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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7번째) 그녀가 베트남으로 간 까닭은?

Relay Essay


제1747번째
그녀가 베트남으로 간 까닭은?


그녀의 나이 서른 셋.
만으로 셈을 하려해도 꽉 채운 서른 두 해는 좀 무겁다.
하나 둘 씩 친한 친구들이 결혼을 하며 그녀를 떠나가고, 그 나이까지 결혼을 못(?)한 이유를 알아내려하는 세상의 시선 앞에서 안(!)한 사람이고 싶은 여자는 혼자 보내는 올 해 생일이 좀 특별하길 바랬다.
그렇다고 그런 날 혼자 여행을 가기는 싫고, 어딘가 멀리 이국적인 곳으로 떠나고는 싶은 그녀에게 온 공지 문자.
  베트남 의료봉사단 모집.
고수풀 냄새, 늦은 오후의 갑작스런 스콜, 된소리 가득한 그들의 말….
모든 것이 낯선 이 나라에 뜨거운 여름을 느끼러 가면 지난 봄 여자를 괴롭히던 복잡한 생각들도 그 열기에 다 증발되어 버릴것만 같았다.
많이 나누고 오겠다는 결심과 함께 떠났던 이제까지의 봉사와는 달리, 많이 비우기 위해 그녀는 길을 나섰다.
 
진료 첫날.
그녀의 생일날.
동나이에 새벽녘에야 도착해, 두 세 시간 겨우 새우잠을 자고 나와 푹푹 찌는 더위에 땀을 빼면서 머리가 아파진 여자는 타이레놀을 ‘3회/일’ 복용법으로 하루종일 먹어야했지만 아무런 생각없이 지칠때까지 몰입한 하루가 고마웠다.
화려한 케익 대신 초코파이에 성냥하나 꽂은 조촐한 축하였지만, 그녀의 특별한 날, 함께 땀 흘린 사람들이 피곤한 하루의 끝에 반주도 없이 불러준 그 노래가 너무도 고마웠다.
 
진료 둘째날.
좀 더 효율적인 동선을 위해 2층으로 무거운 치과장비들이 다시 이사해야했지만, 잠깐의 고생 후에 더 효율적으로 변모한 진료실 세팅이 너무 맘에 든 여자는 오늘 하루 정말 열심히 나누리라 결심한다.
더운 날씨에 과열된 컴프레서 때문에 치과 장비 한대가 돌아가지 않아 당황한 그 순간, 신기하게도 알아서 발치 환자만 찾아와주어 여자는 되뇌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좀 자리를 잡고, 각 팀원들끼리 손발이 맞아 가는데 진료를 마무리해야 하는 것이 너무 아쉬운 그녀는 거꾸로 생각해 본다.
이렇게 하루 만에 척척 호흡을 맞춘 단원들과 이틀을 함께 한 것이 어디냐고….
호치민과 동나이 사이에 거리 이동이 쉽지가 않고 숙박시설도 쾌적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이번 봉사단이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는 그녀.
봉사지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할 때 의료 혜택을 받기 힘든 곳일수록 더욱 우리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라, 오시는 순서대로 도움 드리면 되는 상황은 봉사단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멀리까지 온 보람이 있다고 다시와도 좋을 곳이라는 생각을 나름 해보는 그녀.
 
마지막 날.
오후에 호치민시에 도착한 그녀를 반긴 건 소나기.
타인의 시선 따위 신경쓰지 않고 그냥 비 맞고 걸었던 게 언제더라?
시원한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차박차박’ 물웅덩이에 발을 내딛다가 그녀는 떠올려본다.
머리가 큰 이후 처음인 듯하다.
어린 시절로 회귀하는 즐거움을 선물해 준 소낙비.
한국에서였다면 짜증났을 이 비가 이런 고마움을 안겨주다니.
시선의 차이가 가져오는 행복감에
문득,
돌연,
완전,
감탄하는 그녀.
행복감도 능력이구나….
 
각 단원들 저마다의 열정이 함께한 이번 베트남 봉사는 짧지만 강렬했다.
마치 그들의 구호. ‘열! 열! 열!’처럼.
소소한 개인의 행복을 위해 떠났던 그녀는 함께 해 준 모든 분들께 그저 감사한 마음뿐.
그 감사함에 기대어 마음 가득 행복을 길어올리며 그녀는 돌아왔다.
일상으로.
언젠가 누군가 묻는다면 그녀는 웃으며 대답할 것이다.
“서른 셋 생일에 뭐했어요?”
“베트남에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었어요.” +

 

조주영
디자인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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