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가장해 넌지시 다가온 백년손님
미니 임플란트 틀니 치료를 해 온 지도 어언 만 6년이 지났습니다. 우연히 시작된 미니 임플란트 시술이 저를 포함해 동료들과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회사 직원으로부터 2.5mm 미니 임플란트를 처음 소개 받고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시작했습니다.
미니 임플란트를 식립하는 첫날 딱딱한 아래턱 뼈에 거저 대충 심었던 기억이 납니다. 오로지 식립 즉시 힘을 받아야 함으로 거저 빡빡하게 심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마지막 드릴을 하지 않은 채 식립했는데, 그때 부러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만약 다시 인접 자리에 심어 보고 또 다시 부러지면 아예 사용하지 않을 작정이었지만, 프로토콜대로 식립하니 제법 단단하게 식립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헐거운 틀니를 가진 노인들의 의치 지지용으로 미니 임플란트를 지속적으로 적용하게 되었고, 초창기 무개념에 따른 실패를 넘어 이제는 식립과 부하에 대한 개념을 더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었고, 비로소 환자의 구강 상태와 생역학적인 관점에서 보철물의 디자인 및 식립할 미니 임플란트의 위치 및 개수 등을 고려한 미니 임플란트 틀니를 제작해 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흔히 3년 이후에 성공률이 높아지는 learning curve를 지난 작금에 이르러서는 환자들에게 치료비에 대한 큰 부담 없이, 틀니만 장착해 주었을 때의 불편감을 대폭 줄이면서 깍두기와 같은 비교적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미니 임플란트 틀니를 제작해 줄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더불어 황송하게도 업체에서 무려 25회 이상의 미니 임플란트에 대한 강의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과 미니 임플란트의 개발자인 Dr. Tierry와 함께 했던 미니 임플란트의 강연은 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의 시간입니다. 이후 미니 임플란트 시술은 노인대학 및 노인종합복지관의 노인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둘도 없는 좋은 강의의 주제(타이틀)였습니다. 연이어 ‘치과 임상’이라는 잡지와 ‘치의신보’의 지상 강좌에 일련의 원고 청탁을 받아 게재할 수 있었고, 최종적으로 대한구강악안면임프란트학회 학술지에 그 동안의 미니 임플란트 지지 보철물들을 후향적으로 분석한 논문까지 게재할 수 있었으니 정말 우연을 가장해 다가온 손님치고는 정말 백년손님입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책 ‘아웃라이어(Outlier)’를 읽었습니다. 그는 한 분야의 아웃라이어(전문가)가 된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 하루에 3시간씩 10년 동안 1만 시간이 필요했다는 소위 ‘1만 시간의 법칙’을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책을 탐독하면서 얻은 사실은, 그의 ‘1만 시간의 법칙’보다 빌 케이츠의 컴퓨터에 노출된 연도와 어떤 운동 선수 집단의 역학 조사에서 일련의 생년월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어느 시기에, 어느 한 분야에, 누가 먼저, 얼마나 자주, 얼마나 오랫동안 노출되었느냐가 아웃라이어가 될 수 있는 전제 조건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저에게 미니 임플란트와의 만남이 임플란트 아웃라이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확실한 펀드멘탈(fundermental)를 제공해 준 contact point이자 tipping point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미니 임플란트 임상의 관점에서 벗어나 치료를 하면서 만났던 환자고객의 관점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흔히 스토리 텔링(story-telling)이라고 말하는 관점입니다. 아프리카의 지성이라고 불리는 아마두 함파테 바는 “노인 한 분이 숨을 거두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노인은 살아있는 도서관” 이자, 시간의 흐름 속에서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한 인간의 도전과 응전의 산물인 풍부한 인생 경험과 지혜의 보고라는 의미입니다. 저 또한 미니 임플란트 시술을 하는 동안 필연적으로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진 많은 노인들을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세상 사람으로부터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인정받았지만 아직도 자기 중심적인 힘(pulling power, 구심력)으로 살아가시는 부류이셨고, 또 다른 분들은 비록 세상에서는 크게 주목 받는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늘 인생을 음미하고 유호덕을 실천하면서 선한 영향력(pushing force, 원심력)을 나타내 보이신 기품과 맵시와 향기 가득한 어르신 부류였습니다. 소설가 이외수의 책 ‘하악하악’의 “잘 익은 사람”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인간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인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은 부패된 상태를 썩었다고 말하고 발효된 상태를 익었다고 말한다.”
이 분의 표현을 빌리면 향기 나는 노인을 발효된 상태로 익으신 분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든 일에 대한 사고와 응대가 유려하신 분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본인이 직접 초서체로 아래의 같이 야언(野言) 신흠(申欽, 1566~1628)의 시조를 써 선물해 주시면서 결국 사람이란 자신의 존재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를 넌지시 전달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桐千年老恒藏曲 (동천년노항장곡) 오동나무는 천년 늙어도 늘 곡조를 간직하고
梅一生寒不賣香 (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네.
月到千虧餘本質 (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여전하고,
柳經百別又新枝 (유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는 백 번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나네.
또 다른 어떤 분은 저와의 가벼운 대화 중에 저의 한자 이름을 물어 보시더니, 몇 달이 지나서 저의 한자 이름이 새겨진 ‘着手生春(착수생춘)’ 이라는 붓글씨를 써 오셨는데, ‘손을 대면 봄기운 나온다’는 뜻으로 ‘당신이 터치하는 손길마다 온전히 치료된다’는 의미라고 넌지시 알려 주시기도 했습니다. 이순(耳順)의 경지를 지나면 ‘넌지시’가 되는 가 봅니다.
지금에 와서 유추해 보니 미니 임플란트 시술을 통해 인생 지혜와 경험치가 절정에 오른 어르신들의 센티멘탈(sentimental)을 우연히 아니라 넌지시 선물 받은 것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됩니다. 미니 임플란트, 저에게는 우연을 가장해 넌지시 다가온 백년손님(펀드멘탈이자 센티멘탈)입니다.
이성근
일산 예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