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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의 향연(치과의사문인회)-소설-]바보죽음(5)/신덕재

모든 아픔의 고통도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오고 있다
다만 의식이 흐릿하고 졸리며…

 

 

신 덕 재

·소설가 1995년 ‘포스트모던’등단
·서대문구 중앙치과의원 원장

 

 

3일째. 


회색빛 벽면에 링거병이 겹쳐져 보이는데 벽에 붙어 있는지 떨어져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링거병에서 떨어지는 액체만이 큰 충격으로 다가와 나의 가슴을 치고 있다. 이 충격은 흐릿한 감각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신경세포의 자극으로 찢어지게 저며오는 신체적 고통의 충격이다.
아픔.
사랑의 아픔, 정(情)의 아픔, 열패(劣敗)의 아픔, 실연의 아픔, 낙오의 아픔이 큰들 신경세포의 충격에 의한 아픔만 할까?


병원이 소란스럽다. 통곡의 울음이 이어졌다. 여동생이 온 것이다. 나의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온 것이다. 보고 싶다. 안아주고 싶다. 손이라도 잡고 싶다. 왜 몸이 말을 안 들을까? 어제의 동통쇼크 이후 다리로 부터의 아픔은 없다. 다리가 죽어서 무감각해진 모양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신경세포의 충격에 의한 아픔이 제일 큰 아픔인줄 알았는데 동생이 나타나고 보니 그리움, 연정, 영욕, 회상과 같은 인연의 아픔이 엄습해 온다.


바보스런 생각, 아니 나의 의무라고 나 자신을 희생하면서 보낸 여동생의 시집살이가 살듯하고 행복했다면 인연의 아픔이 그리 크지 않았으리라. 결혼한 여동생은 첫 아이를 항문이 막힌 기형아를 낳았고 어린 조카의 수술이 몇 차례 계속되면서 여동생과 매제의 사이는 벌어지고 말았다. 매제는 술과 방탕한 세월로 이어지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그때마다 나는 동생에게 생활비와 병원비를 충당해 주었다. 그러기를 10년이 넘었다. 이런 고생과 노력 속에도 조카는 이승의 연을 못하고 죽었고 매제는 술로 세월을 보내다 간암이라는 병을 얻게 되었다. 이 또한 나의 몫이었다.


저런 여동생이 지금 왔다. 에이! 빌어먹을 세상! 잘 살아보려는 사람에게는 더 고생을 시키고, 죽어라 죽어라 하니 이놈의 세상이 제대로 된 세상이란 말인가? 운(運)이 어디 있단 말인가? 운이란 한번 나쁘면 다음에 좋을 수도 있는 법인데, 줄창 나쁘기만 하니 운이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야, 이 씨팔놈들아! 우리 구씨형 살려내란 말이야! 이 좃가튼 놈들아! 돼지사장놈 어디갔어?”


돼지사장 유사장은 어제 이후로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이곳에 있으면 노가다판의 일꾼들로부터 치도곤을 당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제 쨉새와의 조작된 자살 진술 이후 어디로 갔는지 사라지고 없다. 지금 소란을 피우는 녀석은 땅딸보 서씨다. 우리는 땅딸보 서씨를 ‘딸보 서씨’라 부른다. 술을 많이 먹어 코가 딸기코에다 키가 짤막해서 부친 말이다. 작은 키에 술을 먹으면 주사가 있어서 모든 사람들이 상대를 안 하려고 한다. 사실 막노동판에서 술주정이나 술판 싸움이 큰 흉은 아니다. 그런데도 ‘딸보 서씨’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술 주정보다 흐린 셈과 심한 투전놀음 때문이다. 나도 그의 흐린 셈에 당했다. 2년 전 급하다는 말에 돈을 빌려줬다. 그 후 그는 소식도 없고 돈도 갚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금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끔찍이도 생각하고 나의 보호자처럼 소란을 피우고, 개판을 치는 모양을 보니, 좀 어줍잖다. 정말로 나를 위했다면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고 걱정스럽게 했던 빌려간 돈을 갚았어야 했다. 그리고 자기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빌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 일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내가 죽을 지경이 되니 나타나서 자기가 마치 보호자이고 나를 대신하는 양 떠들어대고 고함을 치니 어처구니가 없고 한편으로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딸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좋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하고 현금 보관증이나 차용증서를 주고받은 사이도 아니고 돈을 빌려줄 때 누군가 함께 있었던 것도 아니니 시치미 떼고 자기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떠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