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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2번째) 뼈 국 (상)

뼈 국 (상)


사람 많은 서울에 산 지 벌써 10여년이 넘어 갑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게 의식주이지요. 워낙에 소인(小人)이다 보니, 전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게 식(食)인 거 같습니다. 먹는 즐거움 말이죠! 결혼해서 고향 멀리 나와 살고, 맞벌이 하는 사정이라, 입맛 까다로운 나도 이런 맛 저런 맛에 길들여지게 되고, 예전의 그 맛이 그리울 때가 참 많습니다.


맛은 요리가 불러낸 변덕쟁이 애인입니다. 같은 양념을 써도, 똑같은 사람이 만들어도, 시기와 날씨, 분위기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죠. 심지어 같이 먹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똑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게, 즐겁게, 고맙게, 깨끗하게, 준비한 사람을 칭찬하며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천하의 일품요리를 맛없게, 우울하게, 같이 먹는 사람이 더 이상 숟가락을 들게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사람도 있지요.


서울에 살면서, 허기져서 우연히 들어간 집이 유명한 맛집인 경우도 있었고, 유명세 따라 주말이면 힘들게 찾아간 집도 여러 집이 되는군요. 정말 유명한 집이더라도 내 입맛에 안 맞는 경우도 허다해서 다시는 가지 않는 집이 있는가 하면, 철따라 분위기 따라 한 두 시간의 정체를 뚫고 힘들게 찾아가서 꼭 먹고 와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도 많아졌지요. 역시 소인배라 그러지 않나 싶습니다. 


서울은 극과 극이 공존하는 곳이지요. 강남의 엄청난 부자들과 밤이면 서울역으로 모여드는 노숙자들. 달동네와 평당 4~5천만 원씩 하는 으리으리한 주상복합 건물.


먹는 것도 그렇죠. 한 끼니에 천원 하는 것부터 5~6만원 호텔 뷔페에 기십만 원하는 정식까지. 적은 액수여도 맛이 기가 막힌 게 있는가 하면, 싼 맛을 느끼게 하는 것도 있고, 많은 액수를 주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는 비싼 음식도 있고, 정말 웃기지도 않는 비싼 음식도 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국민일인당 국민소득이 2만 불을 향해가는 시대이고, 먹는 거 자는 거 입는 거 걱정하지 않는 시절이 되었지만, 20~30년 전만해도 참 힘들게 살아가던 시기였죠. 그 중 먹는 거는 그 때와 비교해 보면 정말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제 각 가정의 냉장고에는 매주 마트에서 사들여 온 우유와 아이스크림, 음료수, 과일, 빵, 안주거리들이 가득 들어있죠? 가까운 슈퍼에서도 언제든지 사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어 있잖아요? 오히려 비만을 걱정하고, 건강을 걱정해서 식이조절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네요. 어렸을 때 그렇게 먹고 싶던 과자나 사탕들이 십여 년 전부터는 입에 대기조차 싫어진 게 신기할 정도니까요.
이러한 상념들 사이로 문득 떠오르는, 지금부터 한 20~30여 년 전부터 지독하게 저의 혀를 기쁘게 해주던 음식에 대해 얘기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그 음식 맛을 보기가 참 힘들지만, 언젠가 곧 그 맛을 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이름하야 “뼈국". 요즘은 감자탕이라고 하기도 하고, 뼈해장국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팔리는 음식이지요. 우리 한창 시절(학창시절)에는 먹을 것과 돈이 부족해서, 집에서 해주는 밥이 최고이고 전부였죠. 한 달에 한두 번 그것도 장날이나 특별한 손님(작은 아빠, 고모)이 오시는 날만 맛 볼 수 있는 진귀한 음식이기도 했지만, 지극히 평범한 음식 중에 하나이기도 했지요.


언제나 똑같은 반찬에 질릴 때쯤 한 번씩 식구들의 보양식으로 나오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그 시절에 대가족들이 비싸게 고기 구워 먹을 형편도 안됐고, 조금의 투자로 영양과 맛을 충족시켜줄 기가 막힌 히든 카드정도!


장날(담양은 2, 7일 장)이 되면 할머니는 오랜만에 외출준비를 하십니다. 장롱 깊숙이서 하얀 저고리와 치마를 빼 입으시고, 속치마에 돈을 준비하십니다. 하얀 손수건 안에 빼꼼히 보이는 꼬깃꼬깃한 만원, 오천원짜리들.


한 시간쯤 후 할머니는 정육점에서 돼지 등뼈를 시세에 따라 오천원, 혹은 만원어치 사서 힘들게 직접 사들고 오십니다.


“오늘은 돼지를 쪼금 잡아서, 함바터면 다 떨어질 번 했이야!”
“오늘은 등뼈 값이 만원이란다! 지독히도 비싸다잉.”
“다음 장에 꼭 우리 꺼 맞춰 놓으라고 말해 놨다잉.”


뼈는 그날 잡은 돼지로 해야 한다면서, 그날 잡은 게 없으면 이 행사는 다음 장으로 연기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가끔, 머리에는 채소가게 옆에서 분리해 놓은 겉배추 잎을 주워(?) 머리에 이고 오셨고, 아니면 엄마가 주워 놓은 겉배추 잎을 자전거로 실러 가시곤 했습니다. 배추는 엄마가 주워 오시든 할머니가 이고 오시든 그때그때 달랐지만, 돼지 등뼈만큼은 할머니가 직접 눈으로 확인 하시고, 꼭 할머니 돈으로 지불하시고, 직접 들고 오셨어야 했습니다. ‘미애 엄씨야(우리 엄마) 내가 오늘은 못 움직이니께, 니가 좀 사와라. 돈은 여깃다 ’라고 말씀하신, 기력이 떨어진 노년 때를 제외하곤 예외가 없었습니다.


머리에 힘들게 이고 오시는 날이 뜨거운 여름날이면 할머니는 한마디 하시죠.


“아이구, 아주 자갈자갈 삶는구나.”, “아이고 요거 이고 오느라 땀으로 멱 감았네.”


잠시 후 뒤 안에서는 텅텅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등뼈를 서슬 퍼런 망치(장도리)로 잘게 부수는 소리죠(물론 이 소리도 기계로 잘라준 이후로는 듣지 못했습니다). 짜장면집 면발 빼는 소리처럼 텅! 텅! 텅! 어디서 그런 힘이 나시는지, 잘도 부숩니다.


<다음호에 계속>

  

박래준

비타민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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