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고 진한 우리의 추억
-전북치대 7기 졸업 20주년 행사를 마치고
여름의 태양처럼 빛나고 뜨거운 시절을 같이 보냈고
들판의 풍요로움을 영글게 하는, 조금은 따사롭지만
여유로운 가을 햇살로 다가오는 우리네 보고픈 모습들…
많이 보고 싶습니다.
책장 한 장 넘기는 속도로 20년이 지나갔지만
책장에 남겨진 치열했고 행복했던 이야기들을 나누어 봐요.
우리의 행복한 만남을 아래와 같이 조용히 기다립니다.
초대장을 보니 휘리릭 지나간 20년이 저만치 있었다.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과 통화를 하며 20대 때의 나를 더듬어 보고, 잊혀졌던 청춘의 모습이 고개를 내밀면 반가와 하며, 참 행복했던 설레임과 기다림의 몇 개월을 보냈다.
행사 당일에 무척 고민하다가 미장원에 들러 집안 결혼식 때나 하던 머리손질을 했다. 표나지 않게 젊어보이게 해 달라는 부탁을 여러 번 강조해서 준비를 마치고 행사장에 조금 일찍 도착 하였다. 커플인데다가 남편이 행사를 준비했기 때문에 나와 우리 직원들까지 분주히 움직였다. 반가운 친구들과 교수님들께서 도착하시면서 멋진 음악과 학창시절의 사진, 가족사진, 진료실에서의 모습들이 영상으로 흐르는 가운데 우리들의 자그마한 잔치가 시작되었다.
영상을 보면서 저 가족은 어쩜 저렇게 닮았나하며 웃음을 지어보고, 멋지게 흰머리가 늘고 중후해지는 편안한 모습에 눈길이 가기도 하고, 직원 수와 치과크기로 미뤄 짐작해 저 친구네 규모가 어느 정도겠다 하는 추측성 농담을 하기도 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번호순(얼마만인가)으로 영상과 함께 가족소개를 하고 재밌게 사는 요즈음의 이야기를 나누는데 20대 초반의 어설픈 모습이 아닌 중년의 무게가 느껴지는 진한 깊이의 감동이라니…
우리 부부의 최근 화두가 은퇴 후 진료 아닌 다른 잘 할 수 있는 일, 놀이가 무얼까를 지금부터 찾아가자는 건데 이미 그 재미난 일을 찾은 친구들의 모습이 어찌나 부럽던지. 전국의 국립공원이 있는 명산을 섭렵하는 중이라던 친구, 농구를 좋아하여 전국적인 규모의 농구대회까지 개최하며 청소년들에게 꿈을 만들어 주신 형, 근사한 주택을 지어서 1층을 아예 게스트 룸으로 개방하여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는 형, 사진 작업을 취미로 하여 훌륭한 작품을 20주년 행사에 경품으로 까지 내어 놓은 친구 등등.
학창시절 친구네 숟가락 수까지 알 정도로 돈독한 사이였던 우리 동기들! 저마다 다른 모습들로 살고 있지만 이구동성으로 하는 큰 감동.
‘나를 내려놓고, 욕심을 조금 버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나눔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이 작은 마음들이 한 목소리가 되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순수했던 학창시절만큼 잘 살아왔고 그 보석 같은 깨끗함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해졌고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도 따뜻한 뭉클함을 느낀다.
교수님들과 선배님들께서 자리를 같이 해 주셨는데, 그저 학생이고 후배이기만 한 듯한 분위기에 “밥 사 주세요. 술 사주세요.” 떼 쓸 뻔 했다. 우리의 추억 크기만큼 깊어진 늦은 밤에 자리를 옮겨 한옥마을의 멋진 공간에 자리를 했는데, 양쪽으로 마주보고 앉은 모습이 밤 늦게 끝난 실습 후에 닭 내장집이나 막걸리 집에 앉아 테이블에 책을 높이 쌓아 둔 채로 이야기를 나누고, 술을 나누고, 정을 나눴던 꼭 그 시간을 옮겨 놓은 듯 했다. 그냥 웃게 만드는 간드러지고, 뒤집어지는 누구군의 웃음소리, 예나 지금이나 쩌렁 쩌렁 울리는 누구의 굵은 목소리, 머리 스타일이 여전히 똑같은 친구에게 아직도 미장원 안 바꿨냐고 장난치는 누구, 실험 조 끼리 앉아 담소를 나누는 누구 누구들, 여전히 좋은 입담으로 여자 친구들과 수다 떠는 누구군, 그 분위기 좋은 곳에서 분위기에 흠뻑 빠져 있는데, 기름기 좔좔 흐르는 안주를 내오라는 애주가 누구군, 코트 깃을 세우고 분위기 잡는 누구군, 예쁜 치마입고 왔다고 한 바퀴 돌아주는 센스쟁이 누구, 마누라가 최고라는 누구 형, 히말라야로 가자는 누구 형, 카리스마 넘치는 교수님이 된 그녀들, 대학 때 사귀던 그 남자와 결혼했다고 수줍게 웃는 누구, 다섯 아이의 엄마이면서도 재즈 가수처럼 분위기 업 되어 나타난 누구. 정말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장면이었다. 세월이 흐를 수록 동기가 최고로 편하고 너무나 큰 위안이 된다며, 이 모습 이대로 다시 만나자는 작은 소망들을 가슴에 안고 자리를 일어서려는데 또 다시 이십 여년 전으로 우리를 붙잡는 한마디!
“우리 시험없이 딱 1년만 학교 다시 다녔으면 좋겠다.” 정말 그럴 수 만 있다면…
히말라야에 가자던 형이 행사 끝나고 보낸 문자!
좋은 인연
아름다운 만남
깊은 정담
가을 국화 향기처럼 오래 오래 간직 하겠네.
머리 숙여 합장합니다.
조희정
전주 이호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