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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3번째) 네팔의 추억(상)

Relay Essay
제1773번째


네팔의 추억(상)


사람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 해야할 일 등을 적은 것이 ‘버킷리스트’이라면, 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가 ‘죽기 전에 해외봉사는 꼭 해보고 싶다’ 였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2007년 즈음부터 알고는 있었고, 홈페이지 회원가입을 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었지만 간호사, 임상병리 분야는 많이 채용을 했지만 치과위생사 채용은 거의 없었습니다. 있었더라도 이미 홈페이지를 확인하면 기간이 지났거나 타이밍이 맞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인연이라는게 있을까요? 평상시에는 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2010년 가을 이메일이 와 있었습니다. ‘코이카 62기 봉사단 모집’ 분야엔 네팔 치위생 1명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기에 ‘설마 되겠어’ 하는 마음에 원서를 넣었고, 서류전형, 2차 면접, 마지막 신체검사까지 최종합격 하고 나니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때 제 나이 33살. 치과에서 일하고 있었고 잘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도 있었던 때라 모든 걸(모든 거라고 거창하게 할껀 없었지만 당시 전 심각했었습니다) 포기하고 2년동안 갔다 올 수 있을까? 굉장히 고민에 고민을 한 결과 이번 기회가 아니면 절대 할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다니던 치과 원장님께 양해를 구해 2010년 12월 31일까지 근무를 하고 2011년 1월 2일 국내 합숙훈련에 참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코이카 봉사단은 1991년 4월에 설립된 정부기관으로 개발도상국에 전문가, 해외봉사단파견, NGO지원 등을 하는 기관입니다. 현재에도 꾸준히 해외봉사단을 파견하고 각 봉사단은 각자의 임지에서 자기 분야 일을 하면서 2년동안 생활하면서 봉사할 수 있게 서포트해 주는 기관입니다.


봉사단에 뽑히게 되면 바로 해외로 파견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 한달간 국내훈련을 받고 현지에 가더라도 2달간 현지 적응훈련을 받고 2달후 비로소 임지로 파견이 됩니다. 훈련기간에는 국내훈련에서는 ODA에 관해, 봉사란 무엇인지, 각 나라에 대한 정보, 각종 예방접종, 각 나라 현지어 공부 등을 하고 현지에 가서 2달간 현지적응 훈련기간에는 정말 말 그대로 현지에 적응할 수 있게 현지어 공부, 시장가서 장 봐오기, 대중교통 타보기, 건강에 대해 조심해야 할 것들, 살면서 필요한 한국공공기관에 대해 등등 공부를 합니다.


이러한 모든 훈련이 끝나고 제가 파견된 ‘람중지역병원’으로 간 첫날. 전 요즘 흔히 말하는 ‘멘붕’이 왔습니다. 분명히 치과위생사를 요청했다는 건 치과가 꾸며져 있어 그 곳에서 진료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요청한 거라 생각을 했는데 제가 간 람중지역병원 치과는 그 흔한 유니트체어도 없이 의자 하나, 테이블 하나가 다였습니다. 람중지역병원 전체 통틀어서 의사는 2명 (파견됐을 당시) 당연히 치과의사는 따로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발치를 할 수 있는 HA가 있어서 치과환자가 오면 그 분이 진료를 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네팔의 paramedic system에 대해 말하자면 전부 4종류가 있습니다. 의사 (General Doctor)를 제외하고 HA(Health Assistant-대학에서 3년 공부, 의사를 보조하고 의사가 없는 산간지역에서는 의사역할까지 할 수 있다) - Nurse - CMA(Community Medical Assistant) - ANM (한국의 간호조무사와 비슷)으로 나눠집니다.


람중지역은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기 위해선 꼭 거쳐야 하는 트래킹이 시작하는 마을이어서 산속에 위치하고 있었고, 그래서 그런지 람중지역병원에서는 의사 수가 상당히 부족했고 시설 또한 열악해 만약 응급환자가 발생 시 차로 3시간정도 걸리는 포카라로 이송을 해야만 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이니 치과의사가 따로 있을 리가 없고, 처음에는 어떻게 일을 해야하나 많이 속상하고 아무 생각이 안 났지만 나중에는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했습니다.


처음에는 치과 환자가 오면 HA와 같이 환자보고, 치과환자가 오지 않을 때에는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반 메디컬 일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몇 달 적응을 하며 네팔어도 일상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을만큼 조금 늘었을때 람중지역병원에 저와 같이 파견된 사회복지분야 단원과 함께 람중지역에 있는 학교를 돌아다니며, 위생교육을 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교육을 하고 싶은 마음은 많았지만 우리의 네팔어가 교육을 할 정도로 유창하지 않아 기다렸다 이제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병원 현지 직원들과 함께 교육을 다녔습니다. 병원에서 10~20분 떨어진 학교부터, 산속에 있어 차가 갈 수 없어 2시간씩 등산을 해야 갈 수 있는 학교까지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은 무조건 다 다녔습니다. 우리의 교육은 손씻기 교육과 잇솔질 교육으로 처음에는 외국인이 교육을 하는 것에 아이들이 호기심을 보였고, 교육을 하면서 비누, 칫솔, 치약 등을  나눠주니 집중도 잘해 주었고, 무엇보다 앞에서 더듬더듬 제가 하는 네팔어를 이해하려고 하는 똘망똘망한 아이들의 눈망울을 절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교육을 하고 다음날 병원에 출근을 하면 병원장이 저희한테 ‘어제 학교에서 전화왔었어. 너희들이 와줘서 정말 고맙데…’ 이 한마디 해주는 것이 비록 2시간씩 산을 타서 다리는 아플지언정 피로가 싹 가시는 말들이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김주미
치과위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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