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778번째
고마워, 진상 강아지
요즘 지인의 간절한 부탁으로 당분간 강아지를 맡고 있다. 소변, 대변을 잘 가리고 털이 예뻐서 누가 보아도 예쁜 강아지다. 내가 퇴근하면 문 앞에서 꼬리를 흔들고 반기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그런데 이 요크셔테리어의 원래 주인은 강아지 산책을 많이 안 시켰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산책을 하루에 한 번 씩은 꼭 나가는데, 이 녀석 산책을 나서면 다른 종의 강아지로 돌변한다. 강아지 산책용 가슴줄이 끊어질 정도로 앞을 향해 무작정 달리고 또 달린다. 산책이 아니고 이건 뭐 달리기 시합 수준이다. 그러다 내가 지쳐서 잠시라도 천천히 걸으면, 이 녀석은 나만 쳐다보고 계속 짖는다. 앞도 안 보고 걷는 것도 하는 둥 마는 둥. 나를 올려다보고 화만 낸다.
“왈왈왈”
싸움개 저리가라 할 정도로의 큰 소리다. 시끄럽다. 이 녀석, 그 시간에 니 옆을 지나는 경치나 사람들을 구경할 것이지. 그래야 니가 하루 종일 기다리는 산책 시간을 제대로 만끽할 것이 아니냐? 하루 종일 내가 퇴근하기 만을 기다린다는 녀석이 가장 기다리는 소중한 순간을 이렇게 허비하다니….
그런데 가만. 이 강아지의 모습이 내 모습은 아닐까? 소중한 현재를 그냥 흘려보내고 오히려 자기가 매여 있는 상황에 짜증만 내고, 앞을 향해 달려가려는 행동에 제약을 받으면 화를 내고… 한 걸음 한 걸음 기분 좋게 가면 될 것을 뛰지 못해 안달하는 저 강아지의 모습은 바로 내 모습이 아닌가?
쏟아지는 업무가 너무 많다고 투덜거리고, 진상 환자에 치이면 하루 종일 씩씩거리고 교수님의 꾸지람을 들으면 며칠 동안 우울해 하고… 수련의 생활 빨리 ‘끝나라~ 끝나라~’ 하면서 지금의 제반 사항을 내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수련의 생활을 거친 분들은 말한다. 수련의 생활 끝나고 나면 그 때가 문득문득 그리워진다고. 레지던트 때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그런데 나는 수련의 생활을 즐기고 있지 않지 않은가?
그래, 강아지야. 니 덕분에 많이 배웠다. 너를 거울삼아 오늘부터라도 수련의 생활을 즐기면서 해보아야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레지던트 생활을 소중히 여기고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지금의 각종 제약 조건에 불만을 토로하기 보다는 하루하루 수련의 기간을 보내면서 마음 한켠에 소중한 추억들을 만들어 가자. 지금 내가 지나는 수련의 기간의 터널이 먼 훗날에는 그리운 추억의 시간이 될 수 도 있으니까.
안경용
부산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