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또 그렇게…
한동안 지루하게 쏟아지던 장맛비가 그치니,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쨍쨍한 햇빛과 후텁지근한 열기만을 내뿜고 있다.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가는 것처럼 요즘 날씨도 한해가 다르다. 장맛비가 계속되는 날이면 “오늘은 또 바지 끝자락 적셔가며 출근을 해야 하나” 푸념부터 나오고,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아침이면 “출근길부터 푹푹 찌는 날씨에 기운이 다 빠지네”하며 축 쳐져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도 출근길 라디오에서는 “폭염이 예상되니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세요”하는 날씨정보가 흘러나오고, 나는 또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한다.
그러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 구름 한점 없이 맑고 푸르다. “와~여름 하늘도 참 예쁘구나”하는 생각이 들 즈음, “그래, 어렸을 땐 햇살 가득한 아침이면 문밖으로 뛰쳐나가기 바빴었지”하는 생각이 든다.
그랬다. 그땐 더위쯤은 아랑곳없이 해가 나나 비가 오나 하늘만 보고 내달리곤 했다.
땀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가끔 소나기가 지날 때면 채 가려지지도 않는 작은 손을 머리에 얹고 첨벙첨벙 물을 튕기며 집에 들어오곤 했다.
비가 오는 날엔 엄마가 삶아준 고구마에 만화책 끼고 보는 재미가 있었고, 땀이 줄줄 흐르는 더운 날엔 시원한 대청마루에 앉아 얼음 동동 띄운 수박화채를 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친구들과 골목길을 뛰어다닐 땐 흐르는 땀방울쯤은 문제되지 않았다. 얼굴이 까매져도 좋고 옷이 흠뻑 젖고 흙투성이가 되어도 좋았다. 꼬질꼬질한 내 모습에 어김없이 날아드는 엄마의 잔소리도 멋쩍은 웃음 한번이면 됐다.
그러다 방학 맞이 가족여행으로 바다나 계곡이라도 가는 날이면 일주일은 들떠 있었던 유년기의 여름, 그때는 그렇게 뭘 해도 좋았던 여름이었다. 곰곰이 생각하고 있자니,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나이가 들고,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여름이 주는 재미도 하나 둘 줄어든 것 같다. 이것은 이래서 싫고, 저것은 저래서 힘들고… 핑계 아닌 핑계만 늘어간다.
이상기온으로 폭염과 폭우가 많아지고 날씨가 주는 힘듦도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라지만, 내 나이 열 살에 보던 하늘도, 지금 보는 하늘도 달라진 것은 없으리라. 이번 여름은 다시 한 번 “으샤으샤” 힘을 내봐야겠다. 또 다시 10여 년이 흘렀을 때 “그래도 그때가 좋았는데”하고 미소 지을 수 있는 추억거리를 만들고 싶다.
비 오는 날이면 샌들 사이로 들어오는 빗방울이 ‘첨벙첨벙’ 출근길의 재미를 더해주고, 눈부시게 햇살 좋은 아침이면 이어폰 너머로 파도소리 가득한 여름음악 들으며 걷던 출근길의 여유도 좋았었노라고, 그렇게 30대의 여름을 기억하고 싶다.
홍계숙
인천 푸른치과의원 간호조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