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화를 낸다. 얽혀 살다 보면 어찌 기분 좋은 일만 있겠는가 하며, 화를 가라앉혀보려 노력하거나 화가 가라앉기를 기다려보거나, 그도 쉽지 않으면 화가 난 일 자체를 잊어버리려 다른 일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화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반응은 분명 화가 난다는 것이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절대 이로울 것이 없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화가 날 때가 가장 조심해야 할 때’라는 옛 말씀도 살아볼수록 참으로 귀중한 교훈인지라 필자도 화가 날 땐 이 말씀을 꼭 기억하려 늘 노력하는데 정작 화가 날 땐 도통 기억이 안 난다. 베트남의 승려인 평화주의자 틱낫한은 마음의 평화를 추구하는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평화로운 마음가짐에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화를 내는 것이니 당연히 그의 저술들에는 ‘화’에 대해 여러 면에서 깊이 생각한 내용들이 담겨있다. 그가 쓴 책들 중에는 아예 ‘화’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그 책에서 화를 자주 내는 것이 왜 좋지 않은 지를 ‘집 지하실에 사는 사나운 괴물’의 예를 들어 흥미롭게 충고한다. 요컨대 화가 나고, 화를 낸다는 건 마치 우리의 마음이라는 집 지하실에서 ‘화’라는 괴물이 문을 열고 올라 나와서 마구 날뛰는 것과 같은
오래전 조직학 강의시간이었던 기억이다. 트레이라고도 했고 캐러셀이라고도 부르던 둥그런 슬라이드 케이스를 하나도 모자라 두 세 개씩 들고 들어오시던 교수님께서는 마치 ‘치아와 치주조직이 찍힌 이 세상의 모든 광학현미경 사진은 물론 전자현미경 사진까지 너희들에게 모두 보여주마!’라는 기세로 한 학기 내내 그 기원과 조성과 구조를 부족함 없이 가르쳐주셨던 것 같다. 그토록 정교한 발생과 분화의 과정을 거쳐서 성장을 마친 완성품인 치아가 쓰다 보면 망가져서 못쓰게 되면 ‘여러분들’ -조직학 교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너희들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셨다- 이 환자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정성껏 잘 치료하여 더 오래 쓰게 고쳐줘야 하는 거라고 하시면서, 기초과목 중에 임상과목의 중요함을 일깨우셨다. 비록 냉·난방이 부실하고 하나의 긴 널판으로 된 등받이도 없는 장의자에 대여섯 명씩 앉아 듣던 30여 년 전 구식 강의실이었지만, 그곳에 앉아있던 우리들에겐 구형 프로젝터에서 뿜는 전구의 열기와 냉각팬의 회전음을 배경으로 찰카닥 소리가 나며 나타나는 생전 처음 보는 영상들은 공부를 떠나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그토록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고 재미있던
올 봄은 미디어가 COVID-19와 일련의 선거들에 관련하여 너무도 빠짐없이 전해준 사실일지 모를 사실들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와 여론을 듣고 읽느라 바빴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 世事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았었나 싶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를 넘어 ‘내가 옳다! 너는 그릇되다!’를 서슴지 않고, 사실의 판단에 대한 기준도 애매모호하거나 심지어는 기준이 아예 없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말과 글들도 부지기수였다. 우리는 그 많은 말과 글들을 듣고 읽으며 떠올리고 머물렀다 사라진 생각들로 이 봄을 보내고 있다. 각자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떠나간 생각들은 다 사라져버린 듯해도 실은 그것으로 소멸된 것이 아니라, 그 흔적과 메아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또다시 다른 듯한 같은 말과 새로운 듯한 새롭지 않은 글을 열심히 만들고 이어가는 중이리라. 무릇 말이 생각이고, 또 그 생각의 주인들을 하나하나 존중해야 하겠지만, 너무나 많은 이들의 생각과 말들을 동시에 ‘무대’에 올리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이고 인간성이 존중되는 공동체의 목적지로 향해 가는 방법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1990년대 초 Information Overload 라는 신조
