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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저당 잡힌 젊은 치의들 ‘개원∙골프∙자존감’ 포기

창간 49주년 특집2-치과계 ‘3포 세대’에 희망을 묻다

대한민국 서울에서만 6900명의 치과의사가 생존과 도태의 갈림길에 내몰려 있고, 임플란트가 딱 60만원의 값어치로 홍보되는 시대에 ‘평범한 치과의사’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대학 등록금, 개원 권리금, 인테리어 비용 등 각종 명목의 서슬 퍼런 ‘빚’을 등에 지고 불안한 연착륙을 시도하는 젊은 치과의사들. 경기 불황에 따른 환자감소, 기존 개원가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들은 서서히 ‘개원, 골프, 자존감’을 포기하게 된다. 젊은 치과의사를 수식한 ‘3포’는 바로 현 세태에 겨냥한 냉소의 ‘아포리즘’을 담고 있다.

혹자는 이들을 보고 질서나 예의가 없다고, 또 누구는 비윤리적이라고 비난을 할지 모르지만, 누가 이들을 이처럼 차가운 현실로 내몰았는지, 그들이 어떤 세상 속에서 자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기성세대들의 진지한 고찰과 반성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주변에 머물거나 혹은 스쳐지나갈 법한, 그저 평범한 젊은 치과의사들을 붙잡고 그들의 희망과 절망, 선배들을 향한 항변을 글로 담았다.



# ‘전업 페이닥터’ 개원가 자리잡나

개원한 지 이제 1년 반 된 30대 개원의 A 원장은 오늘도 치과 폐업과 함께 개인회생 신청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그는 “졸업한지 몇 년 안 됐지만 개원하고 잘 해보려고 했는데 주위 치과들과의 경쟁도 치열하고, 치과 운영이 녹록지 않았다”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치과의사는 곧 ‘개원의’와 사실상 동의어였다. 실제로 지난해 손미경 교수(조선대 치의학전문대학원)가 치협의 연구용역을 받아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면허신고제를 통해 근무기관을 신고한 치과의사 회원 중 92%에 달하는 인원이 치과병의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페이닥터’를 잠재적 개원 대기자로 놓고 봤을 때 10명 중 9명은 이미 개원을 했거나 개원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최근 자의반 타의반으로 개원 포기를 선언하는 젊은 치과의사들이 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대신 치과의사로서의 ‘경영권’을 굳이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개원 과정에서의 입지선정이나 개원 후 환자 유치에 따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구축하겠다는 생각에서부터 막대한 개원 비용이나 이미 한 번의 실패 경험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개원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양상도 다양하다.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을 전제한 양극화의 칼날이 그 속에서 번뜩인다.

특히 경영권을 가지고 있지 않는 치과의사는 조직의 논리로 보면 사실상 ‘객체’에 해당한다. 그들이 상실한 ‘주체’의 지위는 다양한 사회적 스펙트럼을 통해 분산된다. 사무장이나 기업형 네트워크가 권하는 불법적 유혹이 ‘객체’의 주변을 파고든다.

# 젊은 치의, 소통·관계를 포기하다

각박한 세태는 치과의사들의 ‘트렌드’에도 영향을 준다. 최근 골프를 치지 않는 젊은 치과의사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고쳐 말하면 이들은 사회적 관계로서의 ‘골프’를 포기하는 것이다.

30대 중반 개원 3년차 B 원장은 이 같은 경향에 대해 “진짜 골프를 칠 비용이 없다는 의미라기보다는 평일에 골프를 같이 칠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가 있는 친구가 없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골프는 다른 어떤 종목보다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연대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취미이자 스포츠다. 골프를 통해 세상을 만들 수 있고, 나중엔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단계까지 갈 수 있다는 ‘골프의 사회학’이 젊은 치과의사들에게는 더 이상 상식으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나아가 분회 모임 또는 선후배·동기 모임이 골프를 중심으로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치과의사들의 인간관계 또는 네트워크를 상징하는 모습도 한계에 왔다는 분석이다.

40대 치과의사 C 원장은 “요즘 졸업하는 후배들을 보면 골프를 칠 여유도, 이유도 없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며 “예전에는 나도 분회 소속 선배들과 가끔 라운딩을 하곤 했는데, 경영이 어려워진 지금은 모임에 나가 선배들이 나누는 골프 얘기를 들으면 ‘한가한 소리들 한다’며 거부감부터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적절한 보상·전문직 존경 대신 ‘가성비’

이제 우리 시대에서 평범한 치과의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존감을 내려놓고 환자의 ‘공격’에 무던해져야 한다는 서글픈 냉소마저 터져 나온다.

지방 개원의 D 원장은 최근 자신의 환자를 상대로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내 결국 승소했다. 이미 다른 치과에서 임플란트를 식립한 후 혀가 씹힌다며 내원한 이 환자에게 임플란트 재식립, 교합조정, 보철치료 등을 병행했는데, 끝내 악관절장애가 발생했다며 기존 치료비와 향후 치료비는 물론 위자료까지 요구받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D 원장으로서는 명예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던 셈이다.

특히 카페, 블로그 등의 루트를 통해 의료 분쟁에 대한 악의적 정보를 먼저 접한 환자들이 수천만 원 대의 위로금을 요구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치과의사의 과실이 없다는 법원의 판단 이후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며 진료실을 찾아 괴롭히는 ‘진상 환자’의 사례가 우리 치과의 일상이 되고 있다.

E 원장은 “치과가 너무 많은 관계로 치과의사들을 무시하고 여기 아니면 다른 곳에 가면 된다는 의식이 깔려있는 환자가 대부분”이라며 “자존감을 스스로 포기하고 싶은 치과의사는 없겠지만 이미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고 고백한다.

적절한 보상의 부재 역시 전문직으로서의 자존감에 타격을 준다. F 원장은 “개원하고 제일 많이 드는 생각은 남 좋은 일 시킨다는 것”이라며 “페이닥터 할 때보다는 조금 더 버는 것 같은데 치과기자재나 인테리어 업체 사장들에게 돈을 벌어주기 위해 개원한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딱 개원비용 나가는 그만큼 더 벌어 다 이들에게 퍼주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공급과잉, 규제과잉의 시대가 강요하는 ‘N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 치과의사 세대. 지금, 그들이 아프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