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8번째
어이 오 선상
작년 이맘때쯤 다리가 개통되었지만(2009년 3월 개통) 여전히 섬으로 불려지고 있는 이곳 소록도.
다리 개통과 함께 한센인에 대한 편견도 극복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미흡하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 봅니다.
다들 봄 꽃 구경 등 다양한 행사와 황사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 때문에 떠들썩하지만 이곳은 너무나도 조용하고 꽃향기만 봄바람에 날려 오고 있습니다. 저의 원생들은 마냥 소록도에 구경 온 사람들을 보는 낙으로 하루하루 생활을 하고 있으며, 꽃 구경은 생각지도 못 한답니다(지천으로 꽃은 피어있지만 눈들이 없거나 희미하게 보여서) 벌써 4월의 중순인데도 이곳은 바람이 매우 차갑게 불어 옷을 여며야 하는 날씨입니다. 또한, 4월까지 보일러를 켜고 자도 등짝은 사하라 사막인데 얼굴은 시베리아라는 이곳 특유의 계절이 있는 곳입니다
저에게 축의금으로 거금(3천원, 1997년)을 주시고 천국에 가신 할머니 한 분(조복근 할머니)을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보통 밖에 계시는 87세의 어느 할머니와 다를 바 없는 너무나도 평범하시고, 세상 사람들 걱정하시며, 매일 기도하고, 천국 가실 것만 생각하시면서 하루하루는 보내시는 조복근 할머니.
16년 전에 이곳에 처음 왔을때 남생리(원생들이 거주하는 마을)에 사시면서 몸이 많이 불편하신 할아버지를 돌보시면서 바닷물이 빠졌을 때 바지락을 캐와 할아버지를 위해 국도 끓여드리고 전도 지져서 드리신 할머니.
마을 회진을 하던 날 우연히 바지락전을 부쳐 나에게 권하셨는데 점심을 먹은 지 얼마되지 않아 주저주저하면서 거절을 하였습니다. 어렵게 완성된 파전에 파리가 안고, 녹이 쓸데로 쓴 후라이펜에 손가락 개수는 저보다 적으시며, 얼굴도 저보다 너무나도 못생긴 할머니가 주신 파전을 쉽게 받아 먹을 수 가 없어 거절했더니, 할머니께서 `그려 의사 선상이 우리가 먹던 것을 먹 것어’ 하시면서 서운해 하던 얼굴이 떠올라 죄송한 마음도 들고… 그래 예수님께서 입으로 나오는 것이 더럽지 입안으로 들어갈 것은 더럽지 않다는 말씀이 떠올라 얼른 받아서 먹은 기억이 납니다. 물론 얼굴은 맛있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위 속은 너무나 힘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날도 진료와 수술(하순이완술등)을 마치면 매일 마을에 가서 원생분들과 놀았지만 전날 파전 사건(?)으로 마을에 돌아다니는 집집마다(원생분들이 거주하는 마을은 7마을이나 소문은 순식간에 퍼지는 섬의 특성) 음료수와 먹을 것을 주시는 것이 아닌가?
이전까지는 의사들이 이 분들의 집에 들어 온 적도 없으며, 이 분들과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들 하니, 파리가 붙어있는 파전을 먹었으니 물론 조복근 할머니는 파리가 붙었는지 모르셨겠지만요, 심지어는 의사가 마을에 나타났다 하면 우리를 감시하려고 그러나 하면서 피하신 적도 있었다고 하니 의사가 이 분들과 음식을 먹었으니 그 당시(1995년)에는 쇼킹(?)한 일이 발생하였다고 보아야 되겠지요. 그렇지만 그때는 너무나 제가 젊었으며,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픈 시절이었기 때문에 맛있게(?)먹었던 기억이 나기도 하고, 지치고, 힘들면 그 분들 방에서 자고 나온 적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겨울이면 내복이며, 장갑, 털옷 등 몇 가지 옷을 걸쳐 입지만 이 분들은 한센씨병으로 인한 말초신경 마비로 추운 겨울에도 메리아스 하나만 걸치고 다니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고요(?).
조복근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6번째 부인이랍니다(바깥에서는 남자분들이 부러운 곳이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영감’하고 불렀을 때 바로 대답하지 않으시면 ‘저 놈의 영감탱이가 또 어디가서 바람피우나’ 하시면서 저에게 넋두리를 하셨답니다. 물론 그 당시 할아버지 연세는 91세 이신데도 말입니다.
그분들은 저를 공중보건의사일때도 ‘어이 오 선상?, 당당히 행시 합격에 사무관일때도 직원들은 사무관님이라고 부르는데 이 분들은 ‘어이 오 선상’ 공무원의 꽃이라는 서기관일때도 직원들은 과장님하는데 이분들은 ‘어이 오 선상’ 정규직의사가 저 혼자 뿐이어서 병원장 직무대리, 진료부장할때도 직원들은 직위에 맞게 부르는데 여전히 이분들은 ‘어이 오 선상’이라고 부르신답니다.
이 소리가 싫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불러주지도 않으시니, 의사되기를 바랬는데 이분들은 조카나 아들, 심지어 손자로 밖에 인정해 주시지 않았답니다(이곳에서 치과의사인 것을 포기하고 산지가 꽤 오래 돼 버린 것 같습니다).
물론 이분들도 사회에 일가 친족이 있지만 이 병의 원인으로 단절되어 사시다 보니 아들, 조카, 손자를 얼마나 불러보고 안아보고 싶었을까 생각도 해 봅니다.
아마도 지금은 하늘에서 불러 주시겠지요.
2010년이 되었어도 저는 여전히 ‘어이 오 선상’으로요.
오동찬
국립소록도병원 진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