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군인이다
Episode 1
진료실 컴퓨터 책상에 앉아 있노라면 매일 아침 비슷한 시트콤이 제작되는 현장을 볼 수 있다.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이 우렁찬 경례소리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온다. 의무병들이 자리를 지정해주며 “저기로 가서 앉으세요” 라면 바짝 얼어있는 그 이등병은 유니트체어가 아닌 스툴에 가서 각잡고 앉아 있는다. 이건 수련할 때 70대 이상 할머니들이 자주 하시던 건데 군대에서 또 본다. 답답한 의무병이 “어이 아저씨(병사들끼리의 비공식적인 호칭), 거기 말고 옆에 긴 의자에 앉으세요” 그러면 그 이등병은 당황해서 일어나다가 체어라이트에 부딪히고… 이제는 매일 봐서 웃기지도 앉은 장면이다. 내가 다가가면 안그래도 바짝 얼어있던 그 이등병은 다이아 셋 계급장이 다가오자 더 긴장한다.
군의관 어디가 불편해서 왔니?
이등병 (두리번 거리다) …잘…못들었습니다?
군의관 휴우,,, 어디가 불편해서 왔냐구?
이등병 이,,, 이빨이 아파서 왔습니다.
군의관 (파노라마 스캔 후) 여기 충치가 엄청 심하거든
이등병 그렇습니다. (보통이라면 “네”라고 대답하는 상황이다)
군의관 신경치료 해야 할거 같은데 신경치료는 이러저러한 치료고 3~4번 정도 와서 치료해야 하고
이등병 그렇습니다. (뭐가 그렇다는 걸까?)
군의관 다음주에 오면 치료 시작하는 걸로 할게.
이등병 그렇습니다. (역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대답이다. 군이란 곳이 8주 만에 이 아이에게서 “네”라는 대답을 빼앗아 간 것이다)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밖에 있을 때 이런저런 불평하던 환자에 치이던 때를 생각하면 이렇게 “그렇습니다”만을 반복하는 병사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Episode 2
얼마 전 부대구경도 할 겸 엄마가 부대에 잠깐 오셨었다. 잠깐 진료실 밖에 앉아 계시게 하고 진료실에서 환자들 보다가 나가는데 아직 계급장도 없는 왠 훈련병이 화장실에서 핸드폰을 들고 나오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 훈련병은 벌벌 떨면서 우리 엄마에게 핸드폰을 건네 주고는 나의 처분(?)을 기다렸다. 대충 상황이 짐작이 가서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 한 마디 하고는 엄마와 돌아서 가는데 뒤에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방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다. 나에게? 아님 우리 엄마에게?
걸어나오며 엄마에게 얘기를 들으니 엄마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앉아 있는데 옆에 훈련병이 계속 힐끔거리며 눈치를 보더란다. 그리고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저기요, 저기요, 죄송한데 핸드폰 좀 빌려주시면 안돼요? 훈련소 들어온 지 열흘째 인데 엄마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서요” 엄마는 선뜻 빌려주었고 이 훈련병은 누구에게 들킬 새라 화장실에 가서 전화를 하고 나오다가 나에게 딱 걸린 것이었다. 피식 웃음이 났지만 훈련병의 애틋한 마음에 가슴이 찡했다. 나도 불과 1년 반 전 훈련소에서 똑같이 느꼈던 것이기에 더욱 그러했다. 짧았던 엄마와의 통화가 그 훈련병에게 고된 훈련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기를 바란다.
또한 “그렇습니다”라는 말밖에 못하는 이등병, 엄마를 끔찍이 보고 싶어하는 훈련병,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날씨가 차다. 오늘도 GOP로, GP로, 강안으로 새벽 경계근무 나가는 우리의 국군장병들 부디 아프지 말고(^^) 무사히 전역하기를….
장용욱
9사단 의무대 치과 군의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