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이글스를 생각하며…
20년전 우리는 막연한 의문을 가지고 모임 하나를 만들었지. 언젠가 먼 훗날에 이 모임이 존재할 수 있을까? 존재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이 지난 5월 29일 수원에서 치러진 ‘연아이글스 창단 20주년 기념식’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행사 내내 흥분하며 상기 되었고, 때론 시간 앞에서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날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떠오르자 옛이야기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잠시 나는 꿈을 꾸듯 그날로 걸어 들어가 본다.
연아이글스는 연세치대 축구부의 졸업생 모임이다. 따라서 1991년에 창단되었지만 1970~80년대의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이 모임의 근간을 이룬다. 지금도 생생하지만 처음 축구부를 노크하던 날, 그 가족 같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는 집을 떠나 처음으로 세상이란 큰 조직에 속한다는 벅찬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때 가슴에 새겨진 첫인상은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었다. 이렇게 나는 축구부에 빠져들어 갔다.
6·9제를 준비하는 짧은 봄날의 에피소드지만 축구부는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남겨주었다. 모두가 낮에는 축구선수였고 밤에는 술꾼이 되어 닭똥냄새나는 신촌시장을 배회했었다. 마치 인생길에 미처 나서기도 전에 지쳐버린 젊은 영혼들이 노래를 마음껏 부르기라도 하듯. 분명히 그 시절에 축구부는 우리를 사로잡았었고 이것들에 의해서 우리들의 청춘이 창조되었다.
‘아이들은 약 올리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생각되기를 짓궂은 선배들덕에 그래도 일찍 세상물정에 눈을 뜬것 같다. 이렇게 축구부는 하마터면 인식도 못하고 그냥 지나칠 뻔 했던 청춘의 시간들을 내게 붙잡아 주었던 것이다. 우리 모임이 우연한 기회에 창단되었지만 끈끈한 정과 추억이 축적되었기에 앞날의 난제들을 초월해서 순조롭게 모임이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이다. 창단 초기에는 지지부진했지만 동경치대를 방문하고 축구하는 재미에 눈을 뜨면서 자체적으로 생명력을 띠기 시작했다.
처음 10년에는 가족야유회가 중요한 행사였다. 지금도 아내는 야유회를 종갓집 김장담기에 비유하며 그때를 회상한다. 함께 모여서 마음을 나누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회원들의 성격에서 모임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법이다. 10주년 이후에는 근성 있고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축구부 기질로 무장한 창단 주역들이 치과계의 리더로 자리잡게 된다.
매년 눈 쌓인 자택에서 신년하례식을 열어주시는 치대병원장과 학장, 모교 부총장을 역임한 1회 손흥규 회원을 필두로 연세치대 기초학의 기틀을 잡은 1회 이승일 회원, 치협 부회장과 서울시 협회장을 수행한 3회 김성옥 회원, 치대 동문회장을 맡았던 4회 한수만 회원 외에 다수의 회원들이 치협이나 동문회에서 주요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는 추진력과 충성심이 필요한 큰조직과 축구부 기질이 들어맞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의 자랑 거리는 최근에 3차 사업까지 확장한 장학사업니다. 우리들만의 사랑이 모교와 후배에게 옮아간 것이다. 이 사업을 통해 재학생들과의 교류는 늘어났고 세대차는 줄어들었다. 그 작은 결실로 올해 6·9제에서 재학생들이 우승해 선배들의 성원에 보답을 해 주었다. 이 많은 이야기 속에서 우리에게 연아이글스는 어떤 의미일까? 그건 아마 물불가리지 않는 사랑을 다한 우리 인생에 대한 헌화가 아닐런지. 그것만이 우리를 구성하고 미래를 꿈꾸게 하니까. 이제 어렴풋한 옛이야기의 여정을 접어야겠다.
나이 들어 희미한 옛사랑을 찾아가는 서글픔도 있었지만, 그러나 확실한 것도 있었다. 내가 연아이글스 안에서 영혼을 깃들이며 살아갔던 그 날들이 내 청춘의 봄날이었음을.
정원섭
연아이글스 회장
과천 믿음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