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대략 초등학교 3학년 정도였던 것 같다.
어느 날 부모님께서 서로 말씀 나누시는 모습을 보고 대화의 주제가 궁금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발동해 대화에 끼어들었다가 아버지께 혼났던 적이 있다. “어른들 말씀 하시는데 그렇게 끼어드는 건 안된다”라고 준엄하게 말씀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름 그때는 “저도 많이 컸는데요”라는 반발심과 함께 언제쯤이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는 것을 보면 아마도 아버지의 예상치 못한 꾸중의 충격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갑자기 어른에 대한 사전적 의미가 궁금해진다. 찾아보니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란다. 첫 번째 다 자란 사람을 어른으로 정의하는 것에 대해선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두 번째 정의인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데에서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게 된다. 과연 나는 내 일에 책임을 지고 지금까지 살았던가라는 질문과 사회에서 책임지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는 어른들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직도 “어른의 기준은 무엇일까”라고 누군가 물어온다면 정확히 어른은 이런 것이라고 명쾌하게 대답을 할 자신이 없다. 난 아직도 온전한 어른이 되기 위해 매일 시험을 보고 있는 어른 후보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땐 대학만 가면 어른이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주민등록증만 손에 쥐었을 뿐 온전한 어른이 아니었다. 남자는 군대를 가야 진정한 어른이라는 말에 공보의지만 군대도 다녀왔다. 흔히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봐야 온전한 어른이 된다고 얘기한다. 어른이 되기 위해 결혼을 한건 아니지만 떡두꺼비 같은 아들도 두 놈 낳았다.
하지만 아직도 어른답게 고민하고 명쾌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의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여러 문제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나를 시험하고 있다. 아직도 가끔 내게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조언해 줄 진정한 어른을 찾는 내 자신을 보면 말이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삶이 척박해질수록 많은 사람들은 삶의 지표를 제시해 줄 진정한 어른을 찾게 된다. 작게는 나와 내 가족의 문제에서, 크게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줄 진정한 어른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소망한다. 언젠가 내가 누군가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힘이 되는 어른이 되어있기를.
임용호 푸른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