이언 플레밍 원작의 영화 007시리즈의 1964년 ‘Goldfinger’(United Artist pictures inc.)에는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와 주연 악당 골드핑거보다 인상적인 조연 악당 ‘오드잡’이 등장한다. 해롤드 사카타(Harold Sakata)라는 일본계 미국 배우가 연기한 ‘오드잡’은 주연 악당인 Mr. 골드핑거의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인데 1960년대의 서양 대중문화가 어떤 시각으로 동양인을 바라보는가를 엿보게 한다. 골드핑거와 제임스 본드가 서로 초반 탐색전을 벌이는 골프장 장면에서 골드핑거는 라운딩 시작 전 “내가 부리는 이 친구(오드잡)는 말도 못하고 캐디 노릇도 제대로 못하는데... 하기사 골프야 아직 동양의 스포츠가 아니니...”라고 그의 보디가드를 제임스 본드에게 소개하며 너스레를 떤다(자막에서 ‘동양의 스포츠’가 ‘한국의 스포츠’로 나오는 자막 버전도 있다). 게다가 골드핑거는 제임스 본드와의 골프라운딩 중 비겁한 사기행각을 벌이는데, 오드잡은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동양인이란 소개가 무색하게 사기 골프를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그 이후 이어지는 여러 장면들에서도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사람들의 목숨을 쉽게 빼앗는 악의 화신으로 묘
지금 세대는 전쟁을 영화 ‘진주만’(2001)이나 덩케르크(2017), 인천상륙작전(2016)등을 통해 경험한다. 흥미를 자극하는 도입장면과 더불어, 복잡할 수도 있는 그 시대의 상황들을 적당히 생략하고 얼버무리는 대중영화기법은, 당시의 숨가쁜 상황들을 위험과 피해 없이 태어나고 자란 신세대들이 안전하게 당시의 위험한 상황 속으로 들어가, 적당히 가미된 로맨스와 기타 멋스러움도 즐기며, 앉아 즐기기 딱 좋은 오락으로 만들어주니 영화산업에서 끊임없이 작품이 나오는 인기장르다. 단, 포격과 총칼에 신체가 처참히 분리되는 전장을 같이하며 좀 전까지 얘기를 나누던 전우가 더 이상 내 옆에 존재하지 않는 극한적 상황을 너무 시청각적으로 실감나게 표현하는 것은 금물이다. 과도한 - 실제는 더 잔인하고 절망적인 전쟁이었었어도 - 표현은 소위 현재의 ‘문명화(civilized)’된 관객들의 외면과 수없이 많은 온라인 비전문비평가들로부터 날아오는, 전문가보다 더 충격적인 여론뭇매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섣불리 사실을 기록하고 진실을 전달하며 명작을 꿈꾸는 영화를 만들다가는 대박은커녕, 흥행참패에 출연배우, 감독, 제작자의 값어치까지 떨어지는 곤란함이 덤으로 안겨지므로, 절대로
스리랑카를 가족들과 패키지여행 중이었다. 버스를 타고 좁은 왕복 2차선을 돌아 올라가는 산길에서 재미있는 광경을 보았다. 직접 만든 듯한 꽃다발을 든 까무잡잡한 소년 두 셋이, 느리게 산길을 오르는 우리 버스 옆을 나란히 달리며, 앳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담아, 꽃다발을 들고 ‘플라워! 플라워!’를 외치며 따라왔다. 어려운 형편의 나라 여행에서 종종 보는 광경이고, 일정에 맞춰가는 여행이라 그저 눈길만 주고 있는데, 아무래도 자동차를 계속 따라 뛰기는 어려운 지 소년들의 모습은 금방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창문 밖으로 분명 아까 그 소년들이 또 우리 옆을 달리며 ‘플라워!’를 외친다. 늦둥이 딸내미가 저 오빠들이 어떻게 버스를 따라왔냐고 묻는데, 옆자리의 다른 일행들도 궁금해하는 듯하자, 가이드가 마이크를 켠다. “산 위에 도착하기 전에 저 소년들을 여러 번 보시게 됩니다. 버스는 산길을 돌아오르는 데, 쟤들은 산을 똑바로 뛰어오르며, 우리 버스를 따라잡는거죠. 꽃을 사주고 싶으시면 산꼭대기에서 사주시면 됩니다. 십 여분 정도 후에 도착합니다.” 필자도 어려서 안암동 개운사 뒷산을 골목친구들과 날다람쥐처럼 누비고 다닌 기억이 있
정말로 우리 모두가 기뻤고, 지구촌 전체를 행복하게 했던 지난 겨울 평창의 축제는 한반도의 지루한 긴장을 풀어주고, 한없이 춥기만 하던 북미관계에 마술같은 봄바람을 불러왔다. 그런데 계속해서 끈질기게 대북불신 발언수위를 유지하던 야당대표의 주장에 화답이라도 하듯, 올림픽 끝나고 한 계절도 안 지난 이 달초 북한 외무성은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예전의 목소리를 다시 내기 시작하였다. 서로가 원하는 바가 다르기에 여태껏 대화와 소통이 내내 어려웠던 것을 모르지 않았을텐데, 소위 ‘해결을 향한 상황의 진행’에 대한 쌍방간 최소한의 구체적 약속없이‘그럼, 잘 지내보자’는 식의 막연한 화해무드란 것에서, 당연히 어느 정도의 조율과정과 혹은 예기치 못한 교착상태가 예견되는 것이었지만, 작금의 분위기가 여러 번 있었던 동상이몽의 되풀이가 아닌가하는 근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아일랜드 출신작가 오스카 와일드(1854~1900)가‘남자들은 지쳐서 결혼하고, 여자들은 호기심 때문에 결혼한다. 그리고 양쪽 모두 실망한다.’(오스카리아나, 2016 민음사
“다섯 번에 한 상이요오~!” 유리문밖에서 손님이 들어오기도 전에, 어찌 다 아는지 주문과 테이블번호까지 주방에 외쳐버리는 이 식당은 필자가 17년 넘게 다닌 점심단골식당. 열 개가 넘는 메뉴가 있지만, 일하시는 아주머니들은 들어서는 손님들의 태반이 거의 매일 오는 단골인지라 뭘 주문할 지 이미 안다. 바쁜 점심시간의 주문은 대개 굴국밥 아니면 ‘오늘의 백반’인데다가, 거의 대부분의 손님들의 얼굴과 즐기는 메뉴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손님 앉기도 전에 주방에선 조리가 시작된다. 자기의 식성을 기억해주고 앉을 자리도 정해주며 바쁜 일과에 몇 초라도 서둘러주는 곳에 점심하러 가는 건 대한민국 국민의 취향에 딱이고, 뭐 드시겠냐고 묻고 여기 뭐가 맛있냐고 되묻고 하는 거 없이 후다닥 주문 들어가는 건 식당주인도 종업원도 대환영이다. 이렇게 서로의 상황을 충분히 공감하고 ‘알아서’ 프로세싱이 되어지는 소통의 약속을 가진 문화를 소위 “고맥락문화 high context culture, E.T. Hall, 1976”라 일컫는다고 한다. 일견 그 상황에 관련된 참여자들의 소통과 단결력이 뛰어나 보이고, 집단목표지향적이며,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하지 않는 단순한 목적성취에는
