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779번째
건전한 사회와 직업의식
아이슬란드.
우리 땅과 비슷한 면적을 가지고 있지만 인구는 고작 30만명에 불과한 이 나라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순전히 화산 폭발로 유럽내 항공기가 전혀 뜨고 내리지 못한다는 소식을 접한 때와 2008년 금융위기에 이은 국가부도 선언, 그리고 척박하되 너무나 멋진 자연경관 덕에 관광 수입으로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는 일련의 해외 토픽에 실리는 기사 때문이었다.
그러다, 국민들의 높은 교육수준과 좋은 건강보험제도, 부족하지 않은 에너지와 식량, 4만 달러가 넘는 1인당 GDP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탐욕이 건전한 사회를 어떻게 파멸로 몰고 가는지, 한 국가가 금융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부를 축적한 듯 보이다 결국은 그것이 거품이었다는 동화같은 이야기 속의 국민 개개인은 어떠했는지를 보고 싶었다.
아이슬란드는 다채로운 자연풍경에도 불구하고 위도 63도의 북극권 가까이 위치하고 있고 북아메리카 판과 유라시아 판의 경계에 있어 잦은 화산, 지진 때문에 이렇다 할 산업이 없다. 다만 국부의 원천이라 할 어업과 지열을 이용한 알루미늄 제련산업 정도만을 거론할 수 있었으니 생계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라 해 봐야 이것밖에 없다 할 수 있다.
그런데 2003년, 합해 봐야 수십억 달러에 불과한 아이슬란드 은행들의 자산은, 엄청난 외화를 빌려 외환투기와 부풀려진 자산을 거래하면서 2006년 1400억 달러로 급격하게 불어났다. 이와 동시에 주가와 부동산도 치솟게 되었다. 이 해 아이슬란드 가정의 평균 자산도 2003년보다 3배가 늘어났다. 그러나 2008년 주요은행들이 파산할 때 손실이 1000억 달러에 달하면서 국민 1인당 손실이 33만 달러에 이른다는 계산이 나오고 국민들 개인적으로는 주식시장이 85%나 폭락하면서 막대한, 빈털터리에 가까운 손해를 보게 되었다.
우리의 외환위기 전후와 같이 자국의 화폐가치가 오르자 엔과 스위스 프랑 같은 외화를 대출 받아 낮은 이자를 지불하고 커다란 환차익을 챙겨 큰 돈을 벌게 되니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던 어부들도 굳이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릴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16살에 배를 타기 시작해 선장이 되었다는 이가 30살에 느닷없이 고기잡이를 그만두고 은행의 외환거래부서에 입사해 금융상품을 팔며 100만 달러의 고액연봉자가 되는 예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자국의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원리금을 상환해야 하는 외국돈의 가치가 몇 배 오르며 상황은 완전히 바뀌게 됐다. 150만달러 모기지대출을 안은 50만 달러짜리 집과 10만 달러 대출이 얹혀있는 3만5천 달러짜리 레인지로버만 남게 되는 비극을 맞은 것이다. 국민 3명중 1명이 이민을 가고 싶다던 이 때의 여론조사는 참담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직업의 평등과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신에 의해 선택받았다는 징후가 된다는 16세기 종교개혁가 칼뱅의 기독교적 소명설(召命說)은, 근면과 검소, 절약의 세속적인 금욕을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재산를 쌓고 자본을 만들어 생산활동에 다시 투자하여 부를 축적함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가치관이었다. 이러한 확신은 서양의 직업의식과 자본주의를 합리화하는 뿌리가 되었다. 굳이 칼뱅의 직업소명설을 꺼내지 않더라도 아이슬란드 자본주의의 건전성과 직업에 대한 소명은 돈과 수익성이라는 그림자에 완전히 가려진 것이다. 다행히도 이후 아이슬란드는 사회 투명성과 건전성을 높이려는 노력으로 2년 만에 위기를 극복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나는 영업사원이다. 몇 년 전부터 치과에 들르면 다른 치과는 형편이 어떠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물론 이런 얘기 따위에는 관심없이 진료에 매진하는 치과를 보게 되기도 한다. 2008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에게도 거품이 꺼지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치과의 형편도 이전만 못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때에 주위는 아랑곳없이 수익성만을 좇아 진료하는 치과의 모습은 결국 치과 전체가 더 어려운 지경으로 가도록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건전한 방식과 소명에 따른 진료가 전체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아이슬란드라는 나라를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조윤상
(주)푸르고바이오로직스 영업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