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79번째)
프로이드도 놀랄 무의식세계 창조적 해석 -인셉션 -
7월 21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셉션’에 대한 수많은 다양한 평가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라는 견해도 적지 않으며 “영화의 전개구조가 너무 복잡해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반대로 한편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경의와 찬탄, 그리고 영화에 대한 논쟁(특히 영화 엔딩에 대한 많은 ‘설’들)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어떻게든 시간을 꼭 내시어 한번 보시라고 권해드립니다. 네, 142분짜리 이 영화는 그럴 가치가 있어 보입니다.
(다음의 글은 이 영화를 보시기전에 이해를 더하거나 참고할 만한 내용만을 기술하였습니다. ‘스포일러 작렬!’가능성은 가급적 배제했으니 부담 없이 내려 읽으셔도 됩니다.)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www.imdb.com)이라는 사이트가 있습니다. 인터넷 영화여론의 반향을 알 수 있는 권위 있는 사이트인데요. 주로 작품의 완성도를 평점의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현재 인셉션은 네티즌폴에서 평점 9.3을 받아, 역대 영화들 중 3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놀란 감독의 전작 ‘다크나이트’가 개봉 초기 2위에 위치해 있다가 지금 현재 12위에 위치하고 있는 점을 봐도 이 영화는 20위 내에 앞으로도 위치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역대 모든 영화들 중 20위 내’에 있다는 이야기입니다.(참고로 작년 최고의 흥행작 ‘아바타’는 110위, 그리고 개인적으로 영화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눈뜨게 해준 영화인 ‘대부1, 2’편은 2위와 4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의 저자인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은 한 인터뷰에서 “좋은 칼럼은 어떤 것입니까?”는 질문에 대해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했는데 세 번째 조건이 다음과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렴풋이 알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생각을 당신이 제대로 썼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칼럼이라는 것입니다.(그 외에 네 번째 조건은 “너와 네 가족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라는 협박을 받을 만큼 논란을 불러오는 칼럼이라는 군요.)
비유하자면 이 영화가 프리드먼의 좋은 칼럼과 유사한 그런 영화라고 보여집니다. 나이가 들면서 꿈을 꾸는 횟수가 적어지고 어렸을 때 컬러인 꿈이 점점 흑백으로 변해가지만 우리는 대략 꿈을 꾸게 됩니다. 그리고 현실로 빠져 오게 되면 현실세계와 꿈의 세계를 순간적으로 구분하게 되면서 안도와 아쉬움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예전에 잠에서 깬 후 꿈의 진행과 결말이 궁금해 다시 잠을 청한 적이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다시 들어간 꿈의 세계가 이전 꿈과의 이야기 전개의 연관성을 갖더군요.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지만 저에겐 나름 인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인셉션’이란 뜻은 한 개인의 꿈에 들어가 타인의 생각을 무의식중에 심어 놓는다는 뜻입니다. 이 영화에선 다른 사람의 생각을 해킹하여 그 사람의 의도나 본심, 그리고 비밀을 알 수 있게 되거나 다른 사람의 무의식세계에 생각을 이식하여 그 사람이 스스로 ‘그 생각’을 믿어버리게 한다는 것이죠. 이런 우리를 둘러싼 꿈의 세계를 놀란 감독은 탁월한 솜씨와 해석으로 영화라는 변환장치를 사용하여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마치 “여러분들이 느꼈던 것들이 바로 이런 것 아니겠어요?”라고 말이죠.
‘놀란’ 감독의 메시지는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프 융(1875-1961)이 말했던 내용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 꿈을 꾸는 것은 깨어져 있을 때 우리가 의식하고 움직이는 것과 달리 무의식이 뭔가를 향해 움직이고, 그 결과물인 꿈에서 사람은 자신이 의식 상태로 인지하지 못하는 의미를 전달받거나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융의 이론과 이 영화의 감독 ‘놀란’의 영화가 다른 점은 한 개인의 기억이나 잠재의식에 의해서 꿈이 영향을 받지만 ‘놀란’은 이 영화에서 타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기업의 비밀을 캐내거나 사람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듯 이 영화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꿈과 현실의 경계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위의 주제를 다룬 영화는 예전에도 꽤 있어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 스페인 영화 ‘오픈 유어 아이스’(헐리우드에서는 ‘바닐라 스카이’란 제목으로 리메이크했습니다.) 짐캐리 주연의 ‘트루먼 쇼’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겠죠. 그래도 지금까지 이런 장르의 영화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무래도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1’(1999)라고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장르를 이야기 할 때 ‘인셉션’이 제일 앞의 이름에서 언급 되어 질 것 같습니다. 2억불을 쏟아 부은 압도적인 스케일과 비주얼도 탁월하지만 영화의 각 구성 요소들 시나리오, ST,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짜임새가 있습니다. 특히 꿈속에서 또 꿈을 꾸며, 그 꿈속에서 한 단계씩 사람의 무의식세계의 심연으로 들어가는 구조를 표현한 감독 및 감독 동생의 상상력은 참으로 놀라운 면이 있습니다. (조나단 논란이 감독의 동생인데요. 시나리오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영화의 출연진 중 7명이 오스카 후보에 올랐으며 그 중 2명이 수상자(마이클 케인, 마리 온 꼬띨라르) 일정도로 화려한 면면을 보이지만 배우의 명성만 높았지 어설프기 짝이 없는 영화들과 달리 이런 배우들을 감독은 씨줄과 날줄처럼 절묘하게 직조한 감독의 역량 또한 대단해 보입니다.
‘개미’, ‘파라다이스’, ‘신’의 저자인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거의 매일 꿈을 꾸며 꿈을 기억하는 능력 또한 대단해 일어나면 기억한 내용을 매일 적어놓는다고 합니다. 그 내용을 토대로 단편 소설을 쓰곤 하는데 지금껏 500편 가까이 만들었으며 이러한 꿈의 무의식 세계가 자신의 상상력의 원천임을 한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개인마다의 차이점은 분명 있겠지만 이렇듯 사람의 의식구조와 또 다른 저편의 세계인 꿈의 세계는 분명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 자각하고 의식하는 존재이지만 일정 부분은 무의식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으며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최근 각광 받는 저널리스트인 싱커 베탄텀은 저서 ‘히든 브레인’에서 무의식이 우리의 삶에 주는 폭넓은 영향에 대해 설파하고 있습니다.
골치 아픈 부분이 적지 않을 수 있지만 ‘인셉션’을 통하여 ‘의식과 무의식의 공존’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차상권
관악 고운미소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