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y Essay
제1800번째
“그리운 제자들에게”
창밖 너머 치악산 자락의 하늘이 잔뜩 찌푸린 걸 보니 금세라도 눈발이 날릴 듯하네. 다들 어찌 지내는지 못내 궁금하구나. 학교를 떠나 소식이 채 닿지 않아도 모두가 자신의 터전에서 열심히 일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을 것으로 믿어. 우중충한 날씨 때문인지 세밑의 감상 탓인지, 불현듯 자네들과 지내온 날들이 떠오르며 이런저런 상념에 젖게 되네. 오늘 모처럼 짬이 나서 보고 싶은 제자에게 그리운 안부를 전한다.
우리 학과가 세워진 지 올해로 벌써 십년이 되었지. 그 생일잔치를 지난 시월 말에 무사히 치렀단다. 다들 친정집에 다녀가고 싶었겠지만 생활에 쫓겨 여념이 없었을 거야. 이날 생각지도 않게 많은 내빈께서 먼 걸음을 해 주셔서 왁자글하게 행사를 잘 마쳤어. 고맙고 또 고마운 일이지. 이번에 창립 10주년을 계기로 학과에서는 그간 구상하고 추진했던 몇 가지 일에 작은 매듭을 지었단다. 지난 십년동안 우리가 쌓아온 흔적을 책으로 묶었고, 치위생의 자존을 표상하는 ‘폰스’의 흉상도 우뚝 세웠지. 아울러 그동안 노력해온 지역사회 구강보건사업을 좀 더 조직화하고 체계화하기 위해 ‘연세대학교 구강건강증진센터’도 함께 개소했어. 또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학부의 교육과정을 새로이 개편하여 이년 후에 그 시행을 앞두고 있단다. 근데 십 주년이라는 게 누구에게든 시간이 지나면 으레 오기 마련이고, 또 뭐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인지도 몰라. 하지만 돌이켜 보니, 자네들과 함께 이리저리 찾아 헤매며 비틀비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지난 십년의 시간이 그리 가볍지 만도, 그리 짧지 만도 아닌 듯해. 그동안 부족하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자신을 꿋꿋이 지켜온 자랑스러운 제자들이 있었기에 아직 결실은 비록 적지만 그 뿌리는 땅 속 깊이 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 왜‘십년감수했다’라는 말이 있잖아. 사실대로 고백하지만, 치위생학에 별 식견도 없던 내가 그나마 자네들의 곁을 오늘까지 지켜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학생시절에 자네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며 늘 걱정만 태산 같았던 나로서는 십년을 겨우겨우 버텨온 지금에야 ‘십년감수했다’는 실감이 나지. 이제 졸업생이 하나둘씩 늘어나 자네들의 기쁜 소식을 제법 듣게 되니 이 또한 안도할 일이지. 이럴 때면 나나 학교의 선생님들은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요. 기특하고 반가운 마음이 앞서지만 또 한 편으로는 늘 혼내고 나무랐던 기억에 좀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단다. 어떨 때에는 학생들 야단치는 게 내 임무 같기도 하니, 이건 아무래도 못 고칠 병인 것도 같구나.
자 이제 뿌리를 내렸으니 내일의 성장과 결실을 위해 다 함께 더 노력하자꾸나. ‘사랑해야 알게 되고, 알아야 보인다’고 하듯, 아마 우리들의 사랑이 더 깊어야 희망찬 내일이 보이지 않을까 싶구나. 어느 자리에 있던지 사랑을 나누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고, 치과위생사라는 직업의 울타리에 자신을 가두지 말고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세상에 당당히 도전하길 바란다.
어느덧 올 한해도 훌쩍 지나 이제 그 꼬리만 겨우 남았구나. 서툰 글을 쓰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났네. 밖이 어둑하고 적막한 걸 보니 학과의 선생님들도 모두 퇴근하신 모양이다. 나도 배가 고프니 학교를 그만 나서야겠구나. 올해에 묵은 일 잘 마무리하고,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잘 있어라. 또 보자.
치아와 악골의 명산, 치악산에서….
정원균
연세대학교 치위생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