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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시지프스

릴레이 수필 제2662번째

올해 DIMF(대구 뮤지컬 페스티벌) 공연들을 살펴보다 눈길을 끄는 제목이 있었다. <시지프스>, 포스터는 폐허 위의 단 하나의 출구라는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시지프스가 누군지 알아?” 아이에게 물었고, 놀랍게도 아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람이잖아, 산꼭대기로 돌 굴리는 형벌을 받았던”이라고 대답했다. ‘영어단어 빼고는 다 잘 외우는구나.’ 속으로 웃으며 예전에 열심히 읽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오랜만에 떠올려 보았다. 대개 그 신화의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주제는 사랑, 운명, 자만, 죽음이었던 것 같다. 그중 시지프스는 신을 기만한 죄로 산 정상까지 바위를 올리고, 산 정상에서 떨어진 바위를 다시 올려야 하는, 무의미한 노동의 형벌을 받아야 했던 인물로 어릴 때는 단순히 어리석고 불쌍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에서는 우리 치과의사의 삶과 별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실소가 나왔고 곰곰이 그 생각에 빠져보았다.


우리는 매일 출근해서 환자를 보고, 더 보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손에서 미러를 놓는 그 순간까지 환자를 보며 끝없이 반복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어떨 때는 내가 했거나 해야 하는 반복되는 진료가, 환자가, 직원이, 매출이나 인근의 덤핑 치과가 돌덩이처럼 나를 짓누를 때가 있지 않는가? 또 너무나도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치과의사로 일을 하다 보면 두 가지 감정은 반드시 찾아오는 것 같다. 자만과 무력감, 내가 대단한 사람인 양 자신만만하다가 작은 일에도 무기력해져서 자책하게 되는, 이 상반되는 감정을 우리는 누구나 겪는 것 같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겪고 있는 많은 어쩌면 형벌 같은 상황들이 내 자만이나 무능으로 인한 경우란 것을 깨달았을 때 괴로움, 좌절감까지도 느낄 때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다시 보니 시지프스는 그저 단순히 힘겨운 형벌을 받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 형벌을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자진해서 그 형벌을 수행하고 주어진 운명에 대해 최소한의 저항을 하며 본인의 의지를 보여주는 인물로 유한한 인간의 삶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보다 어차피 죽을 운명임에도 스스로 포기하거나 무기력해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이렇게 무엇이라도 하고 이루려고 노력했기에 신을 기만하고도 천수를 누렸다고 하니 그의 바보 같은 선택이 오히려 대단하다 느껴진다. 이제는 프랑스 철학자 알베르 카뮈가 그를 끝없이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하는 존재로 찬양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무력감 속에서도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선택을 하는 그에게, 삶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며, 자만도 무력감도 결국 ‘살아 있으니까’ 느끼는 것이었으리라.


우리도 매일 밀고 있는 ‘바위’가 있다. 다행히도 그 ‘바위’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그것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일상을 잘 이겨내고 싶다. 치과의사의 삶이 고되고 어쩌면 평생을 이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로는 심장이 뛰는 이 순간이 멋지지 않은가? 이렇게 일할 수 있는 하루하루가, 바보 같이 일을 해내는 내가 대단하지 않은가?


나는 오늘도 나의 바위를 밀어 올린다. 무게를 알면서도, 쓰러질 걸 알면서도. 어쩌면 어떤 날은 아무 성과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서 나는, 나의 존재를, 나의 의지를 확인한다.


내 안의 시지프스는 아직 살아있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그러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