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761번째
그들만의 여름휴가?
삼십 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앉아만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흐르고 손 부채질하느라 여간 손목이 저린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있자니 나중에 날아들 고지서를 마주할 용기도 없고, 작년에 이미 대규모 정전사태를 경험한지라 온도를 낮추려는 손놀림을 트라우마가 저지합니다(이런 트라우마라면 기쁘게 받아들여야 하겠죠?)
이럴 때면 귓가에 시원한 파도소리가 들려오는 듯 합니다.
뭐니뭐니해도 여름이 좋은 건 여름휴가가 있기 때문이겠죠! 휴가를 가든 가지 않든 여름휴가라는 말은 사람을 들뜨게 만듭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같다고나 할까요? 지치고 피곤한 일년 중 단비 같은 단 몇 일! 왠지 가장 신나고 재미있고 열정적인 시간이 되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어른들도 이 정도인데 아이들이야 오죽할까요. 혹시 벌써부터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계신 건 아니신지? 여름방학 대목을 맞아 벌써부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공연들도 열리고 있고, 전시와 체험학습을 위한 다양한 볼거리도 넘쳐납니다. 산으로, 바다로 단순하게 생각하던 우리 때와는 또 사뭇 다른 풍경이죠. 어디 그 뿐인가요? 대형 워터파크들도 많아지다 보니 아이들이 더 잘 알고 먼저 얘기를 꺼내더군요(저도 올 여름에는 늦둥이 사촌여동생을 데리고 뽀로로 테마파크나 워터파크라도 놀러 가야 할 것 같군요).
신나서 물놀이 삼매경에 빠져있을 아이들과, 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수박을 썩썩 썰어내어 입안 한입 베어 물면 그처럼 행복한 여름이, 그처럼 행복한 여름휴가가 또 있을까요?
TV CF에나 나올법한가요? 휴가지 바가지 요금이며 짜증나는 교통체증은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래도 여름휴가는 가시는군요. 즐거운 여름 휴가는 물론이거니와 하물며 여름피서 행렬로 꽉 막힌 도로도 먼 나라 얘기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앞서 얘기했던 여름휴가 풍경이 여전히 낯설게 받아들여지는 사람들이 있죠.
16살 중학생 성구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저 역시 해핀을 통해 성구의 이야기를 접하지 않았다면 내가 가진 이 오아시스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인 줄 알았을 겁니다. 하지만 성구에게는 오아시스가 마냥 신기루같이 느껴졌을 겁니다. 혼자서 밥을 먹을 수도, 걸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고, 늘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하는 뇌병변1급 장애. 그것이 성구의 여름을 신기루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입니다.
물론, 성구만이 아니겠죠.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아이들,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 여름 휴가는 꿈도 꿀 수 없는 아이들. 그러나 성구의 이야기가 더 마음을 아리게 하는 것은 성구가 즐겁게 여름휴가, 여행을 즐길 수 없는 것이 그러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이 가는 공연장도 전시회장도 가고 싶지만 휠체어를 타야 하는 성구에게는 계단을 오르는 것도 좁은 공연장안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워터파크 물놀이기구를 타려면 여러 사람의 도움도 받아야 하고, 성구가 즐기기에 안전하지도 않습니다. 동네 수영장에 가려 해도 반겨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무엇보다도 성구를 바라보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성구의 여름을 더욱 힘겹게 만듭니다. 또래 아이들은 참 쉽게도 누리는 행복과 즐거움이 성구에게는 왜 그렇게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건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6살, 이제 겨우 중학생인 성구에게 여름휴가의 설렘이 없을 리 만무합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물에 풍덩 뛰어들어 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식히고, 친구들과 물장구도 치고 싶고, 산이며 들이며 멋진 경치도 구경하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물놀이기구도 타고 싶고, 재미있는 캐릭터들의 공연도 보고 싶을 겁니다.
사실, 내게는 성구가 집에서 보내야 하는 그 여름이 오히려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성구에게도 우리들이 보내는 그 여름휴가가 ‘타인의’, ‘그들만의 여름휴가’로 느껴지겠죠.
언제쯤 우리들의 여름휴가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은 나의 여름휴가에 대한 고민 대신 성구의 여름을 어떻게 하면 즐겁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해봅니다. 고민에 고민이, 그리고 관심에 관심이 차근차근 쌓이다 보면 성구와 함께 즐거운 여름휴가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꽁떵구, 바다로 놀러가자~(성구의 별명이라네요)
올 여름에는 낯설었던 그들의 여름 휴가가 나의 여름 휴가로, 그리고 우리들의 여름휴가로 거듭나길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이주선
㈜휴네스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