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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1번째) 1-1-11 (상)

1-1-11 (상)

  

딸아이가 잠시 머물고 있는 텍사스, Tutor에게 전화해서 이번 방학에 겸사겸사(兼事兼事)해서 페루를 갔다 오려고 한다니깐, 네? 잘 모르겠다는 듯 “페루요?” 하면서 “아~아! 퍼루! 그런데 거기는 왜요?” 라고 한다. 난 속으로 “왜요”는 “일본 담요”이거든요 하고픈 것을 참고, 여차저차하여 떠나게 되었으니 딸 좀 LAX로 오게 도와주십사 부탁했다.


나로서도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직업상 겨울방학이 대목인데 그것도 일주일이상 병원을 비우고 먼 남미로 간다는 것이 영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한동안 못 본 딸아이 본다고 생각하여 미국에 있는 여행사를 통해 일단 신청서를 넣고 기다렸다. 모객이 안 되면 취소될 수도 있으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서 LA까지 비행기 삯은 개인부담으로 하고 출발 몇 주 전에야 우리가족 넷과 미국 시민권자 여섯, 총 10명이 간다는 연락을 받고선 추운 겨울 한국을 떠나 비수기 우기인 페루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한국서 LA까지 10시간(LA서 한국은 12시간), LA서 수도 리마(Lima)까지 8시간 30분, 리마서 쿠스코(Cusco)까지 1시간 30분 비행시간,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 거의 날짜로는 이틀이 걸리는 곳 그곳을 왜 가야 했을까? 사실 그 이유를 잘 모른다. 동경이었을까? 아니다. 남미와 쿠바를 가보고 싶었다. 아니다. 아바나와 카리브해를 가고 싶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낼 수가 없어 조절한 것이 페루 한 나라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남미 여행하는 한국인들의 연령 대부분이 60대 이상이라고 한다. 시간적, 경제적인 여유가 많아서란다. 이해할만 했다. 가이드 왈 자기가 20년 페루 가이드하면서 이런 아이들과 여행하는 것이 처음이란 듯 신기해한다. 그 먼 반대편 땅을 70대에도 갔다 올 수 있는 건강이 대단하지만 과연 그 나이에 그 긴 여행을 얼마만큼 소화해낼지 난 의심스러웠다. 그 아슬아슬한 마추픽추며, 해발 2800m의 우르밤바, 3800m의 푸노 등을 어떻게 이기고 가는지 나에겐 대단할 뿐이었다. 그래서 난 젊어서 더 먼 곳을 가자. 가까운 곳은 더 늙어서 가자. 그것이 내 여행 철학이다. 아직까지는.
 
12월 26일 일요일, 23:35분 리마 도착
12월 27일 월요일, 쿠스코로 1시간 30분 비행, 산토도밍고(Santo Domingo)성당 코리칸챠(Qorikancha) 투어, 비(雨).
쿠스코(Cusco)
6000m 이상의 고봉(高峯)이 50여 개/7천m 세계 최고의 길이 안데스(Andes)/해발 3399m/‘세계의 배꼽"이란 쿠스코에 갔더니 푸마가 안내를 했어/“천천히 서두르지 마세요”, “다치십니다”/“우린 과거뿐입니다”, “헛되도다”/맑은 하늘 아래로 계속 쏟아지는/피부를 검게 태우다 못해 늙게 만드는 강렬한 자외선과 부족한 산소/만신창이가 된 몸을 어지럽게 만들어, 몽롱했어/아타왈파(Atahualpa)도 그랬었나?/200명도 안 되는 스페인 정복자에게 파멸된 것은 싸움이 아니었어,/꾀도 아니야 그것은 오직 뜻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밖엔 설명이 안 되는/인류의 슬픔이야, 아하, 나중에 알았는데 이런 말이 있어,/“거대 문명은 외세에 정복당하기 전 이의 내부로부터 붕괴되었다"-윌 듀런트, 딱 맞는 말이야!/태양신전 코리칸챠는 도밍고 성당으로 잡스런 이식을 했어/정복자의 권한이지, 당연하구 말구 나뒹구는 돌들/그 돌의 정교한 암+수(Key,♂ and Keyway,♀)만이/그때의 영광을 보여줄 뿐, 성호를 긋는 잉카인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O형/아~ 숨이 차서 어지러운 옛 수도에게 그래도 감사해야 해/감자와 옥수수를 배고픈 지구에 전파해 주었거든/폐가 커서 슬프고, 높아서 병원균이 살기 힘들 것 같아 극단적인 그곳엔/보라색 ‘치차(Chicha)’가 진통을 해주었을 뿐이었어.


