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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에서 온 메시지

시론

어느 일요일, 여느날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산에 가려고 준비하면서 핸드폰을 들어 간밤에 온 메시지를 무심코 확인하는데 통상적인 문자들과는 다른 특별한 카카오톡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다름 아니라 진료를 받던 16세 여자아이 어머니께서 저 멀리 콜롬비아에서 연락을 주신 것이었다. 이 가족은 아버지께서 회사 주재원으로 남미 나라들을 2년에 한 번꼴로 이동하면서 외국에서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고 한국에 가끔 나올 때 진료를 받았기 때문에 혹시라도 현지에서 치과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현지 치과방문이 힘들거나 자문을 구할 일이 있을 때 이용하시라고 메시지 친구로 등록을 해드렸었던 가족이었다.

 

메시지의 내용은, 아이가 평소에 이갈이가 있었지만 일상생활에 크게 불편감은 없어서 그냥 지내왔는데 어느 날부터 턱관절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입이 잘 안벌어지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지 치과에 방문해서 물리치료 등 여러 가지 처치를 받았는데 개선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해저서 이제는 입이 1cm정도 밖에 안벌어지고 통증도 심해서 일주일째 미음을 흘려 넣어 겨우 식사를 하고 있는 중이고, 결국 현지 대학병원 치과까지 가보았는데 상태가 너무 심하니 전신마취하에 턱관절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어린 아이를 전신마취를 시켜야하다니! 부모님들께서는 너무나 답답하고 막막해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해도 판단이 안서다가 문득 제가 메시지 친구로 해드렸던 것이 생각나서 제게 연락을 하셨다는 것이었다. 이 날은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에 나무와 산속 공기를 느끼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먼 곳에 있는 그 아이를 어떻게 도와주는 것이 좋을까?’하는 생각으로 꽉 차버렸다. 결국 일단 한국으로 나오도록 해서 방법을 찾아보자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오실 수 있으시겠냐고 카톡메시지를 드렸더니 아이가 일주일째 입을 거의 못 벌리고 제대로 못 먹고 있는데 지금 공부가 문제냐시면서 당장 귀국하시겠다고 하셨다.

 

아이가 한국에 나오더라도 그 정도 중증인 턱관절 증상을 내 실력으로 해결해줄 수가 없어서 부탁드릴 수 있는 전문의 선생님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고, 다행히 평소에 친분이 있던 대학병원의 교수님께 부탁을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콜롬비아에서 한국으로 출발하시기 전에 미리 소개드릴 병원의 교수님 성함을 알려드리고 병원에 전화를 하셔서 일단 멀리 예약이 되더라도 그 분 앞으로 예약을 먼저 잡으신 후에 알려달라고 했고, 교수님께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알려드리고 도와주셨으면 한다고 부탁을 드렸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교수님께서도 안타깝게 여기셔서 몇 달 후로 잡혀있는 예약을 환자 예약이 취소된 앞쪽으로 조절해주셨고 그 일정에 맞추어서 아이와 어머님께서 한국에 나오셨다.

 

멀리서 답답한 마음으로 한국에 나오면서 ‘과연 한국에서는 수술 안하고 해결될 수가 있을까?’ 걱정하면서 소개드린 병원을 방문한 모녀는 그 날로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셨다. ‘선생님 기적이 일어났어요, 아이 입이 벌어졌어요!’라고 말이다. 대학 교수님께서 아이의 턱관절 상태를 살피시더니 “이상하다? 그리 심해보이지 않는데...?”라고 고개를 갸우뚱 하시면서 아이 턱을 이쪽 저쪽을 움직여보시다가는 갑자기 힘을 확주시더니 턱을 벌리게 해주셨다는 것 이었다! 신앙이 있으신 어머니는 그 순간 정말 성경 속에서 바다를 가르는 ‘모세의 기적’을 보는듯한 감격을 느끼셨다고 전해오셨다. 그리고는 그 교수님께 보다도 오히려 내게 너무 감사해하셨다.

 

한 번 입이 벌어진 것으로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몇 번 더 진료를 받아야 해서 바로 출국을 못하시고 며칠 더 체류해야하는 일정이신데, 진료받는 것도 아닌데 꼭 우리 병원에 오셔서 인사를 하시겠다고 하셔서 만류했지만 결국 아이와 함께 오셨다. 어머니와 아이는 두 손에 한가득 뭔가를 들고 오셨다. 직원들 간식, 여러 선물들(아이가 직접 고른거라고 하시면서)이었다. 손사래를 치다가 결국은 감사히 받고 너무 염치없이 받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자 어머님께서는 그런 말 말라고 하시면서 정말 생명의 은인같은 분이시라고, 아이가 선생님처럼 살고 싶다고, 인생의 멘토가 되어달라고 하는 등의 너무나 과분한 감사의 표시를 계속하셨다.

 

마침 그동안 써온 글을 모아서 출간한 책에 아이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해서 병원 칫솔세트와 함께 선물로 드리니 더욱 좋아하시면서 이 책을 읽고 아이가 더욱 다른 사람을 위해서 살아가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그리고 점심식사 자리에서 현재 콜롬비아 이국땅에서 거주하면서 겪는 어려운 이야기들, 또 우연히 대화의 공통분모가 된 미국 시카고 생활(이 가족도, 저도 시카고에 1년 이상 거주한 적이 있음) 이야기, 타인을 도와주는 이타주의 봉사에 대해서 등등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고 아쉽게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2시간 후에 그 대학병원 치과에 방문하는 예약날이어서.

 

어머니와 아이는 가야할 길로 쉽게 출발하지 못하시고 식당에서부터 치과에까지 저를 바래다주면서 인사를 하셨다. 거듭 감사해하면서 말이다.

 

돌아서서 대학병원으로 향하는 모녀를 보면서 마음속에 한가득 부풀어오르는 뿌듯함을 느꼈다. 남을 도와줄 때 느끼는 기쁨을 마라톤의 ‘runner’s high’에 비유해서 ‘helper’s high’라고 했던가. 내가 비록 턱관절분야에는 전문성이 없어도 고생하는 환자를 도와주려는 마음만 있으면, 뜻 있으면 거리가 멀어도 방법이 찾아지고, 도움을 손길을 뻗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세상과 내 마음 모두를 조금이라도 더 훈훈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고, 아무쪼록 아이가 힘든 시기를 잘 견뎌서 완전히 잘 치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해본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