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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4번째) 대륙을 지배한 나라 몽골로부터의 선물/상

제1564번째


대륙을 지배한 나라 몽골로부터의 선물<상>

 

여름을 앞두고 과대표가 강의실에 들어와 본과 4학년 학생들의 몽골 의료봉사 참가신청을 받았다. 이미 여러 해 동안 이루어져 왔던 활동이었고, 이전에 참가하셨던 개원하신 선배님들이나 수련의 선생님들로부터 그 당시 봉사활동의 보람됨과 즐거움을 익히 들었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많은 수의 학우들이 참가 신청을 했다. 올해는 예년보다 참가인원이 더 줄어들어 본과 4학년 학생들 중 2명만이 참가할 수 있었기에 면접을 보고 제비뽑기를 해 결국 노동수 학우와 나를 포함한 두 명이 선발됐다. 이후 강력한 참가 의사를 밝힌 김상완 학우도 치대 학생이 아닌 진료팀의 소속으로 가게 되어 결국 치과대학에서는 세 명의 학생들이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진료부장이시자 단장님이신 구강외과 김철환 교수님, 보존과 문호진 교수님, 보철과 최유성 교수님, 구강외과 2년차 상진규 선생님과 단국대학교 보건학 박사출신이신 새한치재 이명구 사장님, 김영미 치위생사님, 김혜정 치위생사님, 신창선 주임님, 보철과 사무원 행정학과 도화연 학생을 포함한 총 12명의 치과 의료 봉사팀이 꾸려졌다.


6월 19일 토요일, 봉사단은 치과 병원앞에 모여서 인천 공항으로 출발했다. 모두의 표정은 외국으로 나간다는 설렘 때문인지 날씨만큼이나 화창했다.
나에게 있어선 해외로 나가는 첫 의료봉사였기에 의미도 컸고 봉사활동으로 떠나는 것이긴 했지만 한국을 떠나 일주일간 해외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설렘으로 다가와 4시간의 비행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반가웠던건 우리와 같은 비행기로 MBC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단비’ 제작진과 출연진들도 몽골로 향했다. 사막에 사는 유목민들에게 ‘게르’를 지어주는 등 도움을 주러 간다는 스텝들의 설명에 몽골봉사 활동팀으로서의 감사함과 서로 다른 사회에서 다른 일을 하며 살고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해외로 나가 힘든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몽골 울란바타르 공항에 도착했다.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 울란바타르 시내에 있는 ‘Bayangol hotel’에 짐을 풀었다. 2인 1실로 12명이 6개의 방을 배정받고 간단히 짐 정리를 한 후 상진규 선생님 방에 다같이 모여 첫날 회의 및 다음날 일정소개를 간단히 하고, 잠을 청했다.
6월 20일, 둘째날이자 진료실 정비를 하는 날이었다. 봉사 장소는 울란바타르 외곽의 한 초등학교였다. 이곳에서 우리 팀을 비롯한 단국대학교 의과병원팀 및 단국대학교 다른 과에서 같이 온 여러 학생들이 의료봉사 및 영어교육, 학교 페인트칠, 컴퓨터 수리등의 활동에 다양하게 참여했다.
우리 치과팀은 한국에서 비행기 편으로 미리 부쳤던 치과 의료장비들과 진료용 체어들을 정리해 초등학교 교실 한 칸에 간이 진료소를 설치했다. 컴프레셔와 석션들이 준비됐고 현지 치과의사인 간치미크에게 빌린 오토클레이브도 한켠에 위치시켰다. 너무 열악한 환경이어서 걱정했으나 이미 여러번 진료하러 와보셨던 교수님들의 지휘아래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진료체어 5개와 예진을 위한 접수처, 기공실까지 갖춘 깔끔한 간이 진료소가 완성됐다.


