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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자락의 제주도

Relay Essay-제2054,55번째

<출발>
어릴적 울산에 살던 때부터 동고동락하던 친구녀석과 휴가때 시간이 맞아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였다. 떠나기 직전까지도 가방을 싸지 않고 있다 출발 시간이 임박해서야 부리나케 짐을 쌌는데, 출발하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밀려드는 설렘이 동반된 긴장은 필요 이상의 불안감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었다. 급히 챙기느라 빠뜨린 것들은 또 그 여행만의 재미라 생각하고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고 가는 날들이 반나절 밖에 안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짧고 빡빡한 사흘이 될 것이라 쉽게 예상 가능했다.


<오설록 티 뮤지엄>
이곳은 ‘차’에 대한 관심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그 곳에만 파는 ‘녹차 롤케익’이라거나 ‘녹차 아이스크림’과 같은 특산품에 이끌려 티 뮤지엄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역시도 그랬다. 출발이 늦어져 관람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카페음식만 맛보고 나오는 수준이었다.
‘차’라는 문화적 소재가 본디 의미함은 ‘여유’나 ‘휴식’과 같은 것일진대 우리는 그것에 정면으로 반박이라도 하듯 아주 신속하게 짧고 달콤하며 쓴 녹색 빛의 특산품들을 맛보고 왔다. 그러는 와중에 문득 차 문화를 알리고 보급하겠다는 화장품 회사 창업주 회장의 뜻이 값비싼 카페와 기념품 가게의 가격표로 미루어보아 과연 그의 진심이 반영되었을지 의문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마라도 잠수함>
부산, 거제, 울산, 목포 등 살아온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와 인접하여 살았음에도 섬에 왔으니 또 바다에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어디선가 흘러들은 제주도의 맑은 물을 떠올리며 나는 친구녀석에게 잠수함 탑승을 함께 할 것을 주장했다. 해양 레포츠숍 전화번호가 ‘1987’로 끝나서 묘하게 동질감을 느꼈지만 숍의 야성적인 직원들을 보고는 그런 생각이 깨끗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곤 말을 꺼내려다 말았다.
2인에 맞게 제작된 좌석에 앉아 실제 타게 된 잠수함은 내 기대와는 달리 적잖게 씁쓸한 감이 있었다. 단순히 사이좋은 부부 및 연인단위의 방문객이 많아서라기보다는 시커먼 남자 둘이 부산 해운대 아쿠아리움에서도 볼 수 있음직한 물고기떼라고 평가절하 하거나 넓고 방대한 자연의 위압감에 매료될 것이라는 기대에 못 미쳐서라는 등의 말로 서로의 허세를 자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배가 물속으로 들어가 31미터 지점이 되자 위치를 고정시키고는 잠수사가 먹이로 물고기떼를 몰아오는 형식이라 멀미 같은 건 없었다. 두꺼운 창을 통해 만난 물고기 떼는 아주 활발하고 나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저 먹이 더 먹으려고 분주히 지느러미를 놀려댔다.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가오리였는데 아랫면이 천진난만한 사람 표정과 닮아 인기다. 실은 콧구멍과 입이라는 것. 다들 알고서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그 표정을 연출하기 위해 잠수사가 연신 가오리를 유리창에 붙여대던 모습이 짠하면서도 우스꽝스러웠다.

<용두암>
어디를 갈까 고민하며 블로그 글을 뒤적이다가 일출의 ‘오메가’가 너무 보고 싶어서 잠을 거의 못 잔 상태에서도 꾸역꾸역 일어나 짐을 쌌다. 전날 제주도 태생의 친구와 통화하며 일출정보를 모았는데 해는 동쪽에서 뜨지만 내 숙소는 서편이고 새벽에 동쪽 끝까지 갈 수가 없어서 현실적으로 힘들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도 힘들수록 이뤘을 때의 그 감개무량함은 더 크지 않겠는가? 5시쯤 숙소를 나서 열심히 어둠을 갈랐다. 도착할 때쯤 하늘이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다. 옳타구나하며 황급히 자리를 잡고 몇 번 셔터를 눌러보았지만 적잖게 실망스러웠다. 내가 원하던 붉은 하늘색도 너무 부족했고 무엇보다 밝아오기만 할 뿐 가장 중요한 태양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에 집에 있을 때는 전혀 그런 기분이 없다가 여행만 오면 일출, 일몰이 보고 싶어지는 건 나만일까?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오전 일정을 위해 얼른 정리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사려니 숲 길>
뒷 차들의 눈치를 살피며 구불구불한 산길을 완행하다 보니 사려니 숲길이 나왔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차들이 줄지어 갓길 주차를 해놨기 때문에 쉽게 이곳 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충분히 즐길 수는 없겠지만 눈에 보이니까 일단 발을 들여놓았다. 보통의 숲길보다 더 인간의 손에 때 묻지 않은, 흡사 태초의 숲에 가깝다 해야 할까? 얼기설기 얽힌 이름 모를 풀들과 누구도 꾸짖지 않은 것처럼 마음대로 가지를 뻗은 나무들, 거기다가 마치 영화 같은 연출이라도 하듯 바스락거리며 풀숲에서 뛰어나와 그 맑은 눈망울을 한껏 자랑하고는 다시 숲으로 가버린 새끼 고라니로 추정되는 동물까지, 신비스러운 느낌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그 신비스러운 공기가 머금은 습기는 우리들의 몸을 금세 무겁고 지치게 만들었고 얼른 카페에 가서 이 더위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떴다.