별, 새소리와 만년설
우르밤바(Urbamba)의 시골 운동회 날/막걸리 같은 옥수수 치차도 거리에 나왔고/근동 사람들도 다 나왔어/나 보고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이도 있었어/ 이방인은 늘 마음이 불안하지/그래서 일찍 방으로 기어들었어/그런데 언제 들었나 싶은 가득한 새소리에 참을 수가 없었어/신기하게도 우린 친구였었던 거였어/반가운 나머지 이름도 잊어먹고 안아주는 서늘한 저녁이 금세 왔어/ 멀리 설산에는 눈이 아직 가득했어/평생 녹지 않고 그대로인 듯 올려져 있었어/난 안녕이란 인사도 못하고 하늘 가득한 별에게도,/산중턱을 헤매는 야마들에게도 그리고 잠자리 옆에서/날 위로하던 여치에게도 무심하게/도외지 사람처럼 인정머리 없이 그냥 왔어/알파카로 목도리며 모자며 혁대까지 짜고 있던 잉카의 후예에게도/웃음하나 주지 못하고 왔어/그날 새벽엔 새들대신 내가 울었어/만년설처럼 하얗게.

  

12월 28일 화요일, 새벽 4시 기상. 오얀타이탐보(Ollantaitambo)에서 마추픽추행 기차를 탄다. 6시 30분에 출발한 협궤(狹軌, Narrow gauge)열차가 8시 20분 되어 도착. 다시 봉고를 타고 30분 정도 굽이굽이 떨어지면 바로 사망인 길을 올라 올라간다. 구름이 아래에 있고, 우르밤바 강이 실개천으로 보일 즈음 살짝 마추픽추 비스무리한 돌계단이 보인다. 조마조마 하늘도시로 가는 길이다.
1911년 미국 탐험가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 1875~1956)이 어느 농부에게서 들은 이야기만 믿고 밧줄 하나로 올라온 길, 그곳에 있었던 마추픽추, ‘노봉(老峯)’은 폐허의 신비였을 것이다. 석산에서 채취한 돌을 갈아서(!) 만든 석벽, 바늘하나 안 들어가는 틈새, 계단식 경작지, 하나뿐인 입구 그 외에는 모두 낭떠러지 절벽, 지금까지도 흐르는 수로의 물, 부지런한 잉카인들에게는 하루 종일 서있게 하는 것이 벌이었다는, 문이 없는 담벼락 형무소, 키 작고 적혈구가 많았을 잉카인들만이 편하게 다녔을 잉카의 다리, 보기만 해도 오줌 지리는 다리, 왜 사라져버린 것일까? 야마와 수간(獸姦)하던 습속이 패망을 부른 것인지, 키푸 언어(Quipu, 결승문자, 매듭문자)의 독점화 때문인지, 왕자들의 적통 싸움 때문인지 모르지만 허망하게 빈 곳, 그러나 지금은 수입원이 되는 곳, 와이나픽추(Huayna Picchu, 젊은 봉우리, Young峯)는 잉카인의 코, 그곳은 남겨 놓고.


 <다음호에 계속>

송선헌


대전 미소가있는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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