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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5번째) 新 風水地理 (2)

新 風水地理 (2)

 

<지난호에 이어 계속>


무학대사는 백악산과 관악산이 불의 산일 뿐만 아니라 목관산도 불쏘시개 산이어서 정도전의 안대로 이 선이 일치하는 곳에 궁궐을 지으면 5대가 가기 전에 왕위찬탈이 일어나고 200년 내에 나라에 큰 변괴가 생길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예언은 불행히도 세조의 왕위찬탈과 임진왜란, 그리고 경복궁 대화재로 적중하게 된다.


실은 당시 정도전과 무학대사 사이에는 유교와 불교 간의 보이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세도가인 정도전은 유교의 영향을 받는 자연학자이자 지리학자로서 풍수지리설로 왕을 설득했다.


반면 태조의 정신적인 스승이었던 무학대사는 새로운 왕조에서 유교에 점차 잠식되어가는 불교의 중흥을 꾀하기 위해 선바위가 있는 인왕산을 주산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이후 태조는 1395년 4월부터 한양에 궁궐을 짓기 시작하고 그해 윤 9월 13일 도성축조 도감을 설치, 정도전에게 명하여 도성을 축조하게 된다.


그러나 정도전의 안을 중시하며 도성과 궁궐을 축성하면서도 무학대사의 의견을 무시했던 것만은 아니다. 광화문 정문 앞에는 불을 먹는다는 해태석상 2개를 관악산 연주대를 향하여 설치하였고 목에는 화기를 미리 알리는 방울을 달아두었다.


그리고 광화문 네거리의 누루재(황포현)부터 남대문으로 향하는 길을 직선으로 내지 않고 불길이 돌아오도록 보신각 쪽으로 크게 우회시켰다. 지금의 태평로는 이후에 황토현으로 부터 남대문까지 새로 길을 뚫은 것이다.


동시에 관악산의 화기를 막을 물길을 내기 위해 청계천을 준설하여 물이 더욱 많이 흐르도록 하고 준설한 흙 역시 화마가 밀려들지 못하도록 황토현에 높이 쌓았다.


숭례문 현판도 보통의 경우처럼 가로로 걸면 화마가 함부로 통과할 수 있으므로 세로로 걸어 이를 막고자 했다. 또한 숭례문 앞 서울역 자리에 연못을 파서 불길을 막는 물을 가두었는데 그 연못 이름이 남지(南池)였다고 한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 궁궐까지 화마가 밀려들게 되는 경우에도 대비해 경복궁 경회루 밑에 큰 연못을 파고 물을 많이 가두어 두었으며 모든 궁궐의 처마마다 드무를 설치해 화기를 다스릴 빗물을 받게까지 했다.


한편 서울이라는 지명이 있게 되기까지는 여러 가지로 전래되는 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태조에 의해 도성을 축조하도록 결정된 후 공사가 시작되기 전 어느 겨울에 눈이 너무 많이 쌓여 눈의 울타리가 되어 있었다. 즉 눈 설(雪), 울타리 울(鬱)해서 ‘설울’이 되었는데 이 말이 서울로 변했다고 한다.


다른 일설로는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이 서울로 바뀌었다고도 하며 백제의 수도였던 ‘부여’를 일명 ‘소부리’라고 부르던 것이 서울로 변질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는 신라의 서울을 일명 금성(金城)이라고 했는데 이는 순수한 우리말로 쇠울이니 이 말이 점차 서울로 변하여 불리어졌다고도 한다.


이렇게 축조된 도성은 그 둘레가 59500척(18Km)이었으며 북대문인 숙정문, 남대문인 숭례문, 동대문인 흥인지문, 서대문인 돈의문과 동, 서, 남, 북의 4 소문으로 성 밖과 소통되었다. 그러나 성 밖이라 해도 성저십리(山成;底十里)라 하여 십리 안에만 살면 도성 안에 사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유서 깊은 도성 사대문 안에서 치과의원을 운영한지도 어언 십여 년이 되었다. 대방동 옛 공군사관학교에서 군의관을 마친 후 첫 개업을 했던 곳이 강서구 화곡동이었으니 언감생심 그 곳은 조선시대엔 도성 축에 들지도 못했을 것이 자명하다. 그러다 큰 꿈을 안고 사대문 안으로 옮긴 지가 올해로 십 오년 째다.


요즘 출근하면서 조그만 건물 6층에 있는 내 치과를 바라보면 저절로 온갖 서글픈 상념에 사로잡힌다. 며칠 전에도 출근길에 일회용 반창고가 든 모 치과이름이 선명한 봉지를 받았다. 봉지에는 스케일링이 얼마고 임플란트가 어떻고 하는 문구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한 주가 멀다하고 유치한 선물들을 나눠주며 환자유인에 골몰하고 있는 불법 네트워크 치과들의 행태가 오늘도 어깨 힘을 쭉 빠지게 한다.


현재의 내 치과 위치가 新 風水地理에라도 잘 들어맞는지 모르겠다. 인근 네트워크 치과와의 거리와 방향, 그리고 진로가 화마를 잘 막아주어야 할 텐데 말이다. 치과 입구에 해태석상이라도 한 쌍 세워야 할까보다.

  

김영진
영진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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