은 고수(鼓手)의 추임새로 흥이 오르듯, 응원이나 동맹은 승리를 담보한다.
일차대전이 끝나자, 자발적으로 참전했던 미 윌슨대통령은, 매우 합리적인 원칙을 주장한다. 패전국 독일에 가혹한 배상금 자제, 약소국에 대한 민족자결주의, 그리고 전쟁 예방을 위한 국제연맹 창설이다. 배상금은 프랑스 푸앙카레와 조지 영국수상의 고집에 밀렸지만(1320억 마르크), 자결주의는 대한민국을 포함한 여러 식민지를 성공적으로 해방시켰는데, 정작 국제연맹은 미국 상원에서 비준을 거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거부 이유가 참전(參戰) 시 상원 권익의 불투명이라니...2차 세계대전의 불씨는 이때 이미 뿌려졌다. 전쟁에 대부분의 노동력을 잃고 잿더미에 올라앉은 독일국민은, 맥주 무한수출을 막는 금주령에 이어 대공황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배상금 거부’를 외치는 히틀러에게 여의봉을 들려준 것이다. 다시 2차 세계대전의 뜨거운 맛을 본 뒤에야 비로소 국제연합이 창설되고, 그 첫 시험대가 북한의 6·25 남침에 대한 응징이었다. 유엔결의가 있었다 해도 미국 단독 참전은 명분이 취약하니까, 참전 16개국의 동맹형태를 갖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월남전 참전은 미국에 대한 신뢰를 확인하고 연합군 체제를 완성해준 보은의 전쟁이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지만 특히 20세기 냉전시대를 거치며 동맹국 개념은 그 의미가 더욱 두드러져간다. 한 나라라도 더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시진핑의 일대일로 정책을 보라.
도널드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이웃 캐나다에, 주권을 포기하고 미국 51번째 주로 들어오란다. 과거 4개 주를 내어준 멕시코를 아예 밀수와 밀입국의 범죄 국가로 몰며, 거대한 장벽을 쌓는다. 우크라이나 희토류의 독점과 가자지구에 미국의 위락시설 설치를 공언하고, 그린 랜드를 갖겠단다. 그 틈에 생뚱맞게 말 잘 듣는 한국과 일본만, 벌거벗은 채 온몸을 주먹(Bullying)에 내맡기고 있다.
모든 조치를 ‘행정명령’으로 밀어붙이는 모양새는, 여의봉을 휘두르던 히틀러의 라인란드 진주와 폴란드 나눠먹기를 연상하게 한다. 힘에 의한 영토의 변경을 침략으로 규정한 국제 관행을 무시하고, 이미 백여 년 전 ‘영양가 없음’으로 드러난 ‘제국주의 시대’를 소환하는 시대착오 아닌가. 예로부터 큰 부자가 되려면 신뢰부터 쌓으라고 했다. 신뢰는 삶의 기본이요, 동맹국과 적대국을 갈라주는 저울이다.
재물을 풀어서 믿음을 사기도 바쁜데, 돈 몇 푼에 신뢰를 파는 것은, 동맹도 잃고 결국은 돈도 잃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매일 수십 개씩 쏟아내는 행정명령이 위헌심사나 기타 국민저항을 얼마나 버티어낼지도 의문이다. 트럼프 본인은 물론 측근과 참모진이 파격적인‘대 전환’을 통하여, 온 세계를 공포로 몰아가는 광풍을 적극적으로 진정시키고, 평화와 안정을 향한 숨고르기에 착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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