<쇠소깍>
거리가 먼 까닭에 아침 일찍 출발을 서둘렀지만 제주에서도 가장 인기 있다는 관광지인 쇠소깍은 성수기가 지나가는 이 시점에도 만만치 않았다. 9시 개장에 10시에 못 미쳐 도착했음에도 매정한 매진판정을 받았다. 아쉬운 마음에 꿩 대신 닭이라고 제주 전통 뗏목인 테우 예약을 해두고 예약시간까지 시간을 보내다 왔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먹구름이 스멀스멀 몰려오더니 뗏목에 앉으니 비가 한두 방울 내리기 시작하고 뗏목이 출발하니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운치있게 맞아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어서 수건으로 내 몸은 포기하고 카메라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치 금보따리인마냥 그것만 감쌌다. 카메라가 없었다면 그냥 맞아줄 수도 있겠는데 옆자리에 아이를 비 맞히며 발을 동동 굴리던 엄마의 마음과 같이 안절부절 못했다. 출발했다가 5분만에 급히 선회했지만 골든 타임을 놓친 탓인가 몸에 마른 부위는 찾아볼 수 없었고 우리들이 기대했던 해양 레저의 스릴은 차가운 물벼락으로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제주 아쿠아플라넷>
우도에서 스쿠터타며 눈썹이 휘날리게 주위경관을 보고자 했던 계획은 연일 내리는 비 때문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대신 계획을 세울 때 한번 가볼까 했었던 아쿠아플라넷에 가게 되어 오히려 잘됐다 싶기도 했다. 마라도 잠수함에서 보았던 대형 가오리의 앙증맞은 표정을 떠올리며 숙소가 있는 애월읍으로부터 대각선 반대편에 있는 섭지코지까지 부지런히 달렸다. 도착해보니 슬프게도 우리와 비슷하게 하루가 망가진,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나지막이 분통을 터뜨리며 있었고 우리도 그나마 관람이 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내부는 각 섬 별로 자생하는 특별종별로 어항을 꾸며놨는데 제법 괜찮았다. ‘이 섬에 가면 이 친구들이 있습니다’하고 친절하고 직관적으로 알기 쉽게 되어 있었다. 또 단순히 섬 뿐만이 아니라 대륙이나 국가별로 분류해놓은 점은 아이들의 교육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비로 인한 반강제적 일정을 보상받으려는 듯 사진찍겠다고 밀착해서 관람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았기에 나는 그렇게 보여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 움츠러들기는 했다. 그렇게 감상하다보니 어느덧 두 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돌아오는 길>
계속해서 운전을 하다 보니 이틀 사흘 갈수록 피로가 쌓이는 것을 느꼈다. 요즘 들어 더 게을러지고 더 운동을 안한 탓이리라. 제주도를 처음 가려고 마음먹은 것은 몇 달도 전인데 며칠만에 이렇게 끝나버렸다. 계획이랄 것도 딱히 없었지만 계획대로 하지 못해서 아쉬운 것도 있었고 계획이 상세하지 않았던 것 만큼 기대이상의 의외성으로 즐거움을 주어 보람찼던 일들도 많았다. 다음 여행은 또 누구랑 어떻게 갈지 궁금하다. 다음의 여행 때는 좀 더 자신 있는 모습으로 갈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박한결 

부산대치과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전공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