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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7번째) 나의 사랑 나의 클래식

나의 사랑 나의 클래식


벚꽃이 만개한 4월의 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차이콥스키의 ‘로코코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하던 일을 멈추고 연주에 빠져들게 한다. 한 주제로 어떻게 그렇게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것인지… 높고 낮은 첼로 선율이 부드럽고 포근하게 나를 감싸 안아줘 지쳤던 내 몸과 마음에 위안을 주고, 연주의 감동을 통해 나는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초등 꼬마 때부터 애어른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듣던 나는, 왠지 남달라 보이고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던 클래식이 좋았다. AB형의 독특한 기질이 발현된 것일까? 그 막연한 호기심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KBS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를 본 후 바로 불타오르는 클래식 사랑으로 이어졌다. 연주 관람은 음악 전공이셨던 담임선생님의 숙제였고, 그 사건을 통해 내 인생에 수많은 인연들이 생겨났다는 것을 생각하면 음악에 첫 발을 디디게 해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클래식에 관심이 생기면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었지만, 당시 고등학교 미술 선생님이셨던 아버님의 월급으로 삼남매가 자라던 우리 집 환경으로서는 악기를 구입해 개인레슨을 받는다는 건 무리한 일이었다. 중 3때 독학으로 클래식 기타를 익혀서 연주도 했었지만, 귀로만 빠져 있던 교향악 연주를 실제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누를 길이 없어 대학 신입생 때 덜컥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가입했다. 클래식 기타 이외에 만져본 악기라면 국민학교 음악시간에 배웠던 리코더 정도.


여러 악기들 중 첼로를 선택한 것은 내가 첼로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긴 했지만 해당 학생이 많고 연주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관악기 쪽은 워낙 단원이 드물고 독주악기적 성향이 강해서 연습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반면 첼로는 연주하는 선배가 달랑 한 명뿐이었고 그 선배도 썩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 ‘조금만 연습하면 당장 다음 연주회부터는 연주를 함께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아주 현실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설마 그 선배님이 이 글을 읽으시는 건 아닐지…) 물론 요즘도 바이올린 연주자보단 첼로 연주자가 드문 편이라 실력에 비해 연주할 기회는 많이 주어지는 편이어서 지금 생각해도 아주 잘 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이건 개업 입지를 선택할 때 경쟁 치과 수도 적고 경쟁 상황도 약한 지역을 선택하는 문제와도 비슷한 관계로 연결되는데 나는 그 당시에도 그런 감각이 있었나 보다.


뒤늦게 첼로를 시작한 나는 전공은 치과지만 부전공은 첼로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열심히 연습했다. 쉬는 시간엔 빈 강의실을 찾아 연습을 하다가 윗 층에서 수업 중이시던 교수님께 시끄럽다고 혼난 적도 많았고, 피아노를 배우지 않아 음감이 없기에 악보 없이는 연주가 어려워 더 많은 연습을 해야 했다. 남들이 연주하는 것을 보고 듣는 것과 실제 내가 연주하는 것은 어찌나 다르던지… 돌아가지 않는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반복하며 연습과 연주를 삼년간 해오던 중 내게도 첼로 파트장을 거쳐 동아리 회장을 맡을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회장은 연주회를 하자면 50여명의 인원을 연주회를 위해 끌고 다녀야 했고 94년 당시 연주회 예산은 객원연주자 비용, 뒷풀이 비용 등을 포함해 대략 4~5백만원 정도 되었다. 그때 갓 졸업한 수련의 월급이 1백만원 초반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큰돈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학생들을 모아 하나로 융화하고 연주회를 치러냈던 경험들은 내성적인 나로서는 힘들기는 했었지만, 지금 병원 경영자가 된 시점에서 돌아보면 서로의 생각들이 다르고 개성 넘치는 직원들을 이끌고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음악은 내게 또 다른, 가장 큰 축복을 주기도 했다. 학생 때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약대생을 만났고, 그녀와 결혼을 해서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 집사람은 결혼 후 바이올린을 시작해서 지금은 교회 오케스트라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같이 음악을 연주하는 인생의 친구로 살고 있다. 때로는 의견이 달라 목소리 높아질 때도 있고 서로 냉랭할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추억이 담긴 음악을 슬쩍 틀면 어느덧 부드럽게 풀리곤 하니, 클래식 음악은 우리 부부의 삶에 빼놓을 수 없는 보물과 같은 존재다.


음악은 내게 ‘확장상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2002년부터 경영정보학을 공부해 왔고 부족하지만 강의할 기회도 가끔씩 있는데, 그때마다 나는 ‘상품의 개념"을 반드시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각각 기본, 기대, 확장, 잠재 상품으로 분류되는데 치과의 예로 간단히 소개하자면, 기본상품은 치과 진료 자체를 말하고, 기대상품은 그에 따라 당연히 따라오는 청결, 친절 등의 개념이다. 확장 상품은 고객이 기대하지 않았지만 받게 돼 감동하는 상품으로, 우리 병원의 예를 들자면 임플란트 수술을 할 때 잠자고 일어나면 끝나게 해 드리며 식사하실 죽도 챙겨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등의 서비스를 해 고객들의 감동을 이끌어 내는 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잠재상품이란 병원의 이미지로, 지역사회의 불우이웃 돕기 행사에 성금을 내고 참여함으로써 지역발전과 나눔에 기여하는 좋은 병원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골프 치는 것처럼 모두 첼로를 연주한다면 더 이상 확장상품이라 볼 수 없겠지만, 다행히도 내가 첼로를 연주한다는 사실은 아직도 연주를 하는 의사라는 놀라움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게 되나 보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나와 함께 해 온 음악은 최근까지도 내게 경영의 아이디어를 주고 있다. 우리병원에서는 진료시간 내내 긴장된 환자들의 안정과 편안함을 위해 항상 아름다운 클래식음악이 흐르고 있고, 진료실을 구분한 방은 각각 오케스트라 악기 이름을 따서 명명해 놓았다. 환자분들이 왜 그랬느냐 궁금해 하시면 “연주자 개개인의 좋은 기량 위에서 지휘자가 잘 이끌어 훌륭한 연주가 되듯이, 우리 병원 직원 개개인이 모두 전문가로서 실력을 갖추고 원장이 잘 이끌어 좋은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해 드린다. 졸리다고 최신가요로 바꿔달라고 투정(?)하는 직원들도 가끔 있지만 조금씩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생기는 직원들도 생김에 감사하며 우리 병원의 사명선언을 소개하며 마칠까 한다.
“우리는 의사 및 직원 모두 의료의 질과 삶의 질에서 최고의 병원을 만든다."


이정우 
인천 UIC시카고 치과병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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