6월 21일부터 본격적인 치과진료가 시작됐다. 예년엔 사흘정도만 진료를 했으나 이번에는 조금이나마 더 많은 환자들에게 의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하루 더 연장해서 진료하기로 결정했다.
여러 해 동안 계속됐던 단국대학교 몽골 치과의료 봉사활동이 어느 정도 입소문을 탄 것일까. 진료 시작 첫날부터 현지 환자들이 끊임없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져간 간이 진료체어는 총 5개로, 각각 보존과(소아치과) 1개, 외과 2개, 보철과 진료체어 1개, 보철물 제작을 위한 인상용 체어로 분배를 했다. 컴프레셔가 딸린 체어는 보존과 체어 1개 뿐이었고, 나머지 진료체어에서는 발치, 보철물 제작을 위한 인상, 보철물 장착, 스케일링 등의 제한적인 치료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먼저 접수 후 예진을 통한 차팅으로 주소(chief complaint) 및 전신건강 상태, 필요한 치료 등을 확인하고 작성하여 각 담당 선생님 및 교수님께 넘겨드리고, 그 후에 각 체어에서 진료를 한 후, 필요한 경우 약 처방을 하고, 주의사항을 설명해 돌려보내 드리는 시스템으로 이뤄졌다. 같은 본과 4학년인 동수형과 행정학과 학생 화연이가 현지 치과의사의 아들 오가나와 팀을 이뤄 접수를 맡아 전신질환과 혈압 등을 체크했고 내가 통역과 함께 예진을 담당했다. 상완이는 이명구 사장님과 함께 기공을 전담했다. 구강외과 김철환 교수님과 상진규 선생님께서 치주 및 외과적 발치 수술을 맡아주셨고, 보존과 문호진 교수님께서는 영구치 컴포짓트 레진 수복 및 글래스 아이오노머 수복 등을 맡아서 해주셨다.


그리고 보철 치료는 최유성 교수님께서 전담해서 하셨는데 주로 무치악이나 부분 무치악 환자들에게 임시의치를 이용한 치료를 해주셨다. 의치 제작은 기공사 출신이신 이명구 사장님께서 맡아서 하셨는데, 한국에서 쓰는 아크릴릭 레진을 이용한 임시의치 제작에 국한됐으나, 최유성 교수님과 기공사분의 호흡이 잘 맞았던지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만족스러운 의치를 제작해 주는 모습에 놀라기도 했다. 진료팀에 나머지 3명의 통역이 함께했고 진료에 필요한 기구 조달 및 기구 소독, 진료보조 등을 치위생사님 두 분께서 해주셨다. 나와 상완이는 주로 진료 중 사진을 찍거나, 필요할 때 예진에 가담하기도 하고, 평소 원내생 생활을 하면서 많이 하던 임시의치 트리밍이나 폴리싱을 하기도 했다. 신창선 주임님은 각종 기계들을 설치하고, 고장난 것들을 고치는 일, 혈압을 재고, 환자들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 등을 맡아 주셨다.


처음에 가장 힘들고 가슴이 아팠던 건 접수를 한 후 예진을 받으러 들어온 환자들의 구강상태를 처음 볼 때였다. 전날 있었던 진료회의 때 몽골 사람들의 구강위생 상태가 좋지 않다는 얘기는 이미 들었으나 현실은 내가 상상한 그 이상이었다.
우선 환자들의 입 안에서 보철물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의치는 물론이고 gold crown, metal crown조차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에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제1대구치가 맹출한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8~10세 정도의 어린이들이 이미 유치는 물론이고 제1대구치까지 치수가 노출되고 치관이 다 깨져 나갈 정도로 썩어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40~50대 어른들은 구강내 잔존치가 채 열 개가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고 20대 여성 환자들조차도 이미 국소의치가 필요할 정도로 다수의 치아상실을 경험한 상태였으며 치주상태 또한 좋지 않았다.


몽골에도 치과병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국대학교에서 지어준 몽골 국립대학 치과병원도 있고 시내에는 개인이 운영하는 치과의원도 존재한다. 그러나 몽골에서는 잘사는 사람들을 제외한 일반 국민들은 구강위생에 대한 인식도 많이 떨어지고 실제로 치료를 받을 만큼 여유가 없는 사람들과 주거환경 상 치과에 갈 수 없는 거리적 제약이 있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임한울
단국치대 본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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