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을 향한 침묵
극 내용을 소개받고선 야 이거 좀 센 덩어린가 보다, 여차하면 얹힐라 하는 부담에 조금은 무거운 맘으로 찾아간 자리였다. 역시 극은 무지근한 질감으로 무대에서 객석으로 펼쳐져 갔다. 그러나 그것은 앞서 염려한 체증 같은 유는 아니었다. 그간 잊고, 아니 짐짓 잊으려 비켜 있던 사실에 대한 ‘휘슬 블로잉’이었다고 할까. 극 중 내레이터 역할을 하던 논문준비 대학원생 ‘하나’의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 중 마지막 한 사람이라도 존재하는 한, 기록은 필요한 거’라 했던가. 생각해 보니 기지촌, 혼혈아, 해외 입양 등으로 상징되는 분단 잔혹사는 비단 60여 년 전 선대에 있었던 상잔의 비극에만 묶여 있던 것이 아니었다. 70년대 초를 전후해 세 번에 걸쳐, 특별히 한반도 남부 곡창지대를 덮친 혹독한 흉작은 아일랜드의 감자 기근 마냥 이십여 년 전의 전쟁 이래 다시 인구의 대이동을 가져왔다. 그것이 이번 연극 속 비극의 단초와 정확히 맞물려 있다는 것이 새삼 떠올랐다. 또 그것은 내가 유·소년기를 보낸 개발 년대의 이면사 중 하나이기도 하다.자신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 주겠노라 찾아왔다가 그 필요 채우면 언제였나 싶게 사라져 연락 끊던 그간의 수많은 군상 중 하나
- 김진태 여의도치과의원 원장
- 2014-11-25 11:35