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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1번째) 꽃동네에서의 해프닝 (하)

꽃동네에서의 해프닝 (하)
<지난호에 이어 계속>


친구 ‘허"와 나는 1시간 정도 꽃동네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적지 않게 땀을 흘리며 우리가 타고 온 승용차에 다다랐다. 친구 ‘황"은 승용차 에어컨을 의지해 독서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황"의 이러한 모습은 예(禮)를 크게 벗어나 우리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세 사람이 다시 승차한 자리는 괜히 다소 어색하게 느껴졌다.


가이드 역할을 한 ‘허’는 현지 친척 집으로 들어가고 두 사람만 귀경길에 올랐다. 도중에 우리 둘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안전운행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며칠 뒤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이며 친구 ‘허’는 “황이 지나치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으니 술자리를 마련하여 풀어버리도록 해보자”는 제의를 해와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또 ‘황’에게 각 위인들의 책자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주어 독서 자체를 인격과 직결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적 방향으로 유도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좁은 소견대로 처신하는 경우, 친구 간 의절까지로 발전될 수 있는 위기가 봄눈 녹듯이 해소되며 보이지 않는 교훈을 주고받는 두 친구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렇게 조금씩 시간이 흐르고 또 다른 계기로 친구 ‘황’은 자신의 세계를 무너뜨리는 기회가 생겼다. 그리고 친구 ‘허’도 그러한 ‘황’을 이해하면서 자신이 옹졸하게 보았던 ‘황’의 세계가 넓어지도록 조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이 둘의 냉정과 열정은 아마도 아주 조금 희석되지 않았나 싶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말이다. 다만 그 사이에 ‘나’라는 존재가 끈이 되고 공통분모가 되어 균형을 잡아 주었다면 천만 다행이오, 우정이라는 이름에 당당할 수 있으리라. 물론 나는 그 둘의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시키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한 적은 없다. 다만 자신의 위치와 색깔에서 성숙했던 둘이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인정하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난 아직은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하는 ‘허’와 편하게 세상을 껴안으려는 ‘황’의 사이에서 녹아드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과 함께 삶을 살아가고 있고, 지금 이대로의 모습, 그대로가 참 좋다.


일찍이 공자는 “자기를 이겨내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이다”라며 “어떤 때고 자기를 이겨내고 예(禮)로 돌아가면 모든 게 인(仁)에 귀착되니 인(仁)을 실천하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지 남에게 달린 것은 아니다”고 했다.


또한 그 실천사항으로 “예(禮)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않는 것이다”고 말했다.


즉, 비례물시(非禮勿視), 비례물청(非禮勿聽), 비례물언(非禮勿言), 비례물동(非禮勿動)
전체와 조화를 이루는 개인적인 삶의 형태이기도 한 예(禮)는 결국 극기복례(克己復禮)로써 완성될 수 있다는 웅변이 아닐까. 어찌 보면 사람으로서 제대로 살기가 녹록하지 않은 듯싶지만 한편으로는 자기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않는다면 (己所不欲勿施於人)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닌 듯싶다.


꽃동네에서 생긴 ‘해프닝’을 통하여 사물론(四勿論)을 되새겨 본다.


최무송
광명치과의원 원장
코리아문학 작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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