자랑스럽게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의 여자양궁은 늘 단연 압권이다. 그래서인지 전하는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관객의 소란스런 야유와 레이저방해 공세에도 굴하지 않고 ‘텐! 텐! 텐!’을 쏘아내던 우리 여자양궁대표팀의 한 선수가, 완승 후 현장인터뷰에서 흥분한 리포터가 던진 “경기하기 전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차분한 대답은 경기내용보다 더 압권이었다. 그 대답인 즉, “제 자신이 제일 무섭습니다, 저를 완전히 망가트릴 수 있거든요….” 2016년 디오픈 챔피언십에서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우승자와의 최고의 명승부로 골프가 ‘정신적 鬪技종목’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 미국의 탑클래스 PGA프로골퍼도 비슷한 인터뷰 어록이 있다. “당신은 자신의 어떤 기량을 더 보완해야한다고 생각하나요?”라며 ‘페어웨이를 유지하는 티샷이죠, short game기량입니다, 보셨다시피 퍼팅정확도지요’ 등의 대답을 기대했을 듯한 리포터의 물음에 그의 의외의 대답인 즉, “저는…방금 前홀의 실수를 빨리 잊어버리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낍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 2003년 9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일 년도 채
1938년 독일生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독일에서 경제학박사, 스위스에서 공학박사, 미국하버드에서 행정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이력에 걸맞게, 1971년 국가간의 다양한 이해구도와 갈등관계를 발전적 시각에서 설명하는 다중관계자이론(multistakeholder theory)을 제안하며, 영향력 있는 국제민관협력기구인 ‘세계경제포럼’을 창립한, 소위 사회과학의 통섭을 이룬 인물이다. 이러한 선지자적 인물이 21세기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임을 선언하고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물결이라고 역설하며, ‘이번은 다르다!’라는 강한 논조로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넓은 범위의 강한 충격을 설파한다. 정치, 문화, 산업, 군사, 교육, 의료 등 인간의 삶 모든 부문이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는 교시적 담론에 지구촌 전체는 열광하고 술렁인다. 일천한 필자의 지식과 생각으로도, 인류는 먹고 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진정된 근대이후에도 국가간의 평화와 지구환경보존의 사상과 철학에 기반을 둔 새로운 미래에 관심을 기울여오고 있지는 않은 듯하니, 서글프지만 여전히 이런 유물론적 가치관들에 기반을 둔 생각과 움직임이 지구촌 구성원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문화인류학자인 롤프 브레드니히(Rolf W. Brednich)는 아래와 같은 글로 조지 버나드 쇼(George B.Shaw)에 버금가는 비판을 한다. 어느 나라 중앙정부에서 외진 벌판에 큰 창고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한참 건설계획을 세우고 거의 완성된 기획안을 검토하던 관료하나가 ‘창고에 도둑이 들어 약탈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뜬금없는 지적을 하고, 중앙정부는 야간경비직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냈다. 공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 중 적당한 사람을 선발하여 채용하였을 때, 또 어떤 관료하나가 ‘야간경비직의 근무지침이 없으면 어떻게 근무를 하나?’라고 지적하며 ‘야간경비직의 근무지침을 야간경비직 자신이 직접 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야간경비직의 근무지침 문건을 작성하는 사람과, 근무시간 계획표를 짤 사람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여, 두 개의 일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때 관료하나가 또 입을 열며 ‘야간경비가 정말로 성실하고 양심적으로 일을 수행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며 야간경비직원을 상시관리하는 부서를 만들어 두 사람을 고용했다. 한 사람에게는 야간경비의 근무를 관리, 필요시 조사, 감독하는 일이 맡겨지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야간경비와 조사자에 대한 보고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