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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1번째) Big Picture를 읽고 나서

제1721번째
릴레이수필


Big Picture를 읽고 나서


얼마 전 통영의 한 초등학교 학생이 엄마와 함께 겨울 방학 과제를 가지고 보건소로 찾아 왔다. 자신의 꿈이 의사(doctor)라고 밝힌 그 초등학생은 ‘의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지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 옆에선 엄마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일찌감치 목표로 잡은 자신의 아이를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나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10분 동안이나 심각한 고민에 잠기게 되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답을 쓰기엔 너무 세속적인, 부모를 위한 답안 같았으며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라’는 식의 답을 주기엔 너무 세속과 동떨어진, 필자의 자위적인 답안 같았다. 급기야 ‘나는 왜 치과의사가 되었지?’ 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만나게 되었다. 점차 심각해지는 나의 표정과 괜히 질문했다는 학부모의 표정 사이에서 그 초등학생은 과제 하나를 끝내겠다는 비장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 내 꿈은 ‘만화가’였었다. 아니 지금도 내 머리는 치의학 원서들 사이를 헤매고 다니지만 내 심장은 만화책의 한쪽 끄트머리를 놓지 못하고 있다. 나 뿐만이 아니다. 내 주위의 동료 의사들 중에서도 Base camp는 의사 자격증에 설치해 두고 음악, 댄스, 연극, 소설, 방송, 예술 등등의 분야에서 꿈을 펼치고 싶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이미 의학과는 이질적인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소설 속 주인공 셈은 변호사의 길을 가던 도중 치명적인 사건 이후 게리라는 사진사의 길을 가게 된다. 덤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때 시체를 처리하는 나름 유용한 정보도 제공한다. 어릴 적 로망이었던 사진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 번 멋지게 펼쳐보게 되는 스토리는 꿈을 마음속에 접어 둔 채 꿈과 다른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이의 공감을 얻어내기 충분했다. 본인도 순간 ‘나도 한번?’이라는 충동이 일어났지만 ‘거기 까지’만 하기로 했다. 물론 현실을 둘러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잘 하는 일을 기꺼이 포기하며 달려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자신들을 구원해 주리라 믿었던 좋아하는 것들이 오히려 그들의 삶을 갉아먹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현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우리는 살인이라는 극단적 계기가 아니더라도 보다 매끄럽게 또 다른 인생을 펼칠 수 있는, 펼쳐야 하는 21세기에 살아가게 되었다. 의학의 발달로 노후라는 시간을 또 다른 우물을 팔 수 있도록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동양적 미덕은 평생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고 장인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떠나는 길에 명예를 부여했지만 인생이 길어진 만큼 우물을 파는 일에 대해서도 다양한 modification이 가능하게 되었다. 노년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시트콤, 광고, twitter 등등에서 맹활약 하시는 소통 작가 ‘이외수’선생님처럼 말이다.


나는 현재 ‘공중보건의, 구강외과전문의 조성민’으로 불린다. 하지만 언젠가 은퇴할 즈음에는 ‘Dental illustrator 조성민’으로 공식 직함을 마치겠다는 계획이다. 국제 의료마케팅 전문가 과정을 밟고 있는 현재와 Bio-CEO 과정을 이수하려는 계획도 나만의 콘텐츠를 보다 풍부하게 쌓아 올리려는 준비이며 나의 웹갤러리 홈페이지(www.dentalgallery.co.kr)와 착한치과 project (www.착한치과.com)는 그러한 콘텐츠를 담아 내는 그릇이다. 한편으로는 현역에서 은퇴한 뒤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데 미리 준비해 두지 않으면 과거의 명함만을 간직하며 남은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만 같은 절박감도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꿈과 스토리를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스토리를 풀어내는 tool은 다양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 낼 그릇을 연마한다. 영화감독 박찬욱은 철학, 봉준호는 사회학, 김기덕은 신학을 전공했었고 제임스 카메론은 트럭운전사였다. 원작은 하나다. 그 스토리를 자신만의 도구이자 언어로 표현해 나가야 하며 그 분들은 영화라는 tool을 선택했을 뿐이고, 이외수 선생님은 소설을 선택했을 뿐이고, 나는 일러스트를 선택했을 뿐이며 이런 일러스트를 노출시키기 위해 SNS를 연구하다 보니 프로그래머라는 직함까지 생겼을 뿐이다. 사실은 공보의로서 시간이 많이 남아돌았을 뿐이기도 하다. 현재 내 방에는 치과 관련 서적보다 컴퓨터 관련 서적이 더 많다. 나의 아이디어를 표현해 내기 위해 tool(프로그래밍)을 연마하다 보면 반대로 아이디어가 다시 상승하는 경험을 자주했다. 게다가 요즘엔 사진, 영상, 그림관련 프로그램들이 대중들을 위해 쉽게 제작되어 있어 인터넷 강의로 혼자서도 충분히 스토리를 현실화 시킬 수 있으며 유통 채널 또한  SNS를 이용하거나 유튜브를 이용하면 된다. “에이~ 굳이 그렇게 까지 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치과의사다.


인간수명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생각을 해본다. 이렇게 귀한 시간을 늘려주는 일은 우리가 원하는 꿈을 위해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건강하고 생산적이며 발전적인 100년을 살 것인가, 아니면 목표 없이 허송세월하다 말년에는 몸져 누운채로 100년을 마감할 것인가. 선택은 각자의 손에 달려있다. 2012년 새해 ‘빅 픽쳐’는 각자의 삶에 대한 건강검진을 제안해 준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현재 프랑스에서 영화로 제작 중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아!! 좀만 더 기다릴 껄 괜히 읽었다.


조성민
대한공중보건치과의사협의회 학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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