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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5번째) 나의 역사문화 활동 (하)

나의 역사문화 활동 (하)

<1898호에 이어 계속>

  

1994년 맏딸의 미국 플로리다대학교 박사학위 수여식에 참석했다가 경상대학교 정경대학학장과 진주문화원장을 역임한 정치학박사인 맏형의 부고를 받고 급히 귀국했던 일이 있었다.
지난날 진주는 소년운동의 발상지라는 역사적인 논제를 형님이 제시하였으나 당시 역사의식이 비천했던 나로서 큰 감흥이 없었다.


시대가 흘러서 진주의 문화지킴이로 탈바꿈한 나는 1995년 진주정신으로 진주문화를 부흥하는데 이바지 하자는 뜻을 세워 진주문화사랑모임을 결성, 망진산 봉수 복원, 진주걸인기생독립만세운동 재현, 진주팔경제정, 형평사운동의 주역 신현수송공비이전, 일본에 빼앗겼던 진주대첩의 김시민장군 공신교서 환수운동을 성공리에 마무리하는 등 쉴 사이도 없이 활동하고 있었다.


2007년 5월 문화동지이며 후배인 강동욱 박사가 소년운동의 발상지 표지석을 역사복원사업으로 나에게 권유하고 난 후 경남일보에 진주에 어린이운동 발상지 표지석을 세우자는 논지와 어린이 날 제정의 주역 ‘진주사람 강영호’ 선생에 관한기사를 연달아 발표했다.


이어 오마아뉴스 윤성효 기자의 ‘소년운동 선구자 강영호를 아십니까’라는 기사를 접하고 2007년 5월 9일 사단법인 진주문화사랑모임의 역사복원사업으로 선정하여 천도교회월보, 개벽지, 동아일보 어린이창간호에서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하고서 사업비 확보로 고심하던 중 2007년 5월 10일 문화사랑모임의 회원인 김법환 원장을 통해 강기동 원장의 조부 강영호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데는 리영달 회장이 나서야 하며 강기동 원장이 재정적으로 협조를 하겠다는 의사를 전달받았다.


이를 계기로 2008년 5월 5일 어린이 날에 ‘한국 소년운동의 발상지는 진주입니다’라는 주제로 진주소년운동의 선구자이며 방정환 선생과 일본 동경에서 새싹회를 만들어 어린이 날 제정에 헌신했던 진주 출신 강영호 선생에 관한 학술세미나를 서경방송의 협조로 진주교육대학에서 열었다. 


이어 진주시에 역사복원사업으로 예산신청을 했으나 해당부서인 문화관광과의 이해부족으로 해를 넘겼으며, 소년이라는 이름 때문에 복지과 소년계에 넘겼으나 해당부서의 담당자가 신청부서를 선별하지 못해 반려되는 수난을 겪다가 2009년 10월 6일 정재옥 사무국장의 요청으로 내가 직접 정영석 시장을 면담하여 예산을 부탁했으며 추후에 전화로 다시 독려하여 2년 반만에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애초 건립 장소는 진주청소년회관이었으나 회관을 이전한다는 장기계획을 보고 받고 진주문화사랑모임 이사회에서 다시 거론하여 건립 장소를 새로 신축하여 이전하는 진주교육지원청으로 정하고 2010년 6월 9일 임봉현 진주시교육장과 만나 이를 합의하고 현장도 확인하였다.


10월 15일 기초공사를 시작하는 날이기에 이른 아침에 현장에서 확인하고 돌아왔는데 아침나절에 정재옥 사무국장이 교육청관리과로부터 공사 중지를 당했다는 연락을 해왔다. 처음에는 교육청에서 식재한 나무를 임의로 옮겼다고 공사 중지를 요청을 했으며, 두 번째는 소년운동의 기념비가 교육청의 표지돌 보다 규모가 크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1920년 8월에 일어난 진주소년운동은 진주교육지원청 자체보다 역사가 앞서고 더 큰 의미가 있다는 사실도 이해 못하고 단지 크기의 잣대로 공사를 못하게 한 것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어서 다른 장소로 건립 장소를 옮기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으나 새로운 장소를 선정하느라 금년 내 건립을 못하면 진주시에 예산을 반납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기 때문에 인내를 발휘하여 설득하기로 하고 실무책임자를 정재옥 사무국장이 직접 방문하고 때로는 해당직원을 사무국으로 직접 불러 역사적인 의미를 설명하고 이해와 협조를 부탁하였다. 내가 직접 나서서 교육장에게 기념비의 높이는 다소 낮추겠지만 역사적인 기록 때문에 다른 것은 양보할 수 없다는 논지에 앞서 지난날 진주교육지원청을 이전하기 위한 예산확보(60억)에 나와 조규태 교육위원이 애쓴 노력을 전하면서 너무 근시안적인 교육청의 생각을 지양해야 한다는 설득으로 겨우 동의를 얻어 공사를 재개하게 되어 11월 11일에 완공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 역사복원도 역사를 다시 세우는 것도 하나도 쉬운 일이 없는데 앞선 이들의 새 역사의 시작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는지 짐작이 된다.


나는 이 세상에 아직도 살아있음에 진주인으로 진주지킴이로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의 주위에 역사문화 동지들이 있는 한.


치과의사이기에 여유로운 시간과 정성을 들여 가능했던 진주의 역사복원과 새로운 역사 세움. 다시 태어나도 나는 치과의사가 되기를 원한다.


리영달
경남 진주 리영달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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