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의 봄·여름·가을·겨울
“104번 사관후보생, 6사단"
“훈육장교님, 6사단이 어딥니까"
“철원이다"
작년 4월 초임 군의관 배치를 받고 좌절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주로 남쪽, 대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로서는 우리나라 최북단 시골에서의 삶이 상상이 가지 않았다. 국방부의 시계는 거꾸로 놓아도 간다는 말처럼 어느덧 1년이 지나고 교류도 해서 지금은 서울 근교에서 나름 편하게 군의관 생활을 하고 있다. 작년 철원에서 보낸 생활을 바탕으로 잠시나마 철원 홍보대사로 나서볼까 한다.
봄
작년 봄, 철원에 배치받고 군의관들과 단체로 참가했던 안보관광.
역시 철원에 왔다면 안보관광이 빠질 수 없다. 철원은 해방 후 6·25 전까지 북한의 체제 아래 있던 곳으로 철원 평야를 중심으로 쌀 수확량이 많아 인근의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 안보관광은 서태지와 아이들 ‘발해를 꿈꾸며" 뮤직비디오로 유명해진 노동당사를 비롯해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열차가 전시된 월정리역, 평화전망대, 제2땅굴 관람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관광을 마치고 허기를 채울 식당으로 민통선 안에 위치한 ‘전선휴게소’식당을 추천한다. 민통선 안의 깨끗한 한탄강에서 잡은 메기로 만든 매운탕이 일품이다. 식당 주변으로 철원과 금강산을 연결해주던 금강산 전철의 옛 철길을 구경하는 것은 보너스다.
여름
레포츠의 계절, 여름에 맞게 한탄강에서 래프팅을 즐겨보자. 수량이 풍부해서 유속이 빠르고 주변의 현무암 계곡이 래프팅 내내 눈길을 사로 잡는다. 래프팅 후에는 번지점프나 서바이벌 게임, ATV 등도 즐길 수 있다. 더운 여름 시원한 면발이 당긴다면 ‘철원 막국수’식당을 추천한다. 철원의 행정중심지 신철원에 위치한 식당으로 50년 전통을 자랑한다.
가을
철원의 가을은 금빛 물결로 넘실댄다. 차창을 열고 추수하는 논을 바라보며 저속으로 달려도 뒤에서 재촉하는 차가 없으니 얼마나 여유로운가. 오덕리 마을에는 색깔벼를 심어 논을 예술작품으로 바꿔 놓기도 했다. 철원 평야에서 나오는 철원 오대쌀은 명품쌀로 불리고 있으며 추수시기에 철원의 식당을 방문하면 햅쌀로 지은 밥맛을 감상할 수 있다. 사실 이 시기에는 철원의 어느 식당을 가도 밥맛이 좋지만 추천하고 싶은 식당은 동송읍에 위치한 ‘김대감’식당이다. 닭도리탕, 닭발을 주메뉴로 하는 곳인데 허름해 보이는 식당이지만 식사를 하고 나올 때면 식당이 허름해 보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겨울
겨울의 철원은 가혹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지역이니 만큼 큰 맘 먹고 혹한기 체험한다 생각하고 놀러가는 것이 좋다. 추천할 관광지는 눈 쌓인 고석정이다. 조선시대 임꺽정이 머물기도 했다는 곳인데 현무암 계곡과 운치있는 정자에 눈 쌓인 모습이 절경을 이룬다. 12월에 내린 눈이 3월까지 녹지 않기 때문에 겨울 언제나 방문해도 설경을 감상할 수 있다.
추운날씨에 얼큰한 국물이 생각난다면 고석정 바로 옆에 위치한 ‘별난 해물짬뽕’식당을 추천한다. 푸짐한 해물과 친절한 주인 아저씨, 혀를 마비시키는 매운 국물이 이곳을 다시 찾고 싶게 만든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지난날의 보잘 것 없는 일상도 기억이란 필터를 거치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거듭남을 느낀다. 초임 군의관으로 배치받아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철원에서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생각할 때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장용욱
9사단 의무대 군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