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17 (화)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제1570번째) 나는 산을 좋아 한다

제1570번째


나는 산을 좋아 한다


난 산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고산준령을 넘나드는 등반가도, 자주 산을 찾는 애호가도 아니지만, 춘천이라는 도시는 분지라 주변에 여러 산들도 많고, 눈길 닿는 모든 곳에 병풍처럼 산들이 차지하고 있다.


항시 가보고 싶은 맘은 많았지만, 여러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7월 어느 날 달이 꽉 찬 보름날에 주위 선배님 2분과 동행해 산행하기로 했다.
당일 아침엔 궂은 비가 내리더니 오후가 들어서니 거짓 말 처럼 날이 개었다. 오랜만에 산행인지라 약간 들뜬 마음으로 진료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먼지 쌓였던 배낭 및 등산 도구를 챙겨 약속장소로 갔다.


퇴근시간 때문인지 약속장소인 아파트 입구는 사람들과 차들로 바빴다.
오후 7시에 우린 모여서 간단한 밤참거리와 물을 사고, 차로 15분정도 이동하여 등산로 입구까지 도착했다.


오늘 오를 산은 금병산으로 정상은 약 해발 700미터이지만 우린 300미터 지점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입구엔 매점 같은 간이 건물과 산불 초소가 있고, 멀리선 우릴 경계하는 개들이 짖을 뿐 한가로운 시골 풍경 같았다.
등산로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했던 것처럼 풀이 무성했고 사람 두 명이 나란히 걷기엔 다소 좁았고, 입구를 지나자마자 수풀과 나무들로 다소 어둡고, 5분도 지나기 전에 도시 소음에서 벗어나 있었다.


오랜만의 산행인지라 처음부터 시작된 오르막길에 그 동안의 게으름이 벌 받듯이 숨은 가파오고 흐르는 땀으로 등이 젖기 시작했고 평지에 익숙했던 다리는 뻐근해오고 체력이 금세 떨어지는 것 같았다.
스스로 ‘그래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속으로  달래가며  20분정도 깔딱 고개를 지나서 잠시 쉬기로 했다.


길 옆 나무의자에 앉아 꿀맛 같은 물 한 모금을 넘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숨을 고르고 있는데 극성스런 산모기 때문에 떠밀리듯 다시 길을 나서게 되었다. 다시 시작된 오르막 길 이지만 다소 적응되었는지 숨도 수월하고 다리에 여유도 생겨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해는 이미 사라져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구불구불 이어진 산길을 따라 숲의 짙어지는 그윽한 내음을 맡으며 30~40분 올라가다보니 나무들로 이어진 선이 끝나고 갑작스레 시야가 탁트인 헬기장에 도착했다. 순간 도시의 야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흐린 날이라 하늘의 별이 내려와 박혀 있는 듯 도시는 이미 각양각색의 조명으로 꾸며져 있고 선배자녀의 춘천 최고의 절경이라는 찬사를 생각해 보니 한 눈에 들어오는 야경이 다시 새롭다.
바로 지척인데 그 속에선 난 허둥지둥 때론 무미건조한 생활과 지금 멀리서 여유 있게 전체를 보며 드는 내 맘의 느낌이 쓸쓸하다.
올라오는 동안 언뜻 나뭇가지사이로 보였던 보름달이 처음으로 전신을 드러내며 웃는 듯 밤하늘 높이 떠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정상에 설치된 나무 전망대에 도착한 우리는 배낭을 풀고 야간산행의 또 다른 묘미인 라면을 끓이고, 각자 집에서 준비한 과일과 삶은 감자, 옥수수로 허기를 채우고 등을 기대고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빠르게 지나간다.
구름 사이 사이로 소녀의 얼굴을 닮은 노오란 보름달이 들락날락 하며 우리를 위해 먹구름으로 여러 모양을 빚어가며 한 여름 밤의 쇼를 보여 준다.


별을 배경조명으로 남녀 모양의 구름들이 입맞춤 하듯 다가가 합쳐지고 보다 커다란 합체를 보여주고 그 끝에 다시 보름달이 인사하듯 나오고, 한 바탕 몸을 휘감고 지나가는 바람이 도시 에어컨보다 시원하다고 느껴지는 건 자연의 우월함일까?


야참으로 배는 부르고 밤하늘 쇼로 충분한 눈요길 한 뒤 정상까지 올라온 피곤함이 몰려오면서 산 속 공기가 쌀쌀하다고 느껴질 즈음, 주변을 정리하고 거꾸로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 오게 됐다.
급하게 올라온 만큼 내려가는 길이 경사로 가파르다.
오전에 비가 온 탓에 길도 미끄럽고 체력소모가 있었으니 다리가 후들 거린다.
어둑해진 산길을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앞 사람 꽁무니 좇아 내려오다 한 번 엉덩방아를 찧었고 바지는 축축해 졌다.


‘이번에 내려가면 등산화를 개비해야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내려 왔다.
처음 출발했던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다시 동네 개들만이 반겨주듯 짖어 댄다.
길옆의 옹달샘 물로 세수를 하니 차가움에 정신이 들고 이제는 환속하는구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에 올랐던 산 길을 한 번 쳐다보고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돌아오는 길에서 지난 3시간 산에 보낸 시간들을 생각해보니 든든한 동반자들 덕분에 갔다 올 수 있었고, 늘 가까운 곳에 두고서 그 소중함을 모르고 엉뚱한 곳을 찾아 헤맨 뒤에야 느끼는 귀중한 보물과도 같은 존재들이 많다는 것을 그리고 눈높이를 달리하면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한 7월 어느 하루의 일탈이었다.
다음에 막걸리 한통 들고 달과 얘기나 실컷하고 와야겠다. 다음 번 보름날이 기다려진다.

 

김동욱
춘천 연세 e편한치과의원 원장

 

관련기사 PDF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