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부터 언젠가는 쓰겠노라고 작정하였으나 망설여만 오던 글이다. 국사교과서에 엄연한 역대 두 왕조(高句麗와 高麗) 명칭과 구리[銅]가 과연 동명이의어(同名異義語) 인가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1990년 첫 중국방문길에 중국동포 여성가이드로부터 들은 가오구리(高句麗)와 꼬울리(高麗)는 충격이었다.
한자 ‘麗’는 옥편마다 ‘고울(美也)려’ ‘빛날(華也)려’이어서 ‘국명(高句麗, 高麗)이름 리’라고 돼 있다.
당연히 역사상 우리나라 왕조 명칭은 고구리라거나 고리이다.
중국발음으로 高句麗는 가오구리(Gāo gōu li) 이다. 발음에 따라 까오꼬리로도 들린다.
프랑스나 유럽 사람들은 귀로 들리는 구리, 꼬리 발음대로 Coree 또는 Corea로 표기했다.
중견 산악인 최선웅(한국지도제작연구소)은 전문 고지도 연구가이다. 최 사장한테서 많은 것을 배운다.
궁금해 하는 것을 물으면 전문가답게 배경과 역사까지 설명해준다.
“Korea라는 명칭은 고지도상에 1734년 러시아 과학원 키릴로프가 제작한 ‘러시아제국전도’에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러시아어로 C는 어쩔 수 없이 K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몽골 쪽 표현도 K가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Korea에 관한 궁금증은 풀렸다. 그러나 역사가 깊을 뿐 아니라 발음도 가까운 C를 제쳐놓고 K를 채택했는지 아주 궁금하다. 아울러 어느 시기부터 쓰도록 했는지도 알고 싶다.
영어 알파벳 ABC순으로 Corea의 C가 Japan의 J보다 앞서 있고 K는 J다음에 있다.
그 변화가 일제강점기를 전후해서 일어난 것도 아주 공교롭다.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에 일본이 일으킨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희생당한 대한제국은 국호 영자표기마저 맘대로 채택당했거나 유린당한 것이다.
청동기 시대를 거치면서 서기전 1000년경까지 키프로스(사이프러스)에서는 구리가 많이 생산되어 구리를 키프로스 금속(Cyprus metal 또는 metal of Cyprus)이라고 하였다.
신라와 高麗의 구리합금으로 만든 대형 범종은 일본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高麗 때는 돈을 쇠[鐵]로 만들어 철전 건원중보(996. 성종15)를 쓰다가 처음으로 구리[銅]로 만든 동전 해동통보(1102. 숙종7)를 사용하였다.
인종 12(1134)년에는 남을 때려서 이를 부러트린 사람은 피해자한테 구리[銅]로 배상토록 하였다. 해동통보가 유통되었는데도 구리로 배상시킨 것은 구리가 엽전 대용 또는 물가의 기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리가 신라 때는 신라동으로, 후에 우수한 품질의 高麗銅으로 유명했다. 구리는 광종9(958)년 후주(後周)에, 원종3(1262)년에는 원(元)에 대한 수출 품목이었다.
그 후 구리산업은 쇠퇴하여 조선 숙종4(1678)년에 구리는 일본에서, 아연은 청(淸)에서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많은(高) 구리(句麗)가 있는 나라여서 고구리(高句麗)라고 했다’는 말이나 생각이 옳다는 느낌이 들어요. 욱여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유가 있군요.”
1735년에 청의 강희제가 예수회 신부들에게 만들게 한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에, 오늘의 한반도가 들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프랑스 지도제작자 당빌(D’Anville)이 ‘조선왕국도(Royaume De Coree)’를 만들었는데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대마도까지 포함되어 있다.
1375년 아라곤(Aragon)왕국 마요르카(Majorca)섬에 사는 지도제작자 아브라함 크레스케스(Abraham Cresques)는 카탈루냐세계지도를 만들었다. 이 지도에 나온 카울리지(Caulij)는 高麗를 가리킨다. 카탈루냐세계지도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을 참고해 그린 것이다. 김호동 서울대 교수는 ‘동방견문록’에 딱 한번, 高麗를 뜻하는 카울리(Cauly)가 나옴을 밝혔다.
Coree, Corea가 Korea보다 앞선다. 이쯤 되면 Corea가 확실하다.
한국산악회는 창립부터 영어명으로 Corean Alpine Club(CAC)을 채택하였다.
카울리(Cauly)-고울리(高麗)-가오구리(高句麗)와 구리, 이래서 국호와 합금성분 구리를 연관 짓게 된다. 임상진료에서 매일 합금을 만지는데 구리는 치아보철에 사용하는 합금을 구성하는 성분금속(금·백금·은·동) 중 하나이다. 구리는 영양학적으로도 소중한 금속이다.
대학에서 30년 넘도록 교과목 치의학의 역사(History of Dentistry)를 강의해 왔다. 고조선의 건국-강역-통치 등을 배경으로 한 알찬 강의를 하지 못했고, 이어지는 왕조 고구리-고리를 제대로 말 못하고 지나왔다. 부끄럽게 여긴다. 필자는 치의학계에서 장기간에 걸쳐 잘못 쓰이던 용어 백아질을 백악질로, 붕출을 맹출로, 감자를 겸자로 바로잡은 바 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당시 치과의사 정보라 박사는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입각을 권유받았지만 발달된 신학문적 치의학에 대한 열정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강의 말미에 힘주어 말했다.
“K 코리아가 아니고 Corea입니다.”
정 박사는 6·25 때문에 귀국하지 못하였지만 현지 대학과 미국치의학계에서 인정받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실력파 치과의사 반열에 올랐다.
국회배지에 ‘國’을 과감히 ‘국회’로 바꾸었다.
필자는 구리의 치의학, 인문학 및 역사적 비중에 엄청난 매력에 빠져 있다.
고구리-구리와 Coree, Corea가 등장하여 우뚝하기를 희망한다.
이병태/